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일본노총(렌고) 여성 노조간부들이 지난 22일 한국을 찾았다. 일본 내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한국의 여성 노조간부들과 머리를 맞대고자 함이 이번 방문의 목적.

특히 지난 23일에는 한일 양국의 국제노동재단이 공동주최한 ‘남녀차별철폐와 여성의 노조활동 참여 제고를 위한 한일 여성노조지도자 심포지엄’에 참석, △양국의 비정규직 현황과 차별철폐를 위한 입법방향 △남녀임금격차 현황과 해소를 위한 개선방향 △노조의 여성참여 및 참여제고 방안 등에 대해 4시간여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양국의 여성 노조간부들은 “앞으로도 양국의 노동현실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을 것”에 뜻을 모으고, 앞으로도 활발한 연대활동을 벌이기로 다짐했다.

심포지엄이 끝난 직후, 한국방문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세이코 하야시(60) 렌고 부사무총장<사진>을 만나 이번 방문의 목적과 일본 내 여성비정규직 실태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들어 보았다. 올 10월로 정년을 맞는다는 하야시 부사무총장은 “한국정부가 내놓은 ‘비정규법안’을 둘러싸고 노동계가 큰 근심을 안고 있다고 들었다”며 “지난 97년 ‘노동법개악안저지투쟁’ 당시 한국의 양대노총이 손을 맞잡았던 것처럼, 어려운 이 시기에 다시 한번 두 조직이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일본, 비정규직의 70% 여성”

렌고 여성 간부들은 올해로 9년째 동아시아 지역을 순회하며 각국 여성 노조간부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렌고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2번째. 노동계 현안 문제를 놓고 심포지엄까지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야시 부사무총장은 “한일 공통의 여성노동 과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심포지엄을 기획했다”며 “양국 모두 고용상의 남녀차별과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동조건 차별이 심각한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가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돼야 할 과제“라고 힘주어 말한다.

일본만 해도 95년 이후 비정규직이 급속하게 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가 전체 노동자의 34.6%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특히 비정규직노동자의 70%가 여성이다.

“수치만으로 정확한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비정규직의 상당수를 여성이 차지한다는 상황은 한국과 일본이 아주 유사합니다. 특히 이러한 상황은 ‘여성의 빈곤화’를 부추긴다는 데 심각성이 있습니다. 실제 일본의 여성 비정규직노동자가 받는 한달 임금은 남성 정규직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40%에 불과하다는 통계결과도 있어요.”

‘여성의 빈곤화’, 최근 일본사회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이 말이 ‘노동자 간 양극화’라는 또 다른 신조어로 이어지고 있다며 일본 노동계가 처한 현실을 전하는 하야시 부사무총장. 그는 “중간 소득계층이 사라지는 대신, 연간 소득 200만엔 이하의 저소득층에 여성과 고령자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사정은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만, 홍콩, 한국, 중국 등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전략이 비정규직 양산”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여성의 비정규직화’ 문제. 그렇다면 일본 노동계의 ‘대모’격인 하야시 부사무총장은 이에 대한 근본원인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9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이 직접적인 원인이지요. 경영자들이 ‘효율’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인건비부터 줄여보고자 시도한 것이 결국 정규직 축소와 비정규직 환산의 결과로 나타난 거지요.”

그는 “경영계의 신자유주의 전략은 특히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있는 여성들에게 극복하기 힘든 사회적 장벽, 즉 차별의 형태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며 임금차별과 승급·승진 차별, 임신출산을 앞둔 여성에 대해 자발적 해고 유도, 계약직의 경우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해고 등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렌고는 여성노동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각종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올 한해 ‘여성 차별 해소’를 골자로 하는 법제화 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한국, 양대노총 단결하는 모습 기대”

올해 나이 60세, 오는 10월 정년을 맞는다는 하야시 부사무총장에게 “한국 방문 일정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매일노동뉴스>를 꺼내든다.

그는 “표지사진을 보고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8년전 ‘노동법 개안인저지 연대투쟁’을 벌이던 그날처럼, 노동자들을 위해 한국의 두 조직이 다시 한번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고싶다”며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이 어려운 상황을 슬기롭게 이겨내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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