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빈곤, 불평등, 산재 등의 문제가 신문 1면을 장식하지 못한다. 노동은 경제의 부속물로 치부되고, ‘노동자’라는 존재는 조직적으로 해체되며 그저 ‘국민’속에 묻혀 버리고 있는 것이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계층 상승의 줄을 타려는 ‘사교육 열풍’에서 보듯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데, 노동자들이 과연 자유로운가. 이는 질 수밖에 없는 사다리 게임에서 인질이 돼 있는 꼴이다.”

“휴식, 재충전, 안식처를 제공하는 ‘가족’은 사회적 갈등의 스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은 가족제도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우리사회 보수화의 완강한 '진지'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 노동자 형성’이란 주제로 25일 성공회대 노동대학 강의에 나선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과학부)는 ‘국민·경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장벽을 넘어서는 과정이 ‘노동자 정체성 찾기’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의 실체는

1천4백만 노동자가 존재에 기반한 ‘노동자의식’을 갖지 못하고 정치, 문화, 가족적 차원에서 해체되고 있는 상황. 김동춘 교수는 노동자계급이 ‘노동자의식’을 갖지 못하는 원인 분석과 함께 그 사회적 장벽을 깨뜨려야 함을 줄곧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우선 “자신은 점점 노동자화 되어가지만 정작 본인은 자영업자라 생각하는 공백, 즉 국민의식과 노동자의식이 충돌하고 있다”며 “국민 이데올로기는 군사주의와 조국근대화 등 강요된 국민통합으로 누적되면서 87년 대투쟁 이후에도 노동자의 사고를 뿌리 깊게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했지만 과연 국민의식을 벗어 던지고, 다른 나라 노동자와 동질의식을 느끼기는 참으로 힘들다”며 “다른 사업장간 노동자 연대나 독도문제에서 보듯 ‘국민’의식은 '노동자'의식보다 더 지배적이며 뿌리가 깊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자보다 ‘여성’이라는 의식이 압도적으로 앞서 있고, 노동자들은 노동자의식보다는 ‘학연, 지연’에 의해 이끌려 가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약화와 제거가 노동자 단결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 노동운동이 성장하려면

구체적으로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삼성, 현대 등 ‘기업은 국가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기업이 국가의 작품이다 보니 노동쟁의마다 불법파업 딱지가 붙고, 즉각 공권력이 투입되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재벌의 가족경영 효과’를 들며 “혈연으로 묶여 있다보니 비혈연 집단인 노동자에 대한 엄청난 배타감으로 나타나고, 이는 노사관계의 격렬한 대립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와 함께 “‘기업별 노사관계 체계’ 속에서 노동자들은 ‘내가 그래도 좋은 회사 다니는데’라는 ‘회사의식’이 노동자의식보다 앞서고 있다”며 “한솥밥 의식이 노동자들 간의 연대를 차단하고 있고, 양대노총도 이걸 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가족과 기업복지 차원에서 ‘사내복지 확충’은 일부 노동자의 자본에 의한 포섭과 노동계급 분열을 낳는다”며 “노조가 자녀학자금 대출 등을 당연히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독이 든 칼과 같다”고 강조했다.

해방 50년이 더 지나서야 노동을 표방하는 진보정당이 역사의 무대로 진출했으나 지역구 2석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양대노총 조합원이 150만명에 이르는데 민주노동당 당원은 3만명 정도인 것을 어떻게 설명할 건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55%에 이른다지만 노조가입률은 1%에 그치는 이유는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김동춘 교수가 강의초반 수강생들에게 던진 질문을 곱씹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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