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涇)”. 필자는 이 말을 자주 되뇌어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에 참으로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충분히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변화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노동운동을 둘러싼 상황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의 대중적인 노동운동이 본격화된 20년도 채 안 되는 세월을 되짚어보자.

정치와 경제, 사회, 그리고 노동자들의 생각과 생활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변화에 상응하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감당하기 만만치 않은 위기적 상황으로 노동운동이 내몰린 연유가 여기 있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일찍 터져야 될 게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로 다가와 노동운동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는 어느 활동가의 분석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어 보인다.

억압적 정권하에서 강력한 투쟁노선을 채택한 노동운동은 조직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억압적 정권에 대한 투쟁으로 일반 노동자의 요구와 크게 괴리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치·경제·사회 상황의 변화는 최대강령주의적 전투적 노동운동의 유효성을 약화시키면서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 일반의 요구 실현간의 괴리를 확대시켜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협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연대성과 대표성의 위기가 깊어지고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정치적 억압과 투쟁했을 때에는 강력했으나 민주화 이후의 조건에서는 의외로 무력함을 보였다”라는 진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적 요인은 80년대 이후 형성된 정규직 중심의 전투적 노동운동이 거둔 성공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급변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은 기업단위 정규직 노동운동에 갇혀있어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오랜 숙원인 산별전환은 여전히 멀기만 하고 80%가 넘는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지 못하고 있다.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등을 통해 전체 노동계급의 권익을 보장하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꾸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조직 노동자의 이익에 묶여있고 기업단위 복지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은 노동시장 변화에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가지지 못함은 물론이고 산업공동화라 불리는 자본의 이동 등 자본의 변화에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자본의 노동통치전략 변화에 대한 대응에서 노동운동은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의 위기적 상황을 노동운동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 노동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자본의 위기와 불완전한 한국의 민주화에서 출발하고 있다. 노동배제적인 민주화의 진전과 극심한 양극화와 빈곤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정부의 성장에 치우친 정책이 위기의 원인이다. 따라서 노동의 위기적 요인을 해결하는 근원적인 해법은 이러한 외부 요인을 제거하는 데서 찾아야 함은 당연하다.

하지만 “도전은 외부에서 시작되지만 위기는 내부에서 폭발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외부 도전에 대한 주체의 대응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은 상황의 변화에 스스로 대응하지 못한 무력함을 드러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외부의 도전에 대한 응전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내부 혁신은 시급하다. 노동의 위기논쟁을 악용하고 있는 세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곪아터진 우리의 문제를 드러내 정확히 진단하고 고통스러운 혁신의 길에 들어서는 일이다. “변하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고 외치는 한 노동운동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