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부쩍 담배 생각나겠습니다.”

그랬을 것 같았다. 국회에 들어 온 지 1년이 됐지만 노동자들의 고용·노동조건은 갈수록 악화되고 현장의 노동탄압은 특히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교묘한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유연화를 뒷받침한다고 판단되는 비정규법안을 제출한 당사자인 정부여당은 국가인권위의 정당한 권고에 되레 온갖 수식어를 붙여가며 ‘신경질적’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게다가 어제(18일) 상임위에서는 노동자 보호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커녕 실태파악을 위한 자료제출 요구마저 동료의원들의 거수로 묵살당해야 했다. “자꾸 흡연욕구 자극하지 말라”며 손사레를 치긴 했지만 어제 밤, 불면에 시달릴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 ‘끊었던’ 커피 한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그였다. 민주노동당 단병호(57) 의원을 19일 낮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성장 중심’ 노무현 정부, ‘마각’ 드러나 

“이미 예견됐던 거다. 김대환 장관이 개혁 마인드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취임 초기 기대도 없지 않았지만 노동정책은 갈수록 반개혁적이다. 어차피 김 장관은 ‘경제’ 중심이라는 경제학자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운 데다 성장 중심의 노무현 정부 정책에 적극 조응해 온 사람 아닌가.”

대기업 정규직노조에 대한 비난에도 모자라 정부의 비정규직법안에 의견을 표명한 국가인권위를 향해 ‘단세포적인 기준’, ‘비전문가들의 월권행위’, ‘잘 모르면 용감하다’는 등의 원색적 비난을 퍼부은 정부여당에 대한 단 의원의 입장은 명쾌했다.

단 의원은 “김 장관이나 이목희 의원의 발언은 최소한의 규범조차 버린 것”이라며 “자기 주장 이외의 주장은 다 틀렸고 무식한 거라고 비난하는 태도는 상식 이하”라고 일침을 가했다.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와 차별 문제에 대한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의견표명인데도 이를 두고 ‘정치적 행위’라든가 ‘졸속적 판단’이라고 평가할 순 없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시장중심 정책, 노동유연화만 끊임없이 얘기하는 정부여당이 인권위 의견표명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상실되는 듯하니까 이를 사수하기 위해 극단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발언을 퍼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민주노동당에 있어서가 아니라 인권위 의견을 보며 정말 고민이 많았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던 그는 내용에서도 후한 점수를 줬다. “우리가 낸 법안에 담겨 있는 파견법 폐지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등은 빠져 있지만 파견노동자 임금을 사용사업주가 직접고용한 노동자 임금의 일정비율 이상으로 보장하도록 하는 등의 의견은 우리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권위가 ‘인권’에만 집착해 ‘시장기능’을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진 않다. 그는 “경제적 측면도 의식해야 하겠지만 차별해소와 고용안정성 보장은 대전제”라며 “이 대전제를 실현하는데 드는 경제적 비용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단 의원은 “경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재정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 하나를 놓고 보면 답답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만 생각한다면 10년 가도 불합리한 고용관행을 바꿀 수 없다”며 “원하청 불공정거래, 재벌 독식구조, 중소기업의 재정불안정성 등 산업구조의 문제부터 치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 주장은 단병호 의원이 장기과제로 검토 중인 ‘기업의 공공성’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삼성이 10조원의, 현대차가 1조7천억원의 순이익을 낸 것은 노동자의 노동력은 물론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담보된 것이기 때문에 이 이윤이 중소기업 배분 등의 방식으로 사회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중소기업도 육성되고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 보호방안이 강구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법에 ‘불법시 대처요령’을 쓸 수는 없지만…”

이처럼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방안이 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던 단 의원은 불법파견에 대해 미온적 행정대처로 일관하는 노동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과 시정지시 미이행에 대한 검찰고발로 할 일 다 했다는 입장인데, 법률에 근거해서 말하는 거라면 그것밖에 할 게 없다. 어차피 법에 ‘불법시 대처요령’을 다 써놓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런 법의 허점을 이유로 노동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우선 2년 이상자부터라도 직접고용토록 지시하고 불법파견으로 빚어진 노사갈등부터 해결해야 한다. 행정‘관료’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뿐만 아니다. 노동부는 최근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해서도 원청업체인 현대중공업이 지배개입을 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도 축소·해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18일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선 단 의원과 정병석 노동부 차관 간에 설전이 오가기도 했다.

