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취재기자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얘기를 듣자니 기간제 사유제한 문제로 비정규입법 관련 노사정 협상이 난항이라고 한다. 논의의 초점이 ‘기간제 사유제한이 타당한가’로 좁혀지고 있고 유럽과 일본의 얘기가 거론된다고 하고, 이미 다른 초점으로 넘어갔다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외국 얘기를 거론하는 모양새가 결코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예외적으로만 기간제를 인정하기 위해 기간제 고용이 가능한 특별한 경우를 열거한 사유제한 방식이 서구국가의 기간제 관련 법조항에 들어있는지 여부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단순한 해석일 뿐이다.

서구 노사관계구조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아 생긴 오해로 중요한 일을 잘못 판단하지 않을까 우려도 하게 된다. 한편 논의 과정에서 인권위가 권고한 비정규직 차별해소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내용들은 자칫 실종된 건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협상과정은 당사자들의 몫이지만, 근본적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삶이 달린 문제이기에 한마디 거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독특한 악성 차별적 비정규 구조

‘절반 이상의 노동자가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약되는 한국 비정규노동의 또 다른 특징은 정규직과 동일한 시간을 근무하며 비슷한 직무를 담당하나 고용안정이 보장되지 않는 임시직, 기간제 고용이 전체 노동자의 40% 가량, 비정규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악성 차별적 비정규 고용형태’라는 점이다.

이와 달리 유럽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짧은 시간 근무하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비중이 비정규직 중 가장 많아 전체 노동자의 17.7%(2000년 기준)를 차지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비율은 12.5%로서 이보다 낮은 편이다.

또 하나 서구와 우리가 다른 점은 비정규노동의 확대 이유이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선택인지, 노동자의 자발적 선택 때문인지 여부가 초점이다. 유럽의 경우 파트타임 노동자 중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취업한 비자발적 파트타임의 비중은 16.9%에 불과하다. 파트타임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비중은 59.5%이다.

절반 이상이 개인의 여건과 필요에 따라 스스로 적은 시간 일하기를 선택했다는 것인데,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도 아니며 차별의 확대와도 관련이 적으며 시간선택주권의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간제의 경우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기간제가 된 비자발적 선택의 비중은 40%를 넘는다. 일정기간동안 풀타임으로 일하는 기간제는 일정시간만 일하는 파트타임에 비해 비자발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으며, 파트타임에 비해 기간제 고용이 많은 사회는 ‘강요된 차별’이 주도하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한국이 바로 그 전형적 예이다. 모든 비정규직이 차별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기간제의 경우 비슷한 일을 하는 비교가능한 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일상적 체감도가 훨씬 높다. 그래서 서구에선 특별한 조항이 없을지라도 차별금지, 동등대우의 주된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기간제 비중이 높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파트타임과 기간제의 비중 비교(한국은 2003년, 그 외는 2000년)
 파트타임 고용 비중기간제 고용 비중
EU 기존 15개국18.2%13.1%
EU 신규 10개국7.8%11.1%
일본14.3%14.4%
미국17.5%4.9%
한국4.9%37.4%
* 자료= EIRO(2002). 한국은 2003년 자료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월간 『비정규노동』 2004. 12

