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이 최근 “강경 투쟁 위주의 노조운동이 자리잡고 있는 한국현실을 감안하면 독일의 성숙한 노동문화가 부럽다”며 독일 노동법 개정 움직임을 소개하고 있다.

독일 노동계가 경영참가를 제한하는 노동법 개정에 ‘경제’를 생각해 순순히 응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일까? 이상호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위원이 ①언론보도의 진위여부 ②독일 노사관계에서 진정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주제로 쓴 기고를 14, 15일 이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주>




노무현 대통령의 독일순방을 계기로 독일사회경제에 대한 보수언론의 기사가 자주 보인다. 이 가운데 독일 노사관계에 대한 기사는 무지와 왜곡으로 덧칠된 느낌이다. 감히 ‘기자의 ABC를 다시 배우라’는 충고의 마음으로 몇가지 문제에 대한 진위 여부를 밝히고자 한다.

임금동결은 보이고 직업훈련생들의 전원직접고용은 안 보이나?

지난 10일과 11일자 매일경제신문에 ‘근로조건보다 일자리 더 관심’, ‘노사 매주 한번씩 회동, 10년 무파업’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를 쓴 현아무개 기자는 독일 폭스바겐 생산담당 이사, 그리고 드레스덴 공장장과 인터뷰 기사를 통해 "독일 노동자들은 이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파업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조건의 개악, 더 나아가 임금삭감까지도 과감히 양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기사는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기자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으로 치장되어 있다. 그는 폭스바겐 노사가 체결한 소위 “미래협약”에 대한 내용 중 노동조합의 양보사항만을 나열하면서 ‘독일노동운동의 퇴조’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11월3일 폭스바겐 노사간에 체결된 이 협약은 회사가 봉착하고 있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인정한 상태에서 노사가 어떻게 ‘공동으로’ 고통을 분담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경고파업과 항의시위를 포함한 6주간의 장기교섭을 통해 체결된 이 협약은 2년간 임금동결이라는 노동자의 양보에 대해 기업이 2011년까지 고용보장, 생산재조직화에 대한 노동자의 공동결정권 확대, 노동자의 고령화대책마련을 위한 노사공동위원회 구성, 직업훈련생들의 전원직접고용 등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내용은 정식직원이 아닌 단기고용계약에 있는 청년예비노동자들인 직훈생들의 계속고용을 노사가 합의했다는 점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해 조직노동자는 협약임금의 인상을 자제하고 사용자는 고용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청년실업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게 한 것이다.

공동결정제도위원회, 제한이 아니라 보완이 목적

보수언론의 독일 노사관계에 대한 무지와 왜곡은 매일경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11일자 조선일보 ‘기자수첩’에는 ‘독일노동계의 책임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아무개 기자는 독일경제가 안 좋은 결정적인 이유로 노동조합이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감독위원회’에 경영참가하고 있는 것에서 찾고, 바로 이러한 노조의 경영참가권을 제한하기 위한 노동법개정위원회를 정부가 설치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지난달 19일 독일정부가 작센주의 주지사를 지낸 기독민주당(CDU) 출신 쿠르트 비덴코프(Kurt Biedenkopf)를 위원장으로 하는 ‘공동결정제도 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위원회의 목적과 활동은 최 기자의 추측과는 전혀 다르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그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독일정부의 문제의식은 기업 내 노동자의 경영참가와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고 있는 공동결정제도체계를 새로운 조건 하에서 어떻게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에 맞춰져 있다. 특히 유럽연합 내에서 합의된 ‘유럽주식회사’와 ‘인수합병’ 지침에 따라 독일에서 활동하는 다국적기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들의 의사결정과정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참가하고, 어느 정도 공동결정권을 행사할 것인가가 핵심의제가 되고 있다.

주요 경력
95년 9월 독일로 유학. 경제학 전공
2002년 독일노총(DGB) 박사논문지원 장학생.
현재 '수직적 노동분업과 노동조합의 정책'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음.
저서 ‘독일공동결정제도의 사회경제적 효과’(석사학위논문, 1995), ‘독일노동운동의 자기정체성 모색과 현실적 딜레마’(한국노동연구원, 2005년 5월 출간 예정) 등
연구성과  ‘독일노동시장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고용정책’
즉 노동자의 공동결정권을 제한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유럽연합 내 기업들의 인수합병과정을 통해 출현할 것으로 보이는 유럽주식회사(Europa AG)의 시대에 노동자의 경영참가제도를 어떻게 더 세련되게 구성할 것인가가 ‘공동결정제도위원회’의 설치취지이다.

더 심각한 사실왜곡은 노동조합조차 이러한 경영참가 제한조치에 찬성하는 성명서를 제출했다는 보도다. 하지만 독일노총(DGB)은 지난 4일 ‘유럽은 공동결정제도의 반대자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중소사업장의 경영참가를 지원하는 법제도의 보완이 요구된다고 지적했지만, 그 어디에도 공동결정제도의 축소 필요성에 대한 문구를 찾을 수가 없다.

필자의 눈에 보이는 내용이 보수언론의 기자 눈에 안 보일 리 없다. 더욱이 독일 노사관계에 대해서 기본소양조차 없으면서 함부로 펜대를 놀리고 있는 이들에게 조용히 충고하고 싶다. “그냥 관광이나 열심히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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