정 차관은 당초 “기존 판례입장은 중노위 이번 결정과 다르기 때문에 수용하기 어렵다”며 부당노동행위 신고사건을 재조사할 의향도 없음을 시사했지만, 결국 “이 결정을 다른 기업으로 확대 적용시킬 수는 없다”면서도 “만약 재조사 요구가 오면 원청(현대중)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법안을 제출한 단 의원은 “대부분 사내하청은 경영상 독립성도 거의 없어 실질적인 지배개입은 원청이 다 하고 있다”며 “이번 판정이 예외적인 게 아니라 그동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기존 판정(례)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탄압’만으로 저항흐름 제어 못한다

단 의원은 또한 현대차나 기아차, 하이닉스, 전남대병원 등에서 진행 중인, 특히 사내하청노동자들로 대표되는 비정규직들의 생존권적 저항에 대해 ‘탄압’으로 일관하는 정부여당 및 기업의 태도를 크게 우려했다.

“물은 계속 흘러가는데 임시방편으로 돌맹이 몇 개 둔다고 해서 그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흘러오던 물은 그 위로 넘쳐 흐를 것이다. 지금 비정규직들의 현장투쟁이 어렵게 어렵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본과 정권에 대한 위협수위는 위험한 수준이다. 임금인상, 복지향상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벼랑에서 터져 나오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자제와 희생만을 요구해선 안 된다. 물리력은 일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이어 그는 노동시장 이중화라는 자본의 교묘한 탄압과 비정규직들에게 온당한 노동3권도 부여하지 않은 채 방조만 하는 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해 노동상황이 과거로 회기하는 듯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후다닥’ 지나간 1년

이러한 노동현실과 함께 그의 국회 생활도 어느새 만1년이 가까워진다. 단 의원은 ‘거대한 소수’라고 했지만 정책을 통해 평가받을 수 있는 내용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특히 환경노동위 안에서 그는 ‘무기력’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보수여야의 벽을 톡톡히 실감해야 했다.

“적어도 노동문제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양당과 대척점을 세워야 하기 때문에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개별 의원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대립이다.”

근원적인 차이뿐 아니다. 그는 18일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서는 정부 자료제출 요구마저 묵살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국가기밀문서도 아닌데 말이다. 불법파견 문제로 심각한 노사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자동차 사장과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을 참고인으로 부르자는 출석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기력하더라. 국회가 정부에 자료요청마저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의원으로 직무를 포기한 것이다. 이런 국회에서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덕의 소치’라며 말을 돌렸지만, 표정 한 구석에는 보수양당과의 이념차 속에서 노동의제들을 관철시켜내는 것은 물론 의회 안에서 ‘정치력’ 발휘라는 또 다른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각오가 비치는 듯했다.

“지난 1년이 정말 ‘후다닥’ 갔다”고 털털한 웃음을 짓던 그에게 앞으로 3년, 아니 올 하반기 집중할 과제로 뭘 꼽고 있는지 물었다.

“시장중심, 노동유연화를 뒷받침할 제도를 정비하는 차원에 불과한 하반기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의 방향을 노동3권 보장이라는 쪽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현안 과제들과 함께 정책과제에 대한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드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그는 우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가능하다는 타당성을 입증해 보겠다고 했다. 또한 공기업의 민영화, 정확히 말해 사유화 과정을 비판적으로 보면서 제대로된 ‘민(民)영화’라는 관점에서 기업의 공공성 확보에 주력할 생각이다. 소유는 개인이 하더라도 기업의 공공적 가치를 부각시키고, 또한 생산의 주역인 노동자의 경영참여, 지배개입을 제도화하는 대안을 내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인권위 의견표명에 대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잠시 브리핑룸을 들러야 했던 단 의원은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마자 또 2시30분부터 진행된 국회 앞 민주노총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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