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교섭이라는 약간 ‘모호한’ 실체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일단락됐다. ‘모호하다’ 는 것은 노사정위는 거부한다면서 그와 비슷한 노사정대표자회의란 틀은 무슨 의미인지, 사회적 교섭은 정부 일각의 사회적 대화란 주장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술적 방편이라면 전략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없었고 그 반대편의 대응도 논의 진전에 기여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의 지향점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생략한 채 벌어진 이 격돌의 의미는 무엇일까?

민주노총의 집행부도 좌파도 중앙파도 사회적 교섭의 전술적 의미에 대한 평가 이상으로 논의를 확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반 논의는 그 배경과 함께 노동운동의 현실 진단과 전망까지 각 정파의 명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을 경우 이렇게 모호해지고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다. 골만 깊어졌지 뭐가 달라졌나? 아니 좌와 우가 있고 또 중앙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 성과라면 성과이다. 파업과 전투적 투쟁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사회적 교섭의 의미와 한계에 대한 입장 차이란 단지 전술적 선택의 차이만은 아니다. 분명 이견의 밑바탕에는 미래 사회의 설계 방향과 관련된 이념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겉으로는 모두 민주노동당의 지지자라 하더라도 실상은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거리 설정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 한국 노동운동은 처참하게 재단되고 있다. 자본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대립적 노사관계와 전투적 노동운동이라는 비난의 대상에서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 또는 공범인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는 그럴듯한 비판이 가세해서 논점이 복합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비난받는 똑같은 측면을 두고 동원모델에 입각한 파업의 파급력이 살아 있고 사회진보를 추동하는 역동성을 가진 노동운동이라고 서구나 제3세계 노동운동의 기대와 찬사를 받고 있기도 하다. 남들이야 뭐라든 제 갈 길을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내부로 찢겨 생긴 반목과 갈등이 밖의 안목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커져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데 어느 길로 가야할 지 모른 채 헤매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도 논점 확대의 소재로만 쓰일 뿐, 새로운 변화를 위한 반성적 성찰의 주제로 삼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의도를 감춘 채 벌어지는 위기 논쟁이 아니라, 공자님 말씀으로 생산적 내부논쟁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먼저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는 일이다. 자기 갈 길을 자기도 모르면서 상대 정파를 적으로 규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인맥에 의한 분파들의 모습일 뿐이다.

그리고 이념적 지향에 근접해서 평가받지 않고 싶어 하는 심리적 터부와 어떤 비판으로부터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혼합적 사고에 스스로 도전해야 한다. ‘우리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다’와 ‘타협주의자’라는 논점만으로 극한적인 충돌이 설명될 수 있는가? ‘민족주의-사민주의-새로운(?) 사회주의’ 사이, 또 각각의 좌우 버전이라는 선택 지점에 대한 자기평가를 제출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와 반자본주의의 대안적 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말할 수 있다. 과연 그런 이념 논쟁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러면 이념적인 재단이 현실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건 무얼 의미하느냐고?

또 한 가지 노무현 정부와 관계 설정 문제가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연대가 노동운동의 미래와 한국사회에 주는 함의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이를 제시하지 않거나 정치적 소신도 드러내지 않은 채 행동하는 사람들은 노동운동의 미래 전망에 대한 논의를 지체시키는 암적 존재로 곧 자신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사람은 해결 가능한 문제만을 제기한다고 한다. 직접적인 투쟁 방침과 관련된 논란만 이어질 뿐 누구나 알고 있는 입장 차이에 대한 평가 논쟁으로 진전되지 못한 건, 그 입장들 간의 화해가 불가능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내부 논쟁은 불가피해도 대안에 대한 세부 그림을 그리는 일은 아직 불필요하기 때문인가? 혹시 이 입장들이 모두 가짜이기 때문에 거짓 대결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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