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청년실업난 해소를 위해 지난해 도입된 ‘해외인턴제도’가 시행 1년 만에 ‘부실’ 도마위에 올랐다. 인턴제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미국·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중국·일본 등의 국가에 인턴을 파견하는 프로그램. 전문대졸 이상의 미취업 청년실업자를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국비지원을 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산동, 심천, 천진 지역을 대상으로 1인당 200~300만원 정도(왕복항공료, 인턴배정 및 취업알선비 등)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쪽 인턴 참가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다른 지역에 견줘 매우 높았다.

“본인의 개인적 사유로 중국 △△지역 인턴십 프로그램을 중도포기하며 회사가 배정되었으나 본인의 거부로 인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포기함을 확인합니다.” 중국 인턴파견 수행기관인 에듀조선(조선일보 계열사)쪽에 제출한 인턴들의 ‘포기확인서’ 내용이다. 중국인턴 중도탈락자 및 무단이탈자는 지난해 353명 가운데 6%인 22명에 이른다. 이들이 중도에 포기한 개인적 사유가 궁금했다.


30만원 주면서 청년실업 해소라고?

어학과 실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 왜 이들은 중간에 그만둔 것일까. 이들의 부푼 기대가 절망의 한숨으로 바뀌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착 직후 현지 한인상회(한인상공업협회)에서 설명회를 하는데, ‘당신들은 한국에서 능력이 없어 일자리도 구하지 못해 이곳으로 온 만큼 아무데나 가서라도 잘 버텨라’고 하더군요.” 지난해 말 중국에 인턴쉽으로 간 A씨(31)는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자존심이 상했다. 불길한 예감은 기우가 아니었다. 전공분야가 웹디자인인데 배정된 곳은 손톱디자인 업체였다. 마구잡이식 업체배정도 화가 날 일이었는데 제공된 숙소는 더 황당했다. 남녀 4명이 방 2개짜리 한 집에서 지내라고 한 것.

A씨는 “희망업무로 전환해주고 숙소도 바꿔 달라”고 항의하며 재배정을 요구했고, 한인상회쪽은 북경에서 웹사이트 관리업무를 할 수 있도록 재차 소개했다. 하지만 A씨는 업무를 완벽하게 다뤄주길 요구한다는 것은 인턴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던 일과 다름없이 똑같은 일을 하면서 2천위엔(30만원)을 받고 일할 수는 없었던 것. 결국 그는 중국에 간 지 보름여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젊은이들 데리고 순전히 장사하려는 속셈이었어요. 위약금 180만원을 비롯해 금전과 시간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런데 젊은 학생들의 경우는 중간에 돌아오고 싶어도 돈(위약금)이 없어서 못 돌아와요.” 더 이상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없으면 좋겠다는 A씨는 “이건 사기다. 나도 데려가 달라”며 울먹이던 학생들이 눈에 밟힌다며 하소연했다.


“능력없고 일자리 못 구해 중국 온 거 아니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갔는데 고생만 바가지로 하고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지난해 한 달간 중국에서 머물다 귀국한 B씨(28). 그는 “경력 쌓는데 도움도 안되고 장기적으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고 잘라 말했다. 원하던 번역 업무를 할 수 없었던 B씨는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공과 적성을 무시하고 아무 곳에나 배치하면서 한달 용돈 수준인 30만원 주면서 주말도 없이 일을 시키더라구요.”

지난해 말 학교졸업을 앞두고 인턴에 지원한 C씨(24)도 ‘경기가 좋지 않다’며 계속 짜증을 내는 사장 부부와는 일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 “여행사 일이 쉬는 날도 없다보니 계속 눈치 보면서 일을 해야 했고, 그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죠.” 결국 두달 가량 일을 하고 그만뒀다. 한인상회에서 재배정을 받을 수 있다며 하는 말은 그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했다. “낙오자가 없게끔 한국에는 들어가지 말고 오래 일했으면 한다.” 그러나 ‘오래’라는 것은 기껏해야 1~2년이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중국. 그곳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고학력실업자를 이용할 수 있는 ‘인턴제’를 환영하고 있는 것. 그러나 제대로 된 업무교육도 없이 그저 싼 맛(?)에 장시간 근무를 강요하고 있는 꼴이다.

“문제는 인정하지만 인턴 학생들 수준 낮다”

중국진출 한국기업의 영세성과 장사 속, 적성과 전공을 무시한 업무배정, 장시간 노동, 불안정한 숙소, 30만원이라는 쥐꼬리 급여, 공단과 에듀조선의 사후관리 부재, 심지어 성희롱까지….

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나고 있는 해외인턴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산업인력공단에 대한 최근 국정감사 질의에서 파견업체 선정과정, 내용의 부실, 사후관리 문제 등의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단병호 의원실에 따르면 “공단 자체 설문조사에서도 숙박시설, 공단의 서비스, 인턴파견 수행기관 서비스 불만 등이 무척 높았다”며 “미국은 파견수행기관에 대한 불만이 66.7%, 숙박시설에 대한 불만이 50%였고, 호주는 인턴수행기관에 대해 49%가 불만족을, 캐나다는 파견수행기관에 대한 불만이 40.3%였다”고 밝혔다.

단 의원실은 또 “특히 중국이 불만이 높았는데 공단서비스(파견수행기관)에 대해 산동은 54.6%(68%), 심천은 75%(64%)가 불만을 나타냈다”며 “특히 지난해 해외인턴파견자 가운데 무단이탈자는 14명이었고, 그 중 12명이 중국이었다”고 지적했다.

중국 인턴파견 수행기관인 에듀조선은 지난해 8월 종합평가에서 다른 신청업체(평균 40~60점)에 견줘 월등한 평균점수(98.8)를 받고 선정되었다. 선정시 높은 점수가 인턴제도의 수행력, 만족도와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었던 것.

사정이 이런데도 ‘에듀조선’쪽은 문제의 본질을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에듀조선의 한 관계자는 “산동, 심천 등 1, 2기에서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해 11월 천진으로 간 3기부터는 ‘면접 강화’ 등 개선노력을 펼쳐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100명을 현지채용하면 실제 130여명 정도의 인력을 선발하는데, 이 과정에서 30~40여명의 여유인력은 탈락이나 포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사자들은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중국으로 가는 학생들의 수준이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문제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준비의 부실보다 개인(의지)문제가 크다는 인식이었다. 연수과정에서 어렵고, 힘들다는 점을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현지에서 버티지 못하는 것이 과연 개인의지의 문제일까. 중도에 인턴을 포기하고 “이건 사기다!”며 귀국한 사람들을 무능력자로 낙인찍으면 ‘해외인턴제도’의 광범위한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해외인턴제도 수행기관인 산업인력공단쪽은 문제가 불거지자 급히 진화에 나섰다. 공단 국제협력국장과 해외취업지원부 담당자는 지난달 27일 오후 단병호 의원실을 방문해 ‘중국인턴파견사업 개선대책’을 설명하며 인턴제도의 대폭 개선 입장을 밝혔다. 공단쪽은 향후 심천, 산동 등 문제지역을 제외시키고 북경, 상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력을 파견하며 파견수행기관인 에듀조선도 전격 교체할 계획이다. 또한 해외공관과 협조해 인턴채용업체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과 협조체계를 구축하고, 미흡한 숙박시설도 개인당 30만원씩을 지급해 개인이 선택하도록 할 예정이다. 180만원 위약금도 무단이탈이나 개인사유가 아닌 이유라면 되돌려주겠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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