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노동운동이 ‘위기냐’, ‘아니냐’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노동운동 위기’를 놓고 그 원인과 해법을 모색하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위기론을 누가 촉발시켰건 간에 기아차노조 채용비리,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사태와 같은 일련의 사태들은 물론 11%대의 낮은, 또한 정체된 조직률, 노동운동 진영 내 정파 갈등,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 노조원들의 배타성 등은 운동의 위기를 논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노동운동 위기’의 핵심 원인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정에서 자본의 경쟁 격화로 인한 대기업-중소기업간 격차 심화라는 ‘자본의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위기의 진단과 대안 모색의 시급함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무엇을 향한 ‘위기논쟁’인가

지면에서 강단으로 옮겨간 ‘노동운동 위기논쟁’, 중앙대 사회학 콜로키움은 지난 14일 박승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수석연구원과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를 초청, 위기론에 대한 서로 다른 진단과 해법을 둘러싸고 논쟁을 했다. <사진>

지난해 9월, “왕자병 걸린 노동운동”이라며 위기논쟁을 촉발시켰던 박승옥 연구원은 우선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견해에 대해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노동운동 주체들이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라며 “또한 위기라는 주장에 대해 자본과 국가, 보수언론의 이용가능성을 들어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반지성주의와 몽매주의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중기 교수는 “위기론 논쟁은 노조운동의 민주성을 확인하는 요소이고 노동운동 발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과정”이라면서도 “박승옥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은 국가와 자본의 비판을 노동의 이름으로 제기한 것”이며 “선배 운동가의 고언으로 이해하기에는 방식과 내용, 관점과 대안이 모두 도를 넘어섰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노 교수는 최근의 ‘위기론 논쟁’이 범할 수 있는 몇 가지 우려에 대해 지적했다. 이는 사태를 단순화·추상화시켜 관념적인 대안을 제시한다거나,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운동으로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한다거나, ‘노동’을 자본주의 임노동으로 한정하는 경직된 인식을 버리자거나 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노 교수는 “위기론으로 포장한 자본 논리에 대해 선을 긋는 것은 건강한 논의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박승옥 연구원은 “‘노동의 위기’는 노동운동의 위기이며, 이는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이기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노동운동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 “광풍의 시장독재를 해체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자연스레 노동운동의 이념으로서 생태적 전환을 끄집어냈다.

박 연구원은 우선 “생태적 대안 마련 없이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고려해서인지 “아직도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생각하거나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 가운데 생태적 전환을 현실 무시의 이상적 근본주의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20세기의 사회주의는 이미 낡은 이념으로서 자본주의와 일란성 쌍둥이에 지나지 않는 발전과 진보이념이며 자연을 고려에 넣지 않는 자연착취와 폭력의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못 박았다. 덧붙여 “한국 노동운동은 어떤 목표와 이념을 갖고 있는지 불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의 지배적 경향 아래 무엇을 의제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미로를 헤매고 있다”며 “노동운동이 뒷걸음질 치며 막연한 ‘신자유주의 반대’ 구호만 외치는 동안 노동조합은 임금인상과 복지개선의 경제적 조합주의로 스스로 좁아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투적 노조운동, 끝났다?

