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논쟁이 노동문화판으로 번졌다.

노동절 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노동문화판의 이번 논쟁은 수도권지역 현장문화패 절반이 노동절 문화공연에 불참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세계노동절을 기념하는 5월1일 노동절 집회는 전태일 열사를 기념하며 11월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와 함께 2대 노동집회라 할 수 있다. 그동안 현장조합원들로 구성된 수많은 노래패, 몸짓패, 풍물패, 영상패는 전국의 조합원들이 모이는 이 대규모 집회에서 다양한 문화공연을 선보여왔다.

언뜻 생각하면 영광일 것도 같은 노동절 집회 중앙무대에 오르는 일과 ‘사회적 교섭’간의 상관관계가 무엇이길래 문화패들이 대거 불참하게 됐을까. 민주노총은 이들의 행동이 일종의 ‘보이콧’이라고 하고, 당사자들은 “민주노총으로부터 짤린 것”이라고 한다.

대회기조와 사회적 교섭의 상관관계

“비정규개악안을 폐기하고 노사관계로드맵 등 신자유주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은 총파업뿐이다. 총파업을 구호만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선 내부 혼란을 주고 있는 사회적 교섭을 중단해야 한다.”

메이데이 행사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한 전문 문화활동가의 말이다. 그는 문화활동가는 ‘선동’의 역할을 해야 하고, 선동할 투쟁내용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노동절 문화행사의 기조는 비정규개악안 폐지와 함께 사회적 교섭 폐기가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회적 교섭을 이야기하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거짓선동’이라는 것. 문화활동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들의 불참결정으로 말미암아 서울에서 열리는 노동절 대회는 예년보다 문화패 참가율이 절반에 그치게 돼 ‘화려한 문화공연’을 보여주기 힘들지도 모른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대회 준비기간도 짧아진 상황이다.

민주노총 내에서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은 대화와 타협이 불가능한 논쟁일까. 상황이 이렇게까지 온 과정을 살펴보자.


민주노총 문선대 지침이 논란 키워?

노동자대회나 노동절대회의 경우 보통 조합원으로 구성된 현장문화패들로 각각 율동, 노래, 풍물, 영상 등 ‘문화선동대(문선대)’를 구성하고 전문 문화단체 활동가 중에서 연출자를 선정한다. 이번 노동절 행사는 수도권과 각 지역별로 나눠서 하는데, 논란이 된 곳은 중앙, 즉 수도권 행사다. 수도권 문화패들은 지난 4~5년간 중앙무대를 책임져 왔던 단위이기도 하다.

문선대를 구성하기 앞서 총연맹 문화담당자와 산하연맹 문화담당자, 전문문화단체 활동가로 구성된 ‘기획연출단 회의’를 하면서 논란은 불거졌다.

이미 지난해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 때 문선대와 민주노총 집행부간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양쪽 모두 초반부터 ‘입장’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문선대는 ‘사회적 교섭 반대’를 주장하는 공연을 기획했고 하루 전에 공연내용을 알게 된 집행부쪽은 “물리력을 동원해서 막겠다”고까지 밝혔다.

공연 1시간 전까지 무대 뒤에서 논란을 벌였으나 문선대는 결국 무대에 올라 ‘사회적 교섭 반대’ 구호를 외치는 등 예정대로 공연을 강행했다.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던 시점은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다음해 1월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있던 때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집행부쪽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는 “비정규개악안 폐기 및 보호입법 쟁취, 무상의료 무상교육, 비정규기금 모금 등 대회기조에 찬성하는 문화패로 문선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문선대 지침’을 내왔다.

지침 내용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내용’을 채우는 과정에서 비정규법안을 폐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그런 내용을 담은 기획안이 제출된 것이다.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3차례나 대의원대회가 무산된 이후 상황을 겨우 수습해 민주노총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을 추진하고 있는 현재, 공공연하게 사회적 교섭 반대를 주장하는 공연을 집행부로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실장은 “노동절 집회는 투쟁과 교섭 전술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라 대정부, 대자본 요구를 명확히 밝히고 투쟁대오를 단단히 묶어내는 자리여야 한다”며 “사회적 교섭 반대를 내용으로 하는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혼란만 주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연맹의 문화담당자도 “대회기조를 주최쪽이 정하는 것은 당연하며 정치적 입장이 있다 하더라도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기획해서 공연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행부와 문화선동의 관계

이와 함께 집행부와 문화활동가들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불거졌다.

