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교육원이란 직장에서 일로 삼아 강의를 하다보면 ‘안정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묻는 표정은 자못 진지하나 대답은 싱겁다. “글쎄요.” ‘청기와 장수’마냥 비법을 숨겨 밥벌이로 삼자는 게 아니라 도대체가 가능해 보이지를 않기 때문이다.

세계로 뻗어나가야 사는 기업들에게 노사관계는 세계화를 발목 잡는 덫으로 나타나고 있다. 흔한 말로 대립적이고 갈등적인 노사관계로 ‘세계화 전략’을 편다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앞뒤 없는 노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노조가 전투적인 노사관계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파업을 권하는 사회’에 살면서도 파업이 그럴듯한 위협(credible threat)이 되지 못하는 탓이다. 가령 고용안정 기반의 붕괴만 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자 일반에게 공포의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음에도 참여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노사간 파트너십이 형성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그것이 자칫 노조를 약화시키거나 주변화 시키는 수단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노조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사는 한 배에 탄 공동운명체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노조에 대한 부정에 다름 아니다.

노조는 사용자와는 다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러한 이해의 상충은 상호간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노사간 파트너십은 노조의 약화나 갈등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정착된 노동조합을 전제로 서로를 규제하는 교섭관계를 의미한다. 노사안정이란 갈등 속에서 형성되는 개념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 신뢰가 싹트기도 하는 것이다. 노사간의 신뢰를 ‘갈등을 통과한 신뢰’(conflict-tested trust)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업이라도 할 량이면 이 기회에 노조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나서서야 파트너십이란 무늬뿐인 파트너십(pseudo-partnership)에 지나지 못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시민권을 인정하는 것이 파트너십의 출발점이라면 그 토양은 고용의 안정이다. 고용에 대한 보장 없이 회사에 대한 헌신과 참여를 기대할 수는 없다. 고용불안 자체가 파업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그것이 임금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햇볕 있을 때 건초를 말리는 심정으로 그나마 일할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생각이 앞설 때 노동조합의 양보는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고용안정 대신 노동시간의 단축이나 전환배치, 그리고 임금의 유연성을 수용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몫에 속할 것이다.

파트너십을 진작시키기 위한 환경의 조성에는 경영참가도 포함된다. 경영참가는 노동자를 기업의 이해당사자로 인정한다는 표시이며 기업을 사유재산으로 인정해 주주의 이해에 배타적으로 복무할 뿐이라는 이른바 주주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극복을 의미한다. 겉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면서 제왕적 경영자상을 버리지 못하는 한 파트너십이란 한여름밤의 꿈에 지나지 않는다. 경영참가는 단순히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참여뿐 아니라 파트너십의 성과를 나눠 갖는 수단이기도 하며 더욱이 지금까지 ‘부르조아의 왕국’이라 불려왔던 생산의 영역에 노동조합의 참여를 부추기는 일이기도 하다.

한 때 언론을 도배질하던 서울지하철노조의 무쟁의 선언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파업선언으로 바뀌어버린 지를 아는 사람은 많다. 근본 없는 파트너십이란 연체동물 같은 기회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노동조합에게 파트너십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얼음같이 딱딱한 불신의 벽 앞에서 파트너십이 노조에게는 지나치게 위험한 도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제 노사는 복싱(boxing)이 아니라 댄싱(dancing)을 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춤은 늑대와 함께 추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와 함께 추는 것이다. 가진 자가 베풀 필요가 있다면 지금은 비상벨이 울린 노동운동에 대해 사용자가 뭔가를 보여줄 때이다. 구호성 선전이나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찾는 노사안정에는 이제 너나할 것 없이 넌더리가 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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