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70년대 개발의 상징 ‘삼일아파트’.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고 후줄근한 대표적인 서민아파트 곳곳에는 그을음이 묻어 있고, 건물 계단 곳곳에는 철조망이 둘러쳐져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지난 6일 기자가 찾은 삼일아파트는 황학동쪽 12개동 주거 공간인 3~7층은 이미 철거됐고 1, 2층의 상가들만 남아 있었다. 종로 방향 창신동의 1~6동과 숭인동의 7~10동 건물들은 부분적인 철거가 진행되고 있었다.

삼일아파트 10동 3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 커다란 철제 펜스가 굳게 잠겨져 있고, 그 안에는 폐타이어와 석유 가스통들이 곳곳에 쌓여 있다. 빈민해방철거민연대 소속 종로삼일아파트철대위 사무실이 있는 곳. ‘결사항전’이라 쓰인 투쟁조끼를 입은 14세대 주민들은 그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수시로 닥치는 철거에 맞서 주민들은 24시간 ‘규찰’을 서는 등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무실 방 한켠에서 수제비로 늦은 점심을 때우던 주민들은 지난 3월31일과 4월1일 이틀에 걸쳐 벌어진 희한한(?) 철거 얘기를 들려주며 어이없어 했다.

3월31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주민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당일 오전 7시30분경, 삼일아파트 10동 주변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긴장감이 흘렀다. 그런데 철거를 위해 들이닥친 용역들은 다른 때와는 달리 건장한 청장년들이 아니었다. 노숙인들로 보이는 40~5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들이닥친 또 다른 80여명의 ‘용역’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장애인들이었다.


“손만 대도 나 죽는다고 넘어지니…”

건물 앞 철거민들의 천막 3동은 철거 시작 10여분만에 부서졌다. 천막농성장은 철거민들의 상징과도 같은 것. 그 어떤 힘에도 1년여를 막아낸 주민들이었지만 그날은 속수무책이었다. 주민들은 그때의 상황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죽기 살기로 막았겠죠. 그런데 장애인들이라 손 댈 수가 없었어요.” “손 만 대도 나 죽는다고 넘어지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지네들이 와서 부닥치고 넘어져요. ‘드러누워 드러누워’ 하고요.”

결국 용역들에 빙 둘러싸여 폭언과 폭행을 당한 주민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다. 남자들은 행여나 힘을 쓰다 불상사가 일어날까 봐 건물 3층에 남아 있었고, 여자들이 밖으로 나가 철거용역들과 대치했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이 수시간 동안 멱살을 잡히고 수난을 당하자 남성들은 젓국 등을 뿌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3층 입구에 설치된 철제 펜스는 해머를 든 용역들에 의해 금방이라도 무너질 판이었다. 주민 이경아씨(61)는 3층 입구에서 필사적으로 막아서다가 왼손을 해머에 강타 당했다. “뼈가 부러졌다”며 이씨가 고함을 지르자 그때서야 철거용역들은 주춤거리다가 물러섰다. 다행히 두툼한 장갑을 끼고 있던 탓에 이씨는 골절상만을 입었다.

6일 오후 깁스를 한 채 고통을 호소하는 이씨는 두 손가락이 퉁퉁 부어오르고, 구부러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병원 한 번 가는데 5~6만원이 들어요. 그러니 병원에 갈 엄두가 안 나죠. 그냥 진통제 먹고, 연고만 바르고 있어요.” 당일 머리를 다친 주민 두 명도 이씨처럼 병원비가 없어 곧바로 퇴원한 상태였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차별 받고 없이 사는 비슷한 처지의 도시빈민을 몰아내려고 오니 참 서글프죠.” 이학신 종로삼일아파트철대위 부위원장은 시행사의 횡포와 종로구청의 방관에 치를 떨었다. “2003년말에는 청계천의 노점상들을 몰아내기 위해 노숙인들을 동원해 사회적 물의를 빚었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장애인들을 동원한 거예요. 참 기가 막힐 일입니다.” 옆에 있던 한 주민도 말을 거들었다. “이제 별별 짓을 다해요. 장애인들을 앞장세워 철거현장의 총알받이로 사용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어요.”