‘몸짓 선언’ 소속 박현욱씨는 “사회적 교섭 문제와 별개로 집행부가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하면서 몸짓패 내부에서 ‘우리가 꼭두각시냐’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는 총파업을 앞두고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어쨌든 참가했지만 이제 계속 이런 식으로 해선 안된다는 위기감이 있다. 갈등이 있더라도 공론화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회보험노조 몸짓패 김명진씨도 “문화패 활동을 하는 조합원들은 투쟁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 내서 연습하면서 활동하는 거다. 문화활동가가 어떤 대회기조를 고민하는지부터 의견을 수렴해서 중앙에서 묶어내는 과정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고민은 문화패의 독자성과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

이같은 입장차는 문화패가 자신들은 짤렸다고 생각하고 민주노총쪽은 이들이 보이콧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이유가 됐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문화패 독자성과 관련한 고민이 10년 이상 이어져 온 것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사회적 교섭’이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가장 예민한 ‘사회적 교섭’과 관련된 문제다 보니 문화 관련 담당자들도 이번 일에 대해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지난 3월 말부터 시작된 기획연출단과 문선대 회의는 4월 중순까지 6차례 회의를 가졌으나 결국 “하겠다”는 문화패와 “못하겠다”는 문화패로 나눠지게 됐다. 한 문화패 내부에서도 활동가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며 개인적으로 참가와 불참을 결정하는 곳도 생겼다.

이에 따라 노동절 행사에 참가하는 문화패 규모는 대폭 줄었다. 보통 율동패 20개, 노래패 8~9개, 풍물패 10개, 영상패 5~6개 정도가 참가했으나, 이번엔 율동패 3~4개, 노래패 4~5개, 풍물 10개, 영상패 3~4개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수도권 율동패들이 결속력이 높다보니 불참률이 더 높았다. 일부 영상패는 지난 25일에서야 참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장문화패 뿐만 아니라 전문문화단체 소속의 활동가들도 일부 참가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다행히 뒤늦게 기획이 확정된 노동절 행사에서 문화공연이 확 줄지는 않았다. 노동절 집회에 참가한 조합원들은 그간의 사정에 대해 눈치를 못 챌 수도 있다. 그러나 5월1일 광화문에 모인 노동자들이 이날 집회에서 무엇을 보고 돌아갈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인터뷰>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실장
민주노총의 문화사업을 총괄 책임지고 있는 이준용 민주노총 문화미디어실장은 “정치적 입장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조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행사를 주체하는 단위를 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행사에 참가하지 않기로 한 문화패들은 민주노총 집행부와 집회에 대해 생각하는 상이 다르다고 한다.
“민주노총이 노동절 대회기조를 정하면서 70만 조합원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전부 밝히기는 어렵다. 결국 상집이나 중집회의 등 의결기구를 통해 기조를 결정하고 집행부는 책임있게 집행해야 한다. 이번 대회기조는 의결기구를 거쳐 확정한 것이다. 집행부의 요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문화활동가들의 정치적 소신도 존중돼야 하지만 더 존중해야 할 것은 조직의 의사 결정사항을 책임있게 집행하는 것이다.


특히 노동절 대회는 교섭전술이나 투쟁전술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 대자본, 대정부의 요구를 확실히 밝히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사회적 교섭 논쟁이 ‘문화판’으로 확대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직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다보니 이렇게 문제가 불거졌다고 본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이번 대회에서 사회적 교섭 반대를 주장하는 공연을 하는 것은 조합원들을 단일한 투쟁대오로 묶기보다 혼란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올해 노동절 투쟁문화제의 기조는.
“노동절의 핵심내용은 비정규보호입법 쟁취, 무상의료 무상교육, 50억원 비정규기금 모금이다. 4·30 행사(노동절 전야제)와 본행사로 나눠지는데, 큰 기조는 비정규 개악안 저지 뿐만 아니라 우리의 비정규보호입법 요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 향후 과제는.
“오해가 있는 것은 풀어야 한다. 민주노총이 문화사업을 하면서 그동안 소통이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이기도 하다. 향후 문화단위에서 소통구조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사업을 충실히 하겠다. 8월 중에 문화활동가대회가 계획돼 있는데 그 때 충분히 의견을 나누겠다.”
<인터뷰> 사회보험노조 몸짓패 김명진씨
“현장의 목소리를 무대에 올려야 한다”
사회보험노조 몸짓패에서 4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명진씨는 지난 4년간 노동절대회에 율동문선대로 참가했지만 올해는 무대 아래에서 노동절 행사에 참가한다. 그는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자신의 요구를 무대에서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사회적 교섭 논쟁이 '문화판'으로 확대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 교섭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회 기조 등 모든 것들을 위에서 규정해서 내려보내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지금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계속 노사정 교섭을 해야 하는 것을 반대한다. 현장에서 느꼈던 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돼서 아쉽다. 지금이라도 하고 싶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 참여하면 앞으로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현장문화패와 민주노총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현 집행부가 부른다면 할 수 있다. 현 집행부가 주최하는 행사에 불참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지침’처럼 규제하면 갈등이 계속될 것이다.”


- 문화선전 활동가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장 투쟁성을 부정하지 않고 현장 목소리를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 문화활동가들은 투쟁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 내서 연습하고 활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바로잡습니다
위 기사에서 “민주노총 문선대 ‘사회적 교섭’ 논란 절반 불참”이란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와 관련 민주노총이 당초 밝힌 문선대 활동지침에는 “대회기조에 찬성하는 문화패로 문선대를 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고, 다만 그렇게 해석될 여지도 있다는 논란을 빚었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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