사유제한은 다른 사회적 규제방식으로 보완된다

사유제한이란 일정기간만 고용해야 할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을 두어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기간제 제한방식이다. 출산, 휴가 등으로 결원이 생기거나 계절적 업무인 경우, 사업완료기간이 정해진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각국의 기간제 고용에 대한 입법 흐름을 보면, 사유제한을 채택하는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과연 기간제 사유제한이 OECD 내 10여 개 국가에서만 채택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사유제한은 직접적이고 가장 강력한 기간제 제한 방식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억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 또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유제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 기간제의 비중이 다른 OECD국가보다 월등히 높고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유제한 방식의 채택 여부보다 더 중요한 사항은 전반적 법제도, 고용정책과 노동시장제도,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 영향력, 노사관계 구조가 차별해소와 비정규직 억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발휘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다음 세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규제방식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EU의 기간제고용 지침에서는 우선 차별 금지와 동등 대우 보장의 문제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다. 기간비례의 원칙의 적용으로 차별금지를 명문화한다. 차별금지조처가 실효성 있게 작용하면 인건비 절감 유인만으로 기간제를 활용하려는 사용자의 의도는 대폭 약화된다. 계속 활용할 인원을 굳이 기간제로 뽑아야 할 유인으로서 인건비 절감이란 이점이 확실히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 조항을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조항으로 마련하는 것, 구체적으로 기간제를 비롯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금지를 명문화하는 것을 비정규직 보호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둘째, EU의 기간제 지침에서는 각 회원국이 ‘객관적 사유, 최대 지속기간, 반복갱신 횟수’ 중 하나 이상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견줘 ‘사유제한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하는 반문이 제기된다. 기간제 지침은 동구권을 중심으로 한 신규가맹국들이나 영국과 같이 법적 장치로서 규제하기보다 자치주의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을 고려해 탄력적인 제한조처를 마련한 결과이다.

초국가적 규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낮은 수준의 규제방식이 도출된 것으로, 각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할 최소기준이다. 기간제 비중이 월등히 높은 한국의 현실에서 EU의 신생가맹국 수준에 맞춘 낮은 수준의 제도를 도입할 경우 기간제 억제는커녕 오히려 촉진기능만 부추길 수 있다. 현실이 워낙 심각하기에 현실을 제어하지 못하는 성긴 그물로는 남용과 차별의 끄트머리도 붙들지 못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직접 연관되는 법조항만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사회적 규제의 전부가 아니란 점이다. 특별한 제한규정이 빠져있다고 해도 전반적인 노동법의 고용보호 조처가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있으며, 이것이 더 강한 보호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노조의 영향력이 강하고 단체협상의 포괄 범위가 넓을 때 법률이 아닌 교섭에 의해 실질적으로 기간제 사용이 제한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기간제 사유제한을 완화했다는 스웨덴, 사유제한이 없고 기간제한만 있는 독일, 유연안정성 모델로 회자되고 있는 덴마크와 이 중에서도 유연화 속도가 높다는 네덜란드의 경우까지 사유제한이 없다고 해서 기간제의 비중이 높거나 급격히 확대되지 않는다. 이 나라들은 애매한 분류기준으로 축소 추계되는 영국이나 미국과 달리 비정규 고용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고, 정규고용이 고용의 기준으로 명확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노조 영향력과 단체교섭의 포괄정도가 높다는 특징을 가진다.

OECD의 고용보호 평가순위는 법률 측면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이며 고용보호의 실제 효력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정보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아래 표는 OECD국가의 기간제에 대한 규제 기준을 고용보호의 실효력이라는 측면에서 전반적 사회적 규제로 확장해서 살펴본 내용이다.

사유규제를 도입한 국가가 전체 27개국 중 9개국(부분적용까지 11개국)이며, 아무런 규제가 없는 국가가 한국, 일본을 포함해 5개국, 반복갱신 제한국가가 17개국, 기간제한 국가가 13개국이다. 그런데 갱신 시 사유제한이 실행되는 경우가 3개국, 단체교섭의 영향력이 강해 실질적 규제가 이루어지는 국가도 최소 3개국 이상이다. 무엇보다 앞서 말한 차별금지 조항이 유럽국가에서는 포괄적 영향을 미치며, 다른 제도적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유제한반복갱신제한기간제한초점
호주   
오스트리아  법원에서 갱신 시 사유제한
벨기에  
캐나다    
체코    
덴마크 갱신시 사유제한. 단협영향력
핀란드  
프랑스경영상 해고후 사용못함 추가
독일 단체교섭 영향력 고려해야
그리스 
헝가리공공부문 적용 
아일랜드  갱신시 정당한 이유 있어야
이태리  갱신시
기간제한
 
