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부산항운노조가 태어난 지 58년째 되는 해다. 6·25 전쟁 직후 군수물자 하역을 맡기 시작해 국가에 이바지하기 시작한 항운노조는 민주화 요구가 한창이던 80년대 이후에도 일터를 지키며 항만과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우리 사회의 비극과 격동의 역사를 함께 했던 항운노조는 그러나 햇빛처럼 화려했던 역사에 자칫 종지부를 고할 운명에 직면했다.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곳곳의 덧난 생채기를 드러내고 있어서다. 취업 비리에 따른 노조 간부들의 잇따른 구속과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의 양심선언. 이들의 줄이은 소환. 검찰의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 노조 위원장의 사퇴와 구속. 언론의 대서특필은 항운노조의 실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항운노조를 알만한 사람들은 ‘취업을 미끼로 한 노조 간부들의 비리는 널리 알려진 일’이라며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때늦은 ‘검찰 수사’를 통해 다만 생생하게 ‘입증’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장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언론과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으며 비리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의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생채기를 보기 위해 부산으로 몸을 옮겼다.


“언론에서 (노조 간부들에 대한) 유언비어를 다 퍼뜨려서 검찰이 모조리 잡아가는데 무슨!”, “현장 조합원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고 일만 잘하고 있는데, 와 자꾸 이라는겨? 조합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지난 18일 오후 3시 부산항운노조 사무실에서 가까운 부산항 A부두 연락소. 연락소는 조합원들이 근무를 교대하는 동안 온갖 얘기들을 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후생식당과 매점도 있기에 조합원들의 심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만난 ‘연락원’들은 기자에게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이었다.

하역 작업에 투입되는 조를 관리하면서 ‘반장’으로 불리는 이 연락원들은 신규인력 채용 및 조합원 승진과정에서 연락소장과 함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속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연히 만난 연락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취재요? 필요없어요.” 연락원 개개인에 따라 기자를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무관심으로 외면했다. 항운노조의 주위를 떠돌고 있는 공공연한 소문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벙어리가 돼 버린 것이다.

신경질적인 연락원들

부산항운노조의 상급단체인 항운노련에 따르면 부산항 일반부두, 컨테이너전용터미널, 야적장 등 총 29개의 연락소 가운데 연락원 수는 총 551명. 모두가 ‘죄인’은 아니건만, 이들은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보다 앞선 오전 11시 부산 동구 초량3동 항운회관 5층 부산항운노조 사무실. 부산항운노조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조영탁)가 꾸려져 업무를 추진 중이지만, 사무실을 거의 초토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행부는 거의 손을 논 상태인기라.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모든 자료를 다 빼앗긴 상태고에. 또 누가 어떤 식으로 잡혀갈 지도 모른 상황 속에서 지금 무슨 일이 잡히겠습니꺼?”

‘직책과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노조 간부는 사무실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그러나 항운노조의 운영실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클로즈드숍 및 노무독점권 폐지'와 같은 사회 여론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항운노조는 사용주 한 사람과 근로계약관계를 형성한 것이 아니고, 작업(근로)을 제공할 때마다 사용주가 매번 바뀝니더. 이런 상황에서 오픈숍이 가능한 것입니까? 그럼 수시로 사용주와 근로계약을 체결하라고에? 물론 이번 기회에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오픈숍이든 뭐든 간에 항만의 특성을 연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항운노조의 제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에.”

그는 조합원들이 비리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 간부로서 안타깝다고 했다.

“집행부와 일부 간부들의 비리가 전체 항운노조의 비리로 묘사되고, 이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순수한 조합원들이 매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더.”

