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방송위원회 지상파DMB 사업자 최종 선정으로 본격적 DMB시대가 막을 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하기만 한 방송통신융합서비스. <매일노동뉴스>가 방송통신융합서비스의 개념에서부터 현재 논란 중인 관련 법안과 정책, 대안과 전망을 짚어보았다. 연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편집자 주>


도대체 DMB가 뭐야?
방송통신융합정책, 공공성과 산업논리 사이에서 ‘아슬아슬’
③ 전망과 대안은?

방송환경과 관련법안의 불일치·부조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강형철 교수는 “방송환경의 변화는 움직이는 과녁처럼 이동하고 있는데 방송법이라는 화살로 이를 맞추기는 쉽지 않다”며 “이는 ‘조준(방송법 제정 또는 개정)’과 동시에 ‘과녁(방송현상)’이 멀찌감치 이동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표현한다.

강 교수는 한국에서 방송법을 통한 방송질서 확립은 △(언론이) 국가 종속 상황에서 왜곡된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고 △디지털 시대 급격히 변화하는 방송환경을 담아내야 하며 △합리적 의사결정과정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이해당사자들을 조정·통합해야 한다는 3중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현행 방송관련 규정들은 큰 틀의 변화를 꾀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특별히 두드러진 현안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부분 개정을 통해 대부분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2000년1월12일 ‘통합방송법’이 통과되어 현재의 틀을 갖춘 이후, 지난 2004년 3월22일 개정까지 총 5차례의 부분개정이 이뤄졌다. 한 해에 한 번 꼴로 방송법을 고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 개정방식은 당장 바꾸기 쉬운 것만을 다룰 뿐, ‘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건드릴 수 없다. 때로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을 다루려고 해도 이해당사자들의 견해가 극명하게 갈려 합의를 이뤄내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은 주로 패러다임, 즉 방송을 보는 시각과 관련한 문제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방송통신융합에 대한 규정이 바로 그러하다.

‘방송통신’융합이냐, ‘통신방송’융합이냐

현재 방송통신융합매체와 관련한 법안을 놓고 방송-통신업계 뿐 아니라 방송위원회-정보통신부는 서로 엇갈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업계의 이해관계가 주무부처 간의 입장차로 확대되면서 방송통신융합서비스에 맞는 법과 제도마저 표류하고 있는 것.<표 참조>

방송통신융합에 대한 각 부처별 입장
구분
정보통신부문화관광부방송위원회
방송의 개념산업으로서 방송문화매체로서 방송 문화산업언론으로서 방송
규제 범위전송 네트워크방송 콘텐츠방송사업자
방송법상
규제범위
기술정책콘텐츠 사업 육성방송사업자 허가 및 규제
통합기구에
대한의견
현 분리규제체제 유지하는 선에서 융합서비스 도입규제만 담당하는 통합기구모든 유관기관을 총괄하는통합기구
방송통신위원회
설립 입장
사후규제 위주의
내용심의
문화진흥 부분은 문화관광부에서 담당하고 나머지는 방송통신위원회 담당방송위원회 중심의 통합과 방송통신위원회의 법적지원 보장, 정책일반, 지원 및 규제기능의 총괄 주장
신규서비스에
대한 의견
방송통신융합서비스 사업법 - 네트워크 사업자로서 규제 별정방송 개념의 도입
- 방송사업자로서 규제
자료제공=홍기선·황근 (2005). 방송·통신 융합에 대응한 정부정책 평가: 규제기구간 정책 갈등을 중심으로.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방송통신법 제정을 위한 1차 토론회’에서는 방송과 통신의 총괄규제 기구 도입에 대해 입장차가 뚜렷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대표가 각각 '방송통신구조개편기획단장'과 '통신방송융합전략기획단장'의 직함으로 참석했다. 단순한 호칭 순서마저 한 치의 양보도 없을 만큼 방송통신융합과 관련한 공방은 치열하다.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지난 2월15일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방송통신융합 정책토론회’에서 “방송의 공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통신방송 신규서비스의 컨텐츠 부문과 네트워크 부문을 분리해 규제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성대 방송위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방송통신 융합서비스의 발전을 위해 규제시스템을 통합하는 것이 국가적 이익에 부합된다”고 반박했다. “네트워크 부분은 산업적 마인드에서, 컨텐츠는 공익성 등의 기준 아래 분리 규제하자”는 진 장관의 주장에 방송위는 “통합된 규제기관(방송통신위원회)이 통합된 규제를 해야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

현재 정통부는 방송통신융합서비스 관련 통합기구를 만드는 데 대해 유보적이다. 진 장관은 "총 40조원에 이르는 통신과 방송시장의 규모 가운데 융합서비스 시장은 2000억원대에 불과하다"며 "융합서비스 추세를 더 지켜보면서 개별사안에 대해 정부부처 간 조정을 통해 천천히 규제기구에 대한 논의를 해나가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방송위원회는 내년 3월 2기 출범에 맞춰 방송통신규제기구 통합을 서두르고 있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국무조정실 산하에 국조실·정통부·방송위·문화부·법제처 등이 `방송·통신 구조개편추진 전담TF팀`을 구성하고 국조실 총괄심의관 주도로 이 문제를 협의하고 있으나 아직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 상황.

