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같은 선두기업이 장애인고용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삼성이 앞장서 전체 종업원의 1%만 중증 장애인을 고용해도 국내의 다른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할 것입니다. 삼성이 정신지체, 자폐 등 중증장애인 1% 고용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를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박은수(48)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그가 내놓은 대안은 삼성의 중증장애인 1% 고용 프로젝트. 그만큼 지금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다.

박은수 이사장을 지난 18일 성남시 분당구 공단 이사장실에서 만났다. 박 이사장은 공단의 역대 이사장 중 최초의 중증장애인(지체장애 1급) 이사장이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정부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만들어지고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15년. 지난 90년 우리사회의 장애인고용에 대한 인식은 너무도 저조했다. 그렇기에 당시로선 의무고용제도(고용할당제) 도입은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15년을 거쳐 오면서 의무고용제도를 둘러싼 평가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기여를 해온 것은 사실이나 15년이란 세월만큼의 성과는 이뤄내지 못했다는 신랄한 지적 또한 있다.

이에 대해 박은수 이사장은 “뚜렷한 성과가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래도 의무고용제를 채택해 장애인고용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고용확대를 위한 발전이 있었다고 본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정부부문 2% 고용 달성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사회적 약자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먼저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부의 노력 없이 민간이 해결하긴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2% 달성은 정부가 이 제도를 살리려 노력했고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면 그 뒤의 그의 구상은 무엇일까.

“다음은 공기업입니다.”

박 이사장은 먼저 공무원사회에서 2%를 달성했기 때문에 공기업에서는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동안 공기업(정부투자기관)은 정부의 눈치를 봐 왔어요. 그러나 정부부문이 했으니 다음 단계는 공기업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 공기업 평가시 장애인고용 여부를 ‘경영평가’ 지표로 삼도록 (기획예산처, 중앙인사위에) 요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올해 틀림없이 공기업에서 장애인고용은 더욱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장애인고용 확대, 대기업이 나서라

약력
79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80년 사법시험 합격
83년 대구지법 판사
88년 변호사 개업
91년 대구시 장애인고용대책위원장
2004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민간위원(현)
주요저서
“나는 눈물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그 다음은 민간기업. 특히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은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공단은 올해부터 고용율 1% 미만 해소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역시 대기업이 장애인고용 확대를 위해 가장 역할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우선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동안 공단은 ‘무력감’에 빠졌었지요. 정부와 민간부문이 모두 안 지키니까, 장애인의 생존권 문제임에도 우리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고요. 그러나 이제 정부가 모범을 보였으니 순서대로 가면 됩니다. 1%도 안 지키는 곳 대부분은 대기업입니다. 정부가 ‘선례’를 만든 만큼 대기업이 회피하지 않고 의무고용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기업의 고용촉진을 위한 방안으로 더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은 어떨까.

“일면 동의합니다. 그동안 대기업은 고용부담금으로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1% 미만 기업이 의무고용 사업장의 절반을 넘습니다. 올해부터 이들 사업장에 (50% 더 부과하는) 가산징수를 하기 시작했지요. 또 개인적으로는 각 기업의 연봉에 상응하는 페널티를 부과하는 게 하나의 방법일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은 강력한 페널티보다는 기업이 스스로 장애인고용에 나설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먼저란 시각이다.

“기업은 일종의 규제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보다는 대기업 스스로가 사회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중요한데요. 양극화 시대의 대기업은 (사회의 부를) 더 가져가는 만큼 나눔의 실천을 더 해야 합니다. 기업의 이미지 제고와 고객을 감동시키는 마케팅 효과의 측면에서도 유의미할 겁니다.”

고용장려금 중증장애인에게 돌아가야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개선의 핵심 중 하나는 고용촉진기금의 안정적 재원 마련일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노동부 업무보고 당시 ‘고용 여부와 상관없이 별도의 재원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저는 기금을 일반회계로 안정화시켜야 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장애인고용 인프라 구축비용은 일반회계로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 기획예산처는 전년도 예산 대비만 따지는데요, 장애인 예산은 그렇게 사고해선 안 돼요. 장애인 문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금운용과 관련해 지금의 제도는 장애인이 20만명이던 시절 설계된, 기업이 장애인고용 문제를 별로 생각지 않았던 시절 나온 정책인만큼 기존처럼 장려금을 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체장애인에게 초점을 두었던 정책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장려금 지급도 정신지체 등 중증장애인에게 주어지도록 정책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박 이사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 했다. 지체장애1급인 그에겐 아픔이 있었다.

“저는 고시에 합격했지만 장애인이란 이유로 판사 임용에서 거부당했지요. 82년입니다. 그 시절엔 그랬어요. 예전엔 경증장애인에게마저 아예 취업의 기회를 주지 않았어요.”
결국 그는 판사 임용 거부에 대해 대법원 투쟁을 통해 결국 판사로 임용됐지만 여기까지 오게 한 그의 인생의 진로를 바꾼 결정적 사건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고용장애인의 80%이상은 경증남성장애인. 그래도 이는 지난 15년간 사회적 인식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중증장애인 위주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증장애인은 일반적 ‘차별금지’의 문제로 접근하면 됩니다. 의무고용제도도 장려금을 중증에게 더 주는 방식의 전반적인 개선을 위한 검토를 하고 있어요.”

“장애인고용 사업모델, 삼성이 나서라”

그가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대기업의 인식전환이었다. 그리고 삼성이 그런 사업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이 국내 기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잖아요. 지도자, 선두그룹이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요. 삼성이 전체 종업원의 1%를 중증장애인으로 채용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국민에게 주는 감동과 브랜드 가치는 대단히 높아질 겁니다. 삼성이 기왕 법을 지키겠다면, 지금처럼 ‘우리의 자격기준에 맞는 장애인을 뽑겠다’는 의식은 안 됩니다. 그런 기준이라면 비장애인도 힘드니까요.”

그것이 힘든 결정이란 걸 안다. 중증장애인의 취업이 어려운 것을 아니까. 하지만 삼성이 예컨대 특례 자회사 등의 중증장애인 취업을 위한 사업모델을 만든다면 공단 입장에선 출자제한을 풀어주는 방안 등 모든 지원방안을 찾아보겠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저부터가 사고치는 이사장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공단은 500명도 안 되는 공단직원으로 450만명의 장애인고용 해결이 어렵다고 소극적 자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앞으로 공단은 변화를 통해 장애인고용 촉진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에 나설 겁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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