윤종대 노조 홍보국장은 “조합원들은 어떻게 사태가 수습이 되는지 기다리고 있다”며 “빨리 이 사태가 진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윤 국장도 상용화 제도에 대해서는 ‘현실성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정부는 상용화에 대해서 긍정적이겠지만, 사용자(회사)들은 돈 때문에 (상용화를) 반대하고 있는 게 현실 아닌겨. 전체 항운노조 9천 조합원 가운데 6천 명이 재래부두 조합원들입니다. 결국 항운노조 소속이 아니면 이들은 하루하루 일터를 찾아야 합니다.” 전국 항운노조의 상용화에는 1조8천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는 지난 2002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항만노무공급체계 개편방안 연구결과는 윤 국장의 이 같은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사태가 빨리 진정되길”

부산 연제구 연산2동에 위치한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는 다음 달 1일로 예정된 정기대의원대회를 앞두고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김진수 의장은 “임기 말년에 이 같은 일이 터져서…”라며 연신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 의장은 “항운노조는 사회 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민주화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03년 노사 동수로 구성된 ‘항만노동수급노사조정위원회’의 운영이 미흡한 점에 대해서 “노조를 깨끗하게 운영하자는 차원에서 제도를 만든 것인데, 어떻게 1년 만에 전체 조합원들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현 상황을 지켜보는 김 의장의 시각도 부산항운노조 간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가 상륙해서 부산항에 설치된 대형 크레인 9기 중 5기가 파괴된 거 아신겨. 그때 부산항 기능이 마비돼 외국선사들이 부산항을 떠날 위기에 직면했을 때, 항운노조가 자진해서 하루 20시간 근로제에서 24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연장했고 4시간에 해당하는 노임은 무급으로 결정한 적이 있었다는거 아닙니까.” 요컨데 긴 시간에 걸쳐 관행으로 유지·발전돼 온 조합운영 체제는 그대로 존속시키자는 의견을 한 예를 들어 설명한 것이다.

현장과 밀착돼 있는 부두 조합원들도 ‘항운노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항운노조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18일 A부두 연락소 앞에서 만난 김아무개(50) 조합원은 담배를 피우며 오고가는 연락원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히 “이번 사태는 솔직히 항운노조의 망신인기라”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이 있으면 일하고 일이 없을 경우 놀 수 있는 현재의 제도가 편하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찾은 이 부두는 속칭 ‘취업과 승진 과정에서 금품거래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던’ 재래부두(중앙부두). 재래부두는 신선대부두, 감만부두 등과 같이 상용화 돼 있는 자동화 컨테이너부두와 달리 사용자가 불특정하다. 조합원들에게는 노무독점권이 노조에서 박탈될 경우 일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김씨처럼 ‘실직에 대한 불안감’을 이유로 제도 유지를 외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합원들은 연락소장과 연락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해 있었고, 이들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거칠었다. 이번 기회에 물갈이를 하자는 뜻을 피력하기 위해서인지, 현 부두 상황의 모순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19일 하역부두로 날림먼지가 많았던 부산항 B부두 연락소. 대기실에 모여 있던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간부들이 썩었다”며 쏘아 붙였다. 담배를 연신 피워대던 한 조합원은 “현 체제(연락소장-총무-연락원)는 족벌체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 부두를 포함해서 대부분 재래부두가 반장을 통해 친인척이 채용되고, 이들은 조합원을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원들은 반장의 명령대로 움직입니더. 반장이 ‘옳소’하면 그 것으로 끝인기라에. 반장이 죽으라고 명령하면 죽는 시늉이라고 해야 합니더. 우스운 이야기지만, 반장은 여기서 우상입니더. 부두에서 존재하는 법은 반장을 위한 법이고에.”

그는 지난해 9월2일 항운노조 조합원인 이아무개(38)씨가 부산항운노조 중앙부두 연락사무소에서 불을 지른 뒤 방화 사고로 숨진 사건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화재 사건…. 언론에서도 보도된 것처럼, 정말로 그 사람이 정신이상자라고 해서 죽었겠습니까? 반장들이 그 사람을 정신이상자로 하니까 그런겁니더. 여기서는 사람 한 명 죽이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게 바로 왕따지에. 이런 비리는 여기서 모두 눈감아진단 말이에요.”

