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영세 자영업 신용불량자에 대해 빚 상환을 6개월~1년간 유예하고 은행이 2천만원의 재창업자금을 장기 저리로 신용대출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및 청년 신용불량자는 소득이 늘어나거나 발생할 때까지 채무상환 유예 △제2차 배드뱅크 실시 등을 뼈대로 하는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을 내놓았다.

경기회복이 되면 신용불량자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손을 놓고 있던 재경부가 뒤늦게나마 저소득층 신불자 대책을 내놓은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정부의 카드 경기 활성화 정책과 금융기관의 마구잡이식 카드 발급으로 생긴 신용대란의 책임을 여전히 신용불량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전의 부실 대책을 재탕하는 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영세 자영업 신용불량자에게 최장 1년간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것은 이미 지급불능 상태인 자영업자에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며, 일부 자영업자에게 창업자금을 추가 대출해 주는 것은 ‘빚을 꿔서 빚을 갚으라는’ 것으로 금융기관의 부실을 은폐하고 다중채무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한 ‘돌려막기’나 다름없다.

또 은행권이 자영업 신용불량자에게 담보 없이 신용으로 장기대출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불투명하다.

이 경우 채권기관이 보증인을 요구한다면 채무자에 이어 보증인까지 연쇄 도산할 우려가 크다.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청년 신용불량자에게 당분간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방안 역시 한번 신용불량 상태에 빠지면 취직과 생계유지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신용이 전혀 없는 수급권자와 미성년자에게 채무의 무효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상환유예라는 미봉책을 마련함으로써 신용대란의 근본원인을 호도하려는 것이다.

이번 대책에서 정부가 2차 배드뱅크의 출범을 신용불량자 대책으로 발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처사다. 왜냐하면 배드뱅크는 민간 채권기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일 뿐이며, 따라서 정부 정책으로 홍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특히 채권금융기관의 주도하는 제2차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원금의 4~5%에 사들여 채무자를 대상으로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는 것으로 채무조정책이 아니라, 사실상 채권 장사와 같다.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은행과 카드사 등이 만든 신용회복위원회를 방문해 신용회복위원회가 마치 정부기관인 것처럼 호도하기도 했다. 한 부총리는 대한민국 경제 수장으로서 360만명에 이르는 신용불량자 대책을 전 부총리와 똑같이 민간 채권기관에게만 일임하며 책임을 다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경제 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국가가 신용대란의 주범인 채권기관에게 신용불량자 대책을 맡기는 것은 범죄자에게 재판권을 맡기는 격으로 공사 구분도 할 줄 모르는 불량대책이라 할 것이다.

신용대란의 기획자인 재경부는 정책오류를 덮기 위한 불량대책을 ‘재탕 삼탕’ 하지 말고 △개인파산제, 개인회생제 등 법원 중심의 채무조정 프로그램 활성화·간소화 △미성년자·저소득층 등 정부와 채권기관의 명백한 귀책사유로 카드를 발급받은 뒤 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 대해 이들의 연체채권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특별법 제정 △고금리제한법 제정 등 서민금융생활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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