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정 실무대표들 간에 막바지 사회적 교섭이 진행 중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들리는 이야기로는 어느 정도 의견의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도 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고용 사유제한 문제를 둘러싸고 격심한 의견대립이 계속 중이라고도 한다. 결과가 어찌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떻든 노동계는 다시 한 번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라고, 노동계가 다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는 문제가 또 남아 있다. ‘2007년 문제’가 그것이다.

지난 98년 노동법 개정 당시 노조 상근자의 임금을 회사가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에 포함해 처벌하도록 했고, 사업장 수준에서의 복수노조도 허용하기로 했다. 노동계의 우려를 감안해 이 법의 적용을 2002년까지 유보하기로 했고, 2002년에는 다시 이를 5년 유보해 2007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단언할 수는 없으나 지금의 노사관계 상황으로 보면 이 법의 적용을 또다시 연기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지 않으며, 내 판단으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사안의 성격상 이를 다시 유보하려면 노동계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자에 대해 무엇인가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인데,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노동계가 더 이상 양보할 그 무엇이 있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조, 특히 생산직노조의 대부분은 노조 자체의 재정으로 상근자의 임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다. 필자의 계산으로는 적어도 2천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대기업노조들이 아니고서는 정상적인 노조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상근 인력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의 문제는 오히려 대기업노조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자체 자원의 절대적인 한계로 인해 복수의 노조들이 서로 경쟁할 그 무엇이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지만, 대기업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르다. 사용자노조(company union)의 출현이 당장 우려되며, 노동계 내의 심각한 계파 대립이 서로 다른 노조로의 분립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노동계도 이 문제를 편법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돌파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공법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노조 상근자의 임금을 사용자로부터 받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노조의 상근 체제와 재정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사업장 복수노조 체제 하에서의 사업장 교섭이 노조의 결속력과 자주성을 결정적으로 타격할 수 없도록 단체교섭의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에 나서는 것이 그것이다.

노조의 상근인력을 사업장에서 지역사무소로 재배치하고, 사업장 내의 노조 활동은 비상근의 현장위원들이 전담하는 현장위원(shop steward) 체제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현장위원들의 활동시간과 활동비용은 사업장 단협을 통해 확보하고, 노사협의회를 경영참가조직으로 바꿔나감으로써 이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복수노조 체제에서 사용자들이 단체교섭의 차별화를 통해 노조들을 분열시키고 약화시킬 가능성에 대비해, 지역·업종·산업 단위의 사회적 교섭의 구조를 확대하고 강화해 나갈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노조, 특히 대기업노조들이 현재와 같은 기업별노조, 기업별 단체교섭의 구조를 고집하는 한, 이러한 정공법의 대응 방안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노동 상황은 아무리 큰 대기업노조라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 기업 단위에서는 조합원들의 고용문제, 임금문제, 근로시간 문제를 안정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없고, 초미의 관심사가 돼있는 비정규직 문제 등은 더더욱 해결이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 근접해있다.

중소기업 노조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위기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지금의 노동운동 위기의 본질은 그동안 노동운동의 교두보 역할을 해왔던 대기업노조들의 위기에 있는 셈이다. 양보교섭을 통해 위기를 우회하려 했던 일본과 미국의 노동운동이 처해 있는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87년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 정면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노동자들 스스로가 노동운동에 대한 믿음을 잃을 수도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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