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안을 두고 노동단체가 투쟁으로 맞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여나가고 있는 가운데 어느 한 켠에 혹시 우리가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봐야겠다. 엊그제 ‘장애인의 날’을 맞았다. 장애인의 권익을 보호하고 아픔을 공유하자는 의미로 장애인의 날을 제정한지 벌써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률은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들의 무관심을 질타한다. 기업들이 장애인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장애인들을 채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부담 가중시키는 장애인고용제도 변경 안돼

이런 생각에서 일부 정치권이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의 제도 변경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의 문제를 단순히 기업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규제 일변도의 보호를 추진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장애인을 보는 비장애인들의 편견 등 사회 일반의 인식과 훈련, 취업알선 등 장애인 고용과 관련한 인프라 구축을 소홀히 한 국가의 책임도 크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고용을 위한 우리 정부의 지출은 GDP의 0.0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네덜란드의 0.62%, 오스트리아의 0.5%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정부지출의 비중이 비교적 낮은 프랑스(0.08%)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물론 이를 두고 우리 정부를 탓할 수는 없다. 장애인 보호의 정도는 그 국가와 사회의 발전 정도,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맞춰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장애인 취업의 문제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국민소득을 2~3만달러로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계층들을 배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동의 석유 부국들을 선진국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선진 장애인 정책의 핵심은 제도적 강제보다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사회적 보호다.

정부 실패한 규제위주 정책 집착 말아야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생계유지와 일을 통한 자아성취 등 개인적인 측면 못지않게 우리 경제가 보유한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피부양인구를 최소화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우리 주위를 보면 비장애인 못지않은 노력으로 사회생활에 임하고 있는 장애우들이 많이 있다. 이는 장애의 정도나 유형, 그리고 직무에 따라서는 비장애인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거나 약간의 배려만 해 준다면 비장애인과 같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이 있음을 보여준다. 생산성이 다소 떨어지는 장애인이라도 기업의 인사·임금제도를 약간만 손질한다면 장애인 고용에 따른 생산성 저하의 문제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장애인으로 태어난 주인공이 미국의 영웅으로 커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말아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두 영화를 보면서 장애인과 관련한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장애아인 아들의 손을 놓아 버리고 싶은 마음, 아버지와 동생이 초원이를 외면하고 싶은 마음, 이것이 우리 장애인들의 현주소가 아닌가 싶어서이다.

장애인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 당국자들도 더 이상 실패한 규제 위주의 정책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하는 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기업에게 미루는 것을 마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 양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