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도 늦어서 미안합니다.”

미안함이 가득담긴 피곤한 얼굴의 희정이가 연습실 문을 밀치며 들어온다. 회계사무실서 일하는 희정이가 야근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찾는 곳은 다름 아닌 직장인 연극단체 ‘아해’라는 곳이다. 직장인 연극단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회사사무원, 목수, 자동차판매원, 학습지교사, 군무원, 학원선생, 아르바이트생…. 내가 직장인 연극단체에서 활동한 지도 어느덧 햇수로 1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내가 연극을 한다고 하면 모두들 놀라는 표정이다. 마치 남들이 하지 못하는 대단한(?) 것을 하는 것처럼. 그러나 연극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일하는 사람들은 연극을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문화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고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고, 또한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일 것이다.

실제 한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뒤따른다. 직장인들이라 연극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퇴근 뒤의 몇 시간, 그리고 주말 정도. 그래도 연습실이 있는 단체들은 그나마 행복하다. 그렇지 못한 단체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연을 하기 위해선 제법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공연장이 필요하고 의상, 소품, 분장, 팸플릿 등등. 이렇게 소요되는 비용은 전적으로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된다.

우리는 국민경제 2만달러 시대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주5일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 일하는 사람들과 국민의 삶의 질은 향상 됐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세상은 더욱 각박해지고 신자유주의 정책은 일하는 사람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사회는 20대80으로 양극화돼가고 노동시장 또한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돼가고 있다. 이젠 문화도 가진 자들의 사치품 정도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우리 주위의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생활은 어떤가? 대부분 우리나라 문화는 음주문화(?)가 대부분이고 주말에는 주로 비디오나 TV 시청을 즐긴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다 생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것은 일하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공간의 부족 등 문화정책에 대한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2003년 문화예술단체 실태조사’를 보면 아마추어 동호인 위주로 구성된 단체는 전체 문화예술단체 811개중 7.5%에 불과했다. 또한 유일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활동에 대한 지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시행하는 근로자예술문화제사업이 전부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그야말로 생색내기 사업일 뿐이다. 과거 10년 동안 문화제(연극, 미술, 서예, 음악 등) 예산은 변함이 없고 또한 그 내용도 변동이 없다.<표참조> 이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외쳐대는 정부가 노동자 문화정책을 방치한 것으로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근로복지공단 근로자문화예술제 집행실적
연도 95 969798990001020304
금액(백만원) 443 516 473 451 437 521 576 504 576 586

아울러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동단체에서도 문화정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이란 무엇인가? 물질적인 만족 못지않게 정신적인 만족 또한 중요한 것이다. 정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꿈과 자기계발을 위한 문화시설 및 문화지원예산을 확충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직장인 문화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2만달러 시대, 주5일제 시대에 살고 있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끼와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행복해지기를 기대한다면 너무나 큰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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