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황당무계’, ‘단세포’라는 등 원색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마구 비난했다. 인권위가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법안에 의견표명을 한 것은 ‘월권’이자 ‘정치행위’라는 것.

특히 정부와 여당, 재계는 한목소리로 노사정 대화가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에 의견을 내서 대화 분위기를 망쳤다고 날을 세웠다. 인권위가 가만히 있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 수 있었는데, 인권위가 나서는 바람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별과 고통 속에 지내는 날이 길어졌다는 게 정부여당의 시각인 모양이다.

사용자단체들이 인권위 의견 표명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 여당의 태도다.

정부여당의 주장대로 인권위는 ‘월권’을 했는가. 인권위의 임무는 차별의 해소와 인권의 보호.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해소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값싸게 부려먹고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게 하자는 시장의 논리가 인권을 침해한다면 그 논리는 규제돼야 한다. 인권위가 비정규법안에 담긴 인권침해논리를 경계하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다음 ‘시기’의 문제다. 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만일 정부여당 주장대로 인권위가 노사정 대화를 고려해 인권 가이드라인 제시를 미뤘다면, 이것이 더 정치적 행위다. 인권위는 어떠한 사안이 인권 신장에 부합하는지 여부만 판단하면 된다. 그리고 판단이 끝나면 발표해야 한다. 여기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되면 인권위의 위상은 곧바로 추락한다.

지난해 국회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대치할 때 인권위는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폐지’를 권고했다. 한나라당은 균형을 잃었다며 인권위를 맹비난했지만 당시 여당은 인권위가 시의적절하게 제 역할을 했다고 옹호했다. 그런 정부여당이 지금 비정규법안 문제에 대해서는 시기가 문제라며 인권위를 비난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돌부리를 파내야 한다”는 등 인권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는 마치 군부독재 시절의 그것과 닮았다.

인권위에 대해 정부여당이 보이고 있는 태도를 보노라면 대체 노사정 대화를 왜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까지 생긴다. 인권위가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준 것도 아닌데 인권위의 가이드라인 정도에도 펄펄 뛴다면, 혹시나 정부여당이 대화의 결론을 미리 상정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본다. 인권위가 보편적인 인권에 비추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이를 두고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고 여긴다면, 자신들의 발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정부여당은 인권위 비난에 열올리기에 앞서 오늘부터라도 노동계가 왜 정부여당의 비정규법에 의문을 표시하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시기를 '의견표명'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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