B부두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20년 이상 부두 노동자로 근무했다는 다른 조합원은 ‘반장’의 힘에 대해 이렇게 비유했다. “사람들에게 부산시장을 할래, 아니면 부두반장을 할래? 라고 물어보면 부산 사람들은 부두 반장을 한다고 대답할 것인기라에.” 그는 “그동안 항운노조의 비리가 밖으로 유출이 안됐던 이유는 간부들이 족벌체제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현재 이러한 균형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항운노조가 나쁜 조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그동안 항운노조 조합원들은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고 복잡한 심정을 전했다.

“간부들이 썩었고 조합원들은 죄없다”

또 다른 조합원은 언론에 대한 불평도 늘어놨다. “내가 신문에 불만이 많은 게 뭐냐면, 항운노조 이러지 말고, 000 부부, 000 부두 등 이름을 정확히 붙여야 다른 부두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없지, 안그라요?” 불평과 불만은 이처럼 많았지만 제도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을 ‘부반장’이라고 밝힌 한 조합원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새로운 방식이 들어오면 바뀌나? 그냥 이 체제에서 제도 개선과 감시활동을 통해 맑고 투명하게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지에. 난 제일 맘에 안 드는 게, 누구 말대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들이 없는데.”

조합원들은 절대 다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지금 이 문제는 1~2년 문제가 아니고 50년이 넘는 문제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조합원들은 절대 다쳐서는 안된다”고 했다.

“제일 밑바닥 조합원들은 간부들이 돈을 가져오라고 하면 돈을 가져다주고 일을 시키면 일을 한 죄밖에 없습니더. 그러나 지금 반장들이나 간부들은 집을 사고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아닙니까.”

이들은 취재과정 속에서 한결같이 항만 노동공급 문제는 간부들의 취업 및 전보 비리와 같은 일부 부작용이 있지만, 부산항의 안정적 운영에 협조가 가능했던 항운노조의 현 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자고 입을 모았다.

이런 사정임에도 항운노조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B부두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취업과 승진을 빙자해 금품수수라는 반도덕적 비리를 저질러 온 노조 간부들이 여전히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도 언젠가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겠지만 조합원들이 스스로 개혁해 노조의 비리를 뿌리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 서정수 사무처장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가 창피할 지경”이라며 “여전히 일부 항운노조 간부들이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 한국노총 할 것 없이 이 문제에 대해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운노조의 변화를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 같은 주장은 지난 9일 개설된 항운노조 민주화쟁취본부(www.nomuja.net) 사이트에도 연일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하는 항운노조 조합원들의 저변에는 비리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는 항운노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남아 있다.

“집안에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일이 있으면 나갔습니다. 힘들게 돈을 모아서 전셋집을 샀고, 더 아끼고 살아서 내 집도 마련했습니다. 그 때마다 조합에 더없이 감사해 했는데…”
“더욱 더 단결된 모습으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안정된 우리의 직장을 지켜 나갑시다. 우리들이 먼저 해결해야 됐던 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해 법에서 처리하게 된 점이 아쉽기도 하고….”

“노조는 존재해야”

항운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의 속내야 어떻든 여당은 항운노조 제도개선에 대한 광범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제5정조위원장은 “부산 항운노조 채용비리는 독점적 노무공급권이 원인”이라며 “노조의 노무공급권을 박탈해 상시 고용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자칫 노무공급권을 쥐고 있던 부산항운노동조합이라는 노조의 기본 토대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항운노조도 정부의 현 움직임을 “노동조합 죽이기”로 규정하고 있다. 해결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일단 부산항운노조와 항운노련은 18일 각각 기자회견과 대표자 회의를 통해 △민주적 위원장 선출 △클로즈드숍 개선방안 마련 △조합운영의 투명성 확보 △노조 민주화와 조합원 참여제도 확대 △자문기구 설치와 같은 개혁 방안을 시급히 마련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현 항운노조의 지난 수십 년의 관행을 한꺼번에 뒤집는 행위로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항운노조는 노조원을 보호하는 단체가 아니고 노조간부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한 조합원의 주장처럼, 노조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위한 노조 건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립무원'인 항운노조가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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