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정연주 사장이 ‘주도’한 시사투나잇 ‘헤딩라인 뉴스’ 폐지 방침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연주 사장이 지나친 ‘저자세’로 한나라당의 항의에 굴복한 것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한나라당 박세일, 전재희 의원을 ‘낙원상실’이라는 명화에 빗대 패러디한 15일자 헤딩라인뉴스에 대해 한나라당이 “공당에 대한 모독이자 여성비하”라며 반발하자 정연주 사장은 즉각 “KBS 사장 취임 후 가장 화나는 일이었다”며 “봄 개편까지 기다리지 않고 해당 코너 폐지 등과 같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벌써 내부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라고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다.

방송사 사장이 편성내용과 관련, 공식적 사과를 하는 일도 이례적이거니와 해당 프로그램의 꼭지 하나를 폐지하겠다고 나선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 '낙원상실'이란 명화를 패러디해 논란을 빚은 15일자 헤딩라인뉴스 화면.
결국 KBS는 20일 제작자회의를 통해 헤딩라인뉴스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외주제작업체인 미디어몹측에 통보해왔다. 헤딩라인뉴스는 이번주까지만 방송하고, 추후 새로운 프로그램 제작을 모색해보자는 것이 KBS측의 입장이다.

이같은 헤딩라인뉴스 폐지 방침에 대해 먼저 반발한 것은 언론단체들이다. 

인터넷기자협회측은 18일 한나라당을 겨냥해 “정작 음란한 것은 '성화를 패러디한 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화 패러디를 보고 음란한 짓'이라고 여기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머리속에 있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민언련은 19일 “'헤딩라인뉴스'가 비록 명화를 패러디했다 하더라도, 패러디 대상이 모욕감을 느낄 수 있는 '누드'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신중치 못했다고 본다”고 전제한 뒤 “이번 패러디 논란으로 헤딩라인뉴스를 코너를 폐지한다거나 '시사투나잇' 전체를 ‘문제 프로그램’으로 몰아가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정 사장이 제작진과 논의도 없이 사실상 해당 꼭지의 ‘폐지의사’를 내비친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시사투나잇과 정연주 사장을 함께 비판했다.

정연주 사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은 KBS 노동조합이다.

KBS 노동조합은 21일 성명을 내고, “정사장의 태도가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독립을 사수해야 할 공영방송 최고 경영자의 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패러디 문화에 대한 국내 역사가 깊지 않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민정서의 허용 폭이 외국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이에 대해 정치권이 제작진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고 프로그램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명확히 방송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이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KBS 노조는 “한나라당 의원이 KBS 전체를 모독하는 발언에 대해서도 한마디 대응도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하는 정 사장의 모습에선 비굴함과 함께 KBS인으로서 자괴감까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정치권의 외압에 굴복한 정 사장을 강력히 성토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레이버투데이>와 전화통화에서 보다 혹독하게 정연주 사장을 비판했다.

양문석 위원은 “정치권에서 요구한다고 당장 사과하고 관련 꼭지를 폐지한다는 건 전형적인 편성권 침해이고, 정신나간 일”이라며 “과연 KBS가 진정 정치적 독립을 원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위원은 “가장 큰 문제점은 공영방송이 서서히 확보하기 시작한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수구세력이 조금만 공격해도 허약하게 무너진다는 사례를 만든 것”이라며 “패러디도 보호하지 못한 정 사장이 앞으로 뉴스 등 보도프로그램에 가해지는 외압을 어떻게 견뎌내겠느냐”고 질타했다.  

양 위원은 특히 이번 사태가 “정연주 사장의 안일한 자기점검 시스템”이 빚어낸 문제라고 규정하며 “정 사장이 공영방송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도 없이 자리 지키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KBS 피디협회측의 경우 조만간 관련 입장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프로그램 폐지 자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진 않을 방침이다. 피디협회측 관계자는 <레이버투데이>와의 통화에서 “프로그램 폐지에 대해 협회가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정 사장이 제작진과 사전소통이 없었다는 점을 중심으로 성명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디협회의 경우 ‘패러디물’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보도국과 그동안 적잖은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보다 강력한 입장발표는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KBS의 한 관계자는 “KBS 내부에선 정연주 사장이 진작부터 ‘패러디물’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엔 패러디에 대한 방송사의 ‘보수적’ 견해도 얽혀있다고 귀띔했다.   

최내현 미디어몹 편집장은 이와 관련 “KBS측에선 헤딩라인 뉴스 대신 다른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또다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설령 하게 되더라도 아무런 시빗거리도 일지 않을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자기검열 시스템’이 작동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KBS 시청자게시판에도 헤딩라인뉴스 폐지에 반발하는 시청자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이 정도 패러디도 용납하지 못하는 한나라당과 KBS측의 자진폐지 방침을 비판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정연주 사장은 한겨레 기자 출신으로 이른바 ‘조폭언론’이란 말을 가장 먼저 만들어낸 ‘언론개혁 투사’였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한 누구보다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을만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제 정연주 사장 본인이 거대방송사의 매력에 사로잡혀 ‘조폭적 편성권 침해’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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