이에 대한 노 교수의 반론도 거셌다. 그는 “기존 노조운동의 한계인 ‘전투적 경제주의’나 ‘대기업 중심주의’를 논의하면서 새로운 운동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니”라며 “그러나 현재 노조운동의 문제점과 한계가 곧 대안적 운동 전략의 전환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이어 “과거 전략의 한계와 가능성을 보존하지 않고 대안을 주장할 경우 ‘관념론’으로 빠진다”며 “전투적 조합주의에 대한 비판이 왜 갑자기 ‘생태주의 노동운동’으로 비약하는지 알 수 없으며, ‘생태’를 내세운다고 해서 ‘계급성’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전투적 조합주의 운동방식 가운데,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외치면서 ‘임금(경제적 조합주의)’으로 꼬리내리는 관행, 여전히 남아있는 기업별 조합주의 등은 폐기해야겠지만 국가와 자본에 대한 비타협적, 계급적 관점 등은 긍정적 요소로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승옥 연구원은 “70~80년대 노동조합은 사실 새로운 인간관계, 새로운 삶, 넉넉한 공동체로서 기능한 측면이 강했지만 과도한 전투적·경제적 조합주의의 기묘한 결합으로 그 기능을 상실했다”며 “노조운동이 ‘노동자 중심성’에서 벗어나 시민사회단체들과 연계하면서 ‘대중의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부독재에 대한 투쟁과 달리 ‘저항’보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만 시장독재에 대한 투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매우 파편화된 상태로 분절돼 있고, 경제 체질 변화와 더불어 ‘잡계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계급 분류가 애매해지고 있으며 의식 또한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따라서 박 연구원은 “진정한 대안모색 운동이라면 기존의 계급운동 시각을 과감히 재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반면 노 교수는 “전투적 노조주의가 ‘생디칼리즘’으로 왜곡되고 ‘잡계급’이라는 생뚱맞은 개념이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결합 필요성 주장에 동원되며 ‘진실의 언어와 성찰의 삼보일배’가 현재의 ‘폭력적 운동방식’을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급운동으로서의 민주노조운동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주장들은 ‘불법 폭력 좌경 노동운동’이라는 국가 자본의 탄압 논리와 본질적으로 닿아있고, 노동운동의 시민사회의 이익집단운동으로 전락시키고자 했던 자본의 논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위기’인가

이처럼 위기론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 해법의 차이만큼이나 ‘민주성’, ‘자주성’ 등 위기의 ‘내용’에 대한 진단도 달랐다.

우선 내부 민주주의 위기와 관련, 박승옥 연구원은 “70년대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학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지만 87년 6월 항쟁의 민주주의 열기가 직선제 개헌과 함께 선거민주주의로 협애화되는 과정과 함께 노동조합 또한 선거민주주의로 국한되는 경향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노동운동이 저항의 시기를 지나 합법화에 이르자마자 대의제 선거민주주의로 빠르게 좁아지고 다양한 수준의 노조활동에 조합원 참여가 저조한 등 노조 내부 민주주의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며 “이는 기업별 노조체제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노동운동의 방향모색 부재와 전투적 노조주의의 관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자주성의 위기’에 대해 박 연구원은 “사용주로부터 전임자 임금지급이나 사무실 제공, 조합활동에 대한 노동시간 면제 등은 기업별 노조 체제에서 노동운동이 보여준 놀라운 투쟁력의 증거”라면서도 “노조 재정이 과도하게 회사 의존형으로 지속되고 있고, 이것이 기업별 노조 체제를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는 주범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재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와는 조금 달리 노중기 교수는 ‘민주성의 위기’에 대해 “‘민주노조’의 역사는 사쪽의 지배개입이 가능했던 ‘어용노조’와의 투쟁의 역사”라면서 “하지만 97년 겨울 총파업 뒤 민주노총 합법화와 함께 대사업장 노조 조직이 권력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노조 불인정 전략을 포기하고 ‘포섭’, ‘매수’로 전략을 바꾸는 등의 구조변동이 민주노조와 어용노조의 구분선을 무너뜨린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사회적 교섭이든, 노사정위 참가이든, 이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 때문에 노동운동 자주성의 위기로 파악될 문제”라고 진단했다. 즉, 99년 노사정위 탈퇴 이후 민주노총은 자발적 참가의사를 밝힌 적이 없지만 국가와 자본은 구조조정기 모든 노-정, 노-사 간 쟁점을 노사정위 참가문제로 환치시켰고, 노사정위에 참가하지 않으면 쟁점에 대한 실직적 대화나 협상도 어렵게 하는 ‘배제전략’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 교수는 노사정위 참가여부에 대한 논박 이전에 운동 내부의 갈등을 야기하는 구조, 즉 민주노조운동 내부를 분할지배하고 견인해내는 자본의 통제장치, 노사정 합의기구의 성격이 먼저 비판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노사정 합의기구의) 이름이 무엇이든, 앞으로 교섭 또흔 합의할 내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이미 국가 자본의 전략적 목표는 관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노 교수는 “(비정규직 투쟁을 도외시했던) 현중사태가 개별 사업장 수준의 자주성 문제라면 노사정위 문제는 총연합단체 수준의 자주성 위기”라고 진단했다.

한편 중앙대 사회학 콜로키움은 두 번째 논쟁으로 다음달 19일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과 하부영 현대자동차노조 전 부위원장을 초청, 현장에서 보는 노동운동 위기론에 대해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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