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 노동운동에 대한 위기 담론이 무성하다. 예전의 그것과는 달리 작금의 논란에는 구체적인 위기 현상들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먼저 기아차 광주공장의 채용비리,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방침과 대의원대회에서의 대립과 갈등이 사태의 전면에 있다.

그리고 지난해의 현대중공업노조 사태, 보건의료노조의 산별 교섭과 내부 갈등, 금속연맹의 선거 사태 등도 운동 내부에 상당한 위기의식을 불러온 요인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비정규직의 확산과 정부의 법개악 시도, 그리고 대기업 노조의 문제와 구조적 한계가 결정적이었다. 최근의 현대차와 하이닉스-매그나칩의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투쟁문제는 그 상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하반기에 닥쳐올 노사관계선진화방안(로드맵) 문제와 내년 이후 불거질 작업장단위 복수노조체제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운동의 현실적 쟁점들 외에 위기는 또 다른 곳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주목하지 못했던 위기의 중요한 한 측면은 위기론 논쟁 자체에 있다는 생각이다.

즉 무엇이 위기이며,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말하는가의 문제도 위기의 주요한 현상형태라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노동운동의 자주성의 위기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그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대공장 노조문제로 수면 위에 떠오른 연대성의 위기와는 달리 현재적 쟁점으로 부각돼 있지 않다.

노동운동에서 논쟁은 그 자체가 노조 민주주의의 과정이므로 매우 필요하고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민주노조 내부의 분파적 대립조차도 근본적으로는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이래 진행되고 있는 위기론 논쟁은 건강한 내부 논쟁의 금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때로 국가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난이 노동운동 위기론으로 포장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위기론 논쟁 자체가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자주성 침해가 될 것이다.

한편 그 ‘금도’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므로 이 문제제기는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 개념을 폐기 또는 수정하자거나, 생산성과 경쟁력 또는 생태주의를 앞세워 기존 노조운동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주장은 곤란한 일이다. 모든 것을 ‘대기업 남성 노조’에 떠넘기는 관념적 인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그 경우에도 이론적인 쟁점을 제기하는 차원에서 논의는 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에 걸맞는 주장의 근거와 이론적 정합성이 요구된다. 이런 검토와 절차가 없는 ‘내지르기식’의 위기론 유포는 더 이상은 허용될 수 없다.

국가 자본의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이 운동 내부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일이 비단 위기론 논쟁 뿐만은 아니다. 예컨대 현중노조 제명사태의 주요 측면도 개별 사업장 수준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의 기아차노조 비리사태도 다르지 않다. 직권조인, 어용 행각에 대한 비판과 극복이라는 민주노조의 기본 성격이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민주노총 내부의 갈등은 가장 본질적인 측면에서 자주성의 위기를 입증하는 사례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민주노총 내부의 최근 사태는 본질적으로 국가 자본의 전략적 기획 아래서 발생한 일이다. 좌·우파 간의 정파대립은 그 현상형태일 뿐이며, 지도부가 이를 ‘내부 민주주의 파괴사태’로 규정한 것도 섣부른 인식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지난 7년간 국가와 자본이 노사정위원회를 매개로 해서 민주노조를 압박해왔던 결과였던 것이다.

그리고 ‘민주노조운동 출신’의 정책 당국자들이 민주노총을 압박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만들어낸 일이었다.

일부에서 지도부를 ‘어용’이라 비난하고 반대로 다른 일부는 반대파를 ‘좌익 맹동주의’라고 비난하는 사태의 근저에 무엇이 있는가? 국가 자본의 노동운동의 자주성에 대한 지배와 개입이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그 매개물일 뿐이다.

국가 자본의 공세가 노동운동 내부의 긴장과 갈등으로 재생산되는 일, 그 곳에 위기의 다른 한 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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