일본    
한국
    
멕시코  갱신, 기간은 단체교섭으로
네덜란드  갱신, 기간은 단체교섭으로
뉴질랜드  
폴란드   
포루투갈 
슬로바키아   
스페인 
스웨덴일정인원 이하만
사유규제 해제
 단체교섭 영향력 고려해야
스위스   
터키  
영국  법규제 없는 자치주의전통에서 고용보호 규제로 이동현상
* 자료= OECD, Employment Outlook 2004에서 수정 인용

일본 따라하기, 언제까지?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문제는 정부가 비정규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새삼 확인되는 ‘일본 따라하기(After Japan)’ 경향이다. 고용평등법, 단계적 노동시간단축에서 최근 비정규입법까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계속되는 일본법 베끼기와 일본 노동시장 따라가기를 언제까지 할 것인가? 일본이 사유제한을 도입할 때에야 검토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비정규고용의 증가로 인해 성장기반이 축소되고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외톨이가 증가하는 등 일본 사회는 밑바닥으로부터 균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대국, 생활빈국’인 일본이 과연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미래인가?

요즘 정부는 용어는 유럽 쪽에서 빌려오지만,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은 일본을 그대로 쫓아가 유럽식 이름에 일본의 모양새라는 괴짜를 빚어내고 있다. 양극화를 언급하면서 노동빈곤을 양산하는 비정규입법을 내놓는 자기모순을 언제 정부가 명쾌하게 해명한 적이 있는가? 정부 비정규입법이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모양이다. 앞으로 일본처럼 제조업까지 파견직 허용을 확대하려고 불법파견 판정을 내리고도 실질적 제재조처를 내리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를 바랄뿐이다. 아니 이를 확인할 기회조차 오지 않기를 바라야겠다.

정부법안 폐기 필요성을 다시 한번 살펴보며

정부는 정부입법안이 유연화 대세를 인정하면서도 남용을 막는 비정규직 보호를 절묘하게 조화한 ‘정답’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 태도를 보인다. 확산과 보호라는 반대방향의 힘을 아우를 수 있는 천하의 묘안을 제출했다는 말이다. 특히, 확산에만 기여하고 차별해소 효과는 없다는 노동계의 줄기찬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답 없이 도덕성에 대한 역공으로만 대응했을 뿐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낳을 법안을 만들어 놓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보호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로 일관하는 정부는 정녕 무책임하지 않다면, 무능력한 거다.

정부는 파견제 확대로 확산 효과가 있지만, 휴지기가 있어 확대 3년 만에 3배 이상 파견직이 증가한 일본만큼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 아닌 추측을 한다. 그러나 휴지기는 기간제와 혼용의 방식으로 무용지물이 되거나, 3년으로 확대된 사용기간이면 3개월 휴지기가 제동장치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훨씬 설득력을 갖는다.

정부는 차별해소효과가 작동한다고 하면서 약 10%의 임금인상효과를 도출한 연구용역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이를 분석해본 결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닌 ‘동일인적속성 동일임금’이라는 편법을 동원한 말 그대로 추산 결과일 뿐이며, 이를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비정규통계(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대입하면 기껏해야 4%의 임금인상효과 밖에 없다.(김성희・황선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 국회노동기본권의원모임, 2004 참조)

그것도 개별구제장치이자, 이제까지 노동위원회 개별구제 판정 결과를 보건대 노동자가 승소할 확률이 희박한 차별시정장치를 통해서 모든 노동자의 차별이 시정될 때에나 나타날 결과일 뿐이며, 동일노동동일임금 등 차별판단의 기준마저 없는 상태에서 차별여부를 어떻게 판단하겠다는지 모호한 상태에서 대표적인(아니 유일한) 보호조항이라고 내놓은 내용이다.