건설사, “장애인단체 도와준다는 입장에서 일 맡겼다”

주민들은 며칠이 지나도록 그날의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주민들과 얘기를 나눈 뒤 기자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장애인동대문협회에서 나왔다는 한 관계자가 승용차 안에서 맞은편 철거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장애인들이 어떻게 철거현장에 나왔을까 궁금했다.

“건설사와 잘 아는 관계고, 일 좀 도와주려고 나왔어요.” 그는 장애인들을 힘들고 위험한 철거용역으로 쓰지는 않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긴 하죠. 하지만 장애인도 급수 따라 다르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장애인을 동원해 철거를 진행해 주민들이 다친 것과 관련 시행사는 오히려 일부 주민들의 터무니없는 생떼쓰기 요구로 인해 자신들이 수억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1년 이상 완전 ‘그로키’ 상태라며 입찰을 받아 일하러 왔는데 우리가 무슨 죄냐는 입장이었다.  

우창건설의 현장책임자인 박종선 이사는 “장애인단체에서 자진해서 일을 한다고 하니까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일을 맡긴 것”이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철거용역 일을 하면 다치거나 불상사가 일어날 우려가 크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랬다. “힘으로 밀어낸다면 우리도 진작에 했을 것이지만 그날 장애인들을 부른 것은 다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층 상가가 완전 철거되는 1~2년 동안만이라도 3층에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 주민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시행사는 관할구청인 종로구청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강제철거 등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

그렇다면 종로구청은 주민들의 대책요구와 장애인을 동원한 철거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종로구청측은 가타부타 명확한 입장이 없는 상태였다. “주민들의 요구안에 대해 세입자 대표와 대화중이란 것까지만 얘기할 수 있다.” 담당부서인 도시관리국 주택과의 권성식 계장은 말을 아꼈다.

장애인을 동원해 철거가 진행된 것을 알고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사후에 알게 되었다. 강도 높은 철거도 아니었고, 주변 정리하는 일인데 장애인고용촉진법상 문제도 없는 것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가뜩이나 일거리가 없는 장애인들을 고용해 일하게 해주었으니 표창이라도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힘들고 위험한 철거현장에 동원하는 것은 자칫 잘못해서 벌어질 불상사를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까.


임대아파트는 ‘그림의 떡’…보증금 마련 ‘막막’

보상과 이주가 거의 완료된 상태인 삼일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까닭은 임대보증금 마련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7월말경 서울시가 종로 삼일아파트 주민들에게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주면서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당장 임대아파트 보증금 1천만원~1천5백만원이 없는 14세대 주민들은 종로삼일철대위를 재구성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주민들이 10동 3층으로 집결한 것은 지난 2월말~3월초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여서 함께 싸우겠다는 것.

주민들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1~2년 뒤 상가가 철거될 때까지 만이라도 3층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보증금 마련 등 생계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주비 받고 나갔는데 곳곳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건물에서 오죽하면 살겠어요.” “든든한 직장 있으면 우리가 이렇게 하지도 않죠.” “작년에 여기저기서 불(방화)나고 하는데 형편이 되면 누가 여기서 살겠다고 하겠어요.” 주민들은 너나없이 하소연을 풀어 놓았다.

현재 남아 있는 주민들은 대부분 막노동, 경비, 파출부, 포장마차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증금 천만원이 장난이겠지만 보증금 200~300만원 안팎에 사글세 사는 이곳 주민들에게 천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다. “친척들한테라도 돈을 빌려라. 어디 돈 천만원을 못 빌리냐.” 종로구청의 한 관계자의 말은 더 이상 빚 얻을 때도 없는 주민들에게는 비수처럼 꽂혀 있는 듯했다. 

임대아파트를 가까스로 얻었지만 입주보증금도 없는 처지의 주민들은 또다시 벼랑끝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보금자리가 철거될 상황에 직면해서는 철거를 막는 일이 급선무라 그나마 생업도 접은 상황. 불안정한 나날이 길어질수록 빚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입주보증금에 대한 무이자 대출이나 상가 철거 시까지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서울시와 종로구청의 대안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투쟁구호는 주민들의 벼랑끝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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