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법제실장(변호사), 평소 시원시원한 성격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조금만 민감해질 상 싶으면 “좋아질 것”이라는 말로 넘어가곤 했다. 기자 역시 김정진 실장에게 분란꺼리를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궁금한 것은 하나 “도대체 정책정당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책연구원만 40여명, 진보진영 최대의 정책역량을 보유한 민주노동당은 그 덩치에 걸맞지 않게 ‘정책의 빈곤’이라는 우려를 듣기 시작했다. 부유세,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정책’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다음은 뭐냐’, ‘후속대책은 뭐냐’는 질문에 딱 부러진 답이 나오진 어려운 상황이다. 그와 인터뷰를 하기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를 둘러보았다. 40여개의 책상위에는 수없이 많은 자료더미들이 싸여 있다. 적지 않은 정책연구물들이 그 곳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책 실무역량의 절대 부족 상황은 이미 벗어났다. ‘정책의 빈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일단 원론적인 그의 답부터 기준 삼아보자. 김 실장은 “3김청산, 지역주의 청산 등 협소한 이슈만으로 주도 돼온 한국 정치를, 사회경제적 이슈를 통해 이끌어지도록 하는 것, 그것을 통해 승부를 보는 것이 정책정당”이라고 답했다. 이 ‘원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이것을 추진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1년의 시간을 보냈느냐다.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적지 않은 법안을 발의했다. 정책 활동의 최고 정점이 법안제출이라고 했을 때, 활발한 정책 활동을 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들이 대부분 상임위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경우도 거의 없다. 정책연구원과 보좌진이 밤 세워서 법안 작성하고, 의원이 기자회견 후 국회에 법안 제출하는 것이 과연 진보정당의 정책 활동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정책에는 전문적인 정책고려 사항과 이에 따른 정치적 판단과 행동의 문제가 같이 있는 겁니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1년 동안 전자의 활동만 많이 한 것도 사실이고요. 의회 내 소수자인 민주노동당이 전자와 후자의 비율을 3대 7 정도는 맞췄어야죠. 사실 그게 잘 되서 우리가 지난 총선에서 5백만표 받은 거 아닙니까.”

왜 정책이 종이위에만 머물렀을까? 그는 정책에 대한 책임과 관심의 부족에서 원인을 찾았다. 또한 혼재된 구조의 이야기도. “선출된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가지고, 실무자가 더 적은 책임을 가지는 것이 좋은 구조입니다. 선출직과 실무자는 임무도 달라야 합니다. 정책위의 기능 중 정치적 판단의 부분은 선출자가 책임을 졌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질 않았습니다. 정치적 판단의 문제까지 전문가의 영역으로 볼 수 없는 거니까요.”

이야기는 자연스레 정책업무의 전문성의 문제로 넘어갔다. 정책연구원은 ‘학위’와 전문적인 경력을 인정받아 채용된 사람들이지만, 최고위는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 사실 정책은 정책 전문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도 나는 것이 사실 아니냐? 이런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모르면 공부해야죠. 선출직 당직자가 정책내용을 장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까지야, 실무 담당자가 책임질 일이지만 선출직이 정책을 장악해야 기존 노선과 방향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외국의 진보정당의 경우 당 대표가 정책기조에 대해 3시간씩 연설을 합니다. 전 분야에 대한 정책방향을 밝히는 거죠.”

이것이 현 최고위만의 문제일까. 원외시절부터 정책위에서 일해 온 그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전 지도부부터 당의 정책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어요. 현 지도부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사실 고참 정책간부가 만든 안이 그대로 공약이 되 버리게 우리 현실이었죠. 누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당의 정치인들이 당의 정책을 믿진 않는데, 고려 대상으로 생각은 한다’고. 이 말에 동의해요. 당 지도부가 정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지금 같은 상황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의 말에는 현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당의 기존 정책에 ‘무지’함을 전제로 깔고 있었다. 또한 이후 정책비전을 제시할 능력이 없는 지도부에 대한 답답함도 느껴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가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지난해 11월 민주노동당의 ‘부유세 파동’이다. 당시 최고위는 정책위에서 올린 부유세 도입을 위한 1단계 프로그램 법안을 심의하면서 ‘유보’를 결정을 내렸다. 곧 임시 최고위까지 개최하며 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지만 당시 최고위는 ‘욕설’ 수준의 비난을 받았다. ‘총선 공약을 읽어보긴 한 것이냐’는 비판에서부터, ‘무식하면 가만이나 있어라’는 비난까지. 뒤이어 조세 담당정책연구원이 사표까지 제출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 후로 민주노동당 최고위가 정책관련 심의에서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민주노동당 최고지도부가 당의 주요정책에 대한 판단을 하면서 가부결과 유보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정진 실장이 말한 지점, “선출직이 당의 정책내용을 장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면밀하지 못한 점이 있을 지라도. 이에 대한 김 실장의 생각이다.
 
“정책이 의미가 있으려면 국가 정책 결정과정에 일부라도 참여해야 합니다. 원외시절 민주노동당은 참여하지 못했지만 의원 10명이 생긴 지금은 일부지만 참여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예전에 만들어진 정책에 대한 재검토의 상황이 도래하게 된 겁니다. (당시 문제제기한 최고위원들의 이해도의 문제는 접어두고 이야기 하더라도) 간이과세제도 폐지의 문제, 종합부동산세의 문제 등은 분명 면밀히 검토해야 할 상항이었습니다. 부유세와 복지예산 증진을 위해선 중산층의 세금부담이 늘어날 수가 있고, 이게 정치적으로 용인이 안 된 경우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이 문제에 대한 설득 기제를 가지고 있나’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겁니다. 문제의 본질의 현실과 이상의 괴리인 거죠.”

인터뷰 말미는 그는 “우리의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 문제”라고 말을 했다. “상황은 어느 때보다 좋아요. 빈부격차는 계속 심화되고 있고, 분배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여론층이 어느 때보다 많아요. 또 보수정당에도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이 없고, 각각으로 봐도 민주노동당이 인물에서 밀리지 않는 형국이구요. 성장조건은 나쁘지 않은 것이죠. 우린 정책실현의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1년을 보냈고, 내적인 갈등이 많이 심화된 상황이죠. 하지만 당이 정책적 측면에선 분명 자신감을 가져도 됩니다. 우리의 경험 부족이 자신감 부족으로 나타나는 것을 극복해야죠.”

그는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을 들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잡았다”는 말을 자주하곤 한다. 천년만의 기회…, 인터뷰에서 김정진 실장이 한 말을 굳이 추리자면 ‘아직 기회는 남았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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