정부의 기간제‘보호’법안은 현재보다 과연 좋은가

이 시점에서 정부가 제출한 기간제보호법안이 적용되면 과연 현 상태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법안 중에서도 가장 잘 이해하기 힘들고 오해와 섣부를 기대가 많이 나타나는 분야이기도 하다.

현행법으로 기간제고용은 1년 이내로 제한되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무기계약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막연하게 해석할 수도 있는 이 조항의 틈새를 헤집어 1년 이상 기간제의 고용보장을 명분으로 2년, 3년, 5년 계약직도 등장했고 법원 판례로 최근 인정되어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미 현실은 법을 넘어서고 있다.

정부입법안을 보자. 고용기간이 1년에서 3년으로 확대되었다. 3년 이내에서 자유롭게 계약기간을 정할 수 있다. 한 달, 3개월, 6개월, 1년, 2년 2년 6개월 등등 다양한 생존기간을 가진 기간제가 현재처럼 여전히 존속한다. 매 1년이 안되어 반복갱신하던 추세가 바뀌었으므로 현재도 이와 똑같다. 3년 이상 계속 고용하면 해고제한이 적용되는데, 그 때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아니고 기간제로서 계속 고용된다는 뜻이다.

정규직으로 쓸 사람도 3년 이내 계약직으로 고용하고, 일부를 3년 넘어 계속 고용한다 하더라도 굳이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기간제로 계속 고용하면 된다. 개인이 구제신청을 하고 차별시정기구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아마도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계약직으로 쓰다가 말 사람을 누가 3년 이상 계약직으로 뽑겠는가. 또 유일한 보호장치라고도 할 수 있는 차별시정시구의 실효성은 0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통해 차별이 해소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낙타와 바늘귀의 관계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과연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가? 눈을 씻고 찾아봐야 보일락 말락 하는 보호장치를 놓고 파견제 확대와 교환하자면서 보호방안이라고 우기기까지 하는 걸 그냥 눈뜨고 지켜봐야 하는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제동장치가 필요한 때

모든 비정규직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하긴 하지만 기간제는 분명 정규직 고용을 회피하기 위한 가장 극악한 비정규 활용전략의 산물이다. 외국에선 사유제한을 법으로 명시하든지,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의 영향력으로 보호를 받든지, 일반법의 조항이 구별 없이 적용되든지, 각각 방식은 달라도 또 아무런 제한조처가 없다고 하더라도 기간제가 아무런 제약없이 남용되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기간제 고용이 고용의 정상적 형태는 아니며 차별받지 않는다는 보편적 원리가 밑바탕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간제 사유제한과 같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규제방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우리의 상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정규고용과 비슷한 시간, 비슷한 일을 하면서 차별받는 기간제가 비정규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우리 노동시장의 악성 차별구조를 직시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예를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비정규직 ‘악용’ 현상이다.

한국에선 노동자가 기본권을 행사하는데도 정부가 하라마라, 어디까지 하라고 지정하려고 든다. 하청노동자의 원청에 대한 노동자로서 권리 요구나, 노동자에서 자영인 신분으로 전환된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 부여 여부가 왜 서구에서는 논의거리도 되지 않을까? 이제 기본권을 구축해나가는 의미에서 정규고용을 고용의 기본형태로 삼고 비정규직이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아야 되고 비정규직을 마구잡이로 활용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구체화하는 비정규직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차별로부터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다수를 방치하고 오히려 양산해왔다. 시장에서 사용자의 인건비 절감 욕구를 사회적 기준을 갖고 통제할 기반과 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이제 고용의 정상적 형태로 행세하는 기간제 고용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기 위해서, 사유제한과 같은 분명한 제동장치를 부착해야 한다. 개별 자본의 인건비 절감 욕구가 양극화라는 사회의 파탄현상을 초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자는 대단치 않은, 소박한 요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제동장치로서 ‘부분의 성공이 전체의 실패’를 가져오는 총합의 오류를 제어할 핵심 수단이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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