한편 이러한 정통부 진대제 장관의 주장은 통신업계의 요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신업계는 "IT강국 한국이 통신방송 융합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 관련 산업 발전의 저해나 시장 상실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방송통신융합 산업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반면 방송업계는 "방송의 근본규범은 공익성, 공공성을 유지“라며 ”방송통신융합 서비스도 현재 엄격한 방송법의 테두리에서 관리·감독받아야 한다“고 반박, 통신업계의 ‘산업논리’를 ‘공공성’으로 받아치고 있다.

언론노조-IT연맹, 엇갈린 주장…공공성 VS 산업발전

이러한 통신-방송업계간의 입장차는 언론노조(위원장 신학림)와 IT연맹(위원장 지재식) 간의 입장차와도 일맥상통한다.

언론노조는 무엇보다 SK텔레콤, KT 등 거대통신업체가 방송시장에 본격 진출함에 따라 ‘언론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언론노조 곽동엽 방송정책국장은 “현재 방송통신융합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방송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새 틀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업체들에게 방송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열어주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월21일 KBS, MBC, EBS 등 언론노조 산하 34개사 지상파 방송사 지·본부 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방송통신 융합정책에 관한 방송사노조 기자회견’에서는 이같은 입장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이들 방송사 노조들은 “통신업계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 ‘방송통신융합’을 빌미로 ‘전파는 국민의 재산’이라는 사회적 대합의를 허무는 움직임이 빈발하고 있다”며 “방송을 인간적 가치의 표현수단인 ‘문화’로서가 아니라 사적 이익극대화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려는 통신자본의 방송진출을 막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들은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 지상파DMB 제공 △지역에도 지상파DMB 서비스 조속히 실시 △위성DMB 지상파 재전송 반대 △IP-TV 방송으로 규제 및 신중한 규제완화 △단일한 방송통신정책규제 기관 설립 등을 요구했다.

또 논란 중인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 여부를 놓고 TU미디어가 "지상파 재송신이 없으면 사업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지상파 재송신 결정이 안 된다면 본방송 시기를 미룰 수밖에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임에 따라 방송위원회가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언론노조는 지난달 28일 한때 방송위원회 위원장실을 점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위성DMB의 지상파 재송신은 공공성과 공익성에 기반해 보편적인 무료서비스로 제공되는 방송콘텐츠를 가입자 1인당 월 1만3천원의 월정액을 받는 유료서비스인 위성DMB를 통해 되팔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일부 통신업자들이 지상파DMB를 유료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언론노조는 “지상파DMB 서비스의 취지는 시청자에게 지상파 방송의 이동수신을 무료의 보편적 서비스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단지 수신하는 매체가 달라진다 해서 공공재인 공중파를 유료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IT연맹 조형일 정책실장은 “언론노조가 거대통신업체가 방송에 뛰어들 경우 방송산업의 위기와 기존매체에서 생존권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면서도 “통신업계의 방송진출에 진입장벽을 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밝혔다.

IT연맹은 방송계가 ‘공공성’을 앞세워 통신업계의 방송진출을 막아나서는 데는 사실 지상파가 방송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건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방송통신융합과 관련한 규제마련에 대해 조 실장은 “시장과 기술의 변화 발전에 따라 방송통신융합서비스는 이미 거부할 수 없는 대세”라며 “국민 입장에서 모든 서비스를 편하게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 후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수준에서의 규제 마련이면 된다”는 입장이다.

또 ‘언론의 공공성 훼손 우려’에 대해서 IT연맹은 “발생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부작용을 놓고 규제를 대폭 강화하면 자칫 IT산업의 발전마저 가로막힐 수 있다”며 “네트워크와 컨텐츠를 분리해 규제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수요자의 목소리는 어디에?

이처럼 방송위원회와 방송계는 "정통부는 방송마저 인터넷처럼 무정부적인 상태를 만들자는 것이냐, 방송에는 산업논리만 우선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정통부와 통신업계는 "IT산업의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선점하려면 규제가 완화가 필수”라고 외치면서 산업논리를 앞세워 혈전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수요자인 국민들의 입장과 목소리는 소외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말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등 70여개 사회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구성된 ‘미디어수용자주권’의 출범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거대 방송사나 통신업자 등의 일방적인 이익 추구에 따라 시청자 권익이 훼손되는 것을 연대를 통해 막아내겠다"고 선포했다.

이와 함께 민주노동당도 문화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미디어정책포럼을 구성, 채널과 매체의 홍수시대에도 여전히 소외받고 있는 노동자, 서민 등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미디어정책 구상에 착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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