오는 10월 제 모습을 드러낼 청계천. 청계천을 따라가 보면 신평화시장이 보이는 곳에 버들다리가 있다. 그런데 버들다리 교명주(다리의 이름을 적은 돌)가 좀 특이하다. 교명주 양쪽이 팔과 손을 형상화한 모습이어서 누군가 다리를 떠받치고 팔을 뻗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손가락 손가락마다에는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다리 초입에서 수도를 틀면 청계천의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진다. 바로 ‘불’의 전태일이 ‘물’로 거듭나는 이미지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새로운 생명수가 되어 21세기 우리들에게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버들다리 교명주의 ‘꿈’

아직은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이 버들다리 교명주의 ‘꿈’은 ‘전태일 통신’ 편집인인 서해성(45)씨가 구상하고 있는 70년의 전태일을 2005년 오늘에 다시 형상화하려는 작업 중 하나다. 그 작업의 출발은 ‘전태일 통신(C-Letter : Chun의 머리글자)'. 그는 올 노동절 아침, 10만여명에게 이메일로 ‘C-Letter’를 보냈다. 앞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주5회 발송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삶과 그가 추구한 가치는 70년대만의 것은 아닙니다. 경제성장 영광 뒤의 그늘은 당시에도, 또 21세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전태일이 추구했던 노동권과 인권, 자유와 평등, 나눔에 대한 열망은 지금도 지펴가야 할 우리의 가치이며, 이는 곧 ‘평화(peace)’에 대한 꿈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얼마 전까지 MBC '!(느낌표)' 코너를 제작하면서 ‘책’이라는 콘텐츠로 대중과 호흡했다가, 최근에는 ‘남북 고구려게임대회’ 총감독을 맡으면서 ‘남북통일세대’의 ‘역사의식 공유’ 작업을 하고 있는 서 편집인의 전태일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조영래 변호사, 박승옥 선배 등의 노력으로 전태일을 세상에 알려내고 기록물로 남기는 데 성과를 냈지만, 대중사업으로서는 거의 소멸한 느낌입니다. 지금 청소년들은 ‘전태일’을 잘 모릅니다. 아이들의 교과서에 ‘노동자의 역사’를 올곧게 실어내는 것에서부터 우리가 호흡하는 곳곳에서 전태일을 만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태일의 일상화, 모던화, 친근화입니다.”

“말로만 ‘전태일 정신 따르자’고 한들…”

그는 ‘문화꾼’이다. “'전태일 정신을 따르자'고 말로 아무리 외친다 한들 감성으로 다가가는 문화적 컨텐츠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붉은 머리띠'만 연상시키는 그런 전태일이어선 안 됩니다.”

그가 청계천 복원 등에 주목하면서 ‘불’의 전태일을 ‘물’의 전태일로 부활시키려는 이유는 분명해 보였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자 탄생이다. 그래서 ‘불’로 산화한 전태일은 청계천 교명주 수도꼭지와 같이 누구나 가서 만질 수 있고, 어린 아이라도 손으로 틀면 쏟아지는 물이 된다.

“진보진영이 ‘거룩한 엄숙주의’에서 탈피했으면 좋겠어요. ‘전태일’ 하면 꼭 기념관(메모리얼홀)을, 묘지와 묘비만을, 붉은 머리띠와 높이 치켜든 팔뚝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그런 ‘개념’의 ‘계몽화’도 절실하다고 봅니다만. 전 ‘놀이’로서 전태일을 만드는 것도 구상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태일의 일상화’를 위한 그의 아이디어는 무궁무진하다.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를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처럼 지식인들에게 독점돼 있는 지적교양을 평등하게 나누는 일을 하고 싶다. 또한 전태일을 새롭게 기억하는 문화적 공간을 창출하는 일, 휴대폰 컬러링에서도 ‘전태일의 노래(가칭)’를 쉽게 만날 수 있게 하는 일,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에게 전태일을 ‘형’ 또는 ‘오빠’로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일 등도 하고 싶다.

“앞으로 'C-Letter' 발송대상을 20만, 50만, 100만명까지 늘리려고 합니다. 전태일을 모르고 사는 사람, 전태일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태일이 새롭게 부활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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