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민주노총 주도-민주노동당 의회진출의 양상을 띠는 이유는 노동운동의 연합전략이 ‘상징’과 ‘구조’가 불일치한 ‘상징연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상징(의제)과 구조(조직)의 통합이 없다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밝지 않다."

이는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쓴 330쪽짜리 논문 <한국 노동운동의 연대와 정치세력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또 ‘사회적 연대’와 ‘정치적 연대’가 동일시기에 상징과 구조에서 동일방향으로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노동운동의 연합전략 모델’이 구성된다고 보고 4가지 모델을 제시했다. 여기서 일컫는 ‘상징’을 쉽게 말한다면 노동운동이 제기하는 ‘의제’이며, 구조는 ‘조직간 관계맺기’, ‘연대’ 등으로 풀이된다.

노동운동이 여타 사회단체들과 의제 공유도 부족하고 조직 연대도 부족했던 ‘최소연합’에서 의제 공유가 많아진 ‘상징연합’(이슈파이팅)으로 이행함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표 참조>

예를 든다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내걸고 비정규직 단체를 포함해 여타 단체들과 연대하긴 하지만, 조직적인 면으로 보면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상징연합’은 ‘상징정치’ 효과를 내면서 ‘정규직 이기주의’를 부분적으로 완화하고 노동의 이해를 국민의 이해로 확대하면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다.

브라질PT 집권은 '최대연합'으로 가능


이같은 분석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동운동 위기냐 아니냐’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은수미 박사는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행위’만 보고 있으며 위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의제’만 보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 노동운동이 ‘상징연합’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은 ‘위기’의 정도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은수미 박사는 “노동운동이 위기가 아니었다면 정치세력화가 이렇게 약한 정도로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헤게모니(주도권)를 확실하게 잡는 방식으로 정치세력화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진입장벽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브라질의 1989년 대선과 비교하면 노동운동의 연합전략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브라질은 ‘최대연합’ 전략, 다시 말해 의제공유와 연대강화의 최대화를 통해 강한 정치세력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브라질PT당은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모든 민주주의적 세력의 연합’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1986년 이후 ‘상징연합’에서 ‘최대연합’ 양상으로 급속히 바뀐다.

PT의 룰라는 89년 최초의 대통령직선에서 결선투표 결과 36.4%를 얻어 50.1%를 얻은 콜로르에 뒤졌지만 대도시에서는 콜로르를 압도했다. 이로써 최대연합에 기초한 브라질PT는 정치적 진입에 완전히 성공했으며, 2002년 룰라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이 논문은 민주노동당의 ‘10년내 집권선언’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분석했다. 현재 우리 노동운동의 ‘상징연합’ 전략은 비정규직 및 여성의 배제, 시민운동과의 연대 약화, 주해석틀의 부재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이 조직적인 관계맺기 양식을 바꾸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집권과 관련해 선행조건이라는 것.

또한 집권을 이루기 위한 ‘이념적 청사진’으로서 주해석틀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주요과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연대경험이나 문화는 급격하게 부상한 시장담론이나 경쟁력 담론으로 노동자계급의 일상에 침투하지 못했으며,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체계가 대두할 조건이 취약하게 됐다는 것.


특히 은 박사는 민주노동당이 보여주고 있는 ‘계파 갈등’이 새로운 가치체계 형성에 생산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아 문제라고 분석했다. 계파정립과 직접적인 현실정책이 상호연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은수미 박사의 이같은 결론은 그가 택한 연구자료의 방대함과 연구방식의 새로움 등으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83년부터 현재까지 활동한 운동조직 중 연합사건에 참여한 1600여개 조직의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연결망 분석방식’으로 연구했으며, 인터뷰도 활용했다.

끝으로 은수미 박사가 논문 말미에서 밝힌 ‘노동운동의 관계구조와 리더십의 상호연관성’이 주목된다. 은 박사는 이 논문에서 노동운동의 관계구조 변화가 일종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했으며, 전략적 선택은 리더십의 변화와도 맞물린다고 했다.

어떠한 리더십이든 상황에 적합할 경우 노동운동의 정치화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 박사는 관계구조와 리더십의 변화가 노동운동의 성격과 노동계급 형성에 끼치는 영향은 향후 과제로 남겼다.

한편 이 논문에서는 민주노총에서 최근 갈등요인으로 작용한 ‘사회적 대화’의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다뤄 눈길을 끌었다. 사회적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4가지를 꼽았다.

△국가와 노동의 관계가 특정집단을 배제하지 않는 ‘포괄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점 △노동 내부관계가 특정집단을 배제하지 않는 ‘연대주의 원리’가 존재해야 한다는 점 △사회적 의제가 분배와 성장이 적절하게 결합된 수준에서 형성돼야 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는 무조건 분배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쌍방성) △노동 내부에서 사회적 의제가 노동자 계급 전체를 대변하는 공공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은수미 부연구위원은 현재 포괄성의 가정은 점점 충족돼 가고 있으나 쌍방성에서 아직 성장논리가 지배적이며 연대성도 약화되고 있고 공공성도 현장수준에서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은 박사는 “노동운동의 연합전략 및 정치세력화가 사회적 대화에 유리하다는 기존 가정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 박사는 “사회적 대화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가 제도화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당연한 만큼 사회적 대화의 방향이 어느 쪽에 얼만큼의 이해를 줄 수 있는가, 다수에게 유리한 틀을 어떻게 형성하느냐가 관심사항”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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