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4월1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된 지 꼭 1년째 되는 날이다.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농업 피해는 예상보다 훨씬 적고, 수입보다 수출이 많아 이득이었다며 연일 성토다.

언론의 든든한 지원을 받아 힘이 났는지 정부는 이 참에 아예 일본, 중국, 미국, 멕시코 등 24개국과 FTA를 추진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

칠레 무역수출 증가 FTA 체결 결과 단정 무리

지난해 대칠레 수출이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통계상으로 보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말 기준 대중남미 수출이 1백4억달러로서 2003년 동기 대비 27.9%라는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는 FTA를 체결하지 않은 중남미 나라들도 그만한 수출증가세를 보였다는 것으로 결국 대칠레 무역수출 증가가 단순히 한-칠레 FTA 체결의 결과라고 단정짓는 것은 억지일 수 있다.

실제로 유엔중남미경제위원회(CEPAL)는 2004년 중남미 전체의 경제성장률은 5.5%, 1인당소득 증가율은 4% 인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으며, 중남미의 지속적 경제성장이 다른 나라의 무역수출 호조의 주된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한-칠레 FTA를 격렬하게 반대했던 우리 농민들이 그래도 마음에 쓰였는지 발효 후 우려한 칠레 농산물의 수입은 미미해 우리 농업의 피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애써 달래고 있다.

하지만 농림부(3월 15일 발표)에 따르면 한-칠레 FTA체결로 타격이 우려되는 시설포도와 복숭아, 키위 등 3개 품목의 과수농가를 대상으로 지난해 폐업 신청을 받은 결과, 1만2,644개 농가가 폐업을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통상협정 안 된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한-칠레 FTA 체결 과정이 국민들의 불신을 초래한 시발점이었다면 정부의 독단적 밀실야합 협상의 결과물인 '쌀협상'은 우리나라 통상정책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 나라의 안보와 국민들의 생명이 달린 중대한 통상협상은 의례히 충분한 사전준비와 국민적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주체들 사이에도 서로 다른 견해와 전망을 내놓고 있어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결국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고 그에 따른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도 WTO에 통보된 '쌀협상안'을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통상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전농, 민주노총, 문화연대 등에서 공동으로 준비중인 '통상절차법 체결에 관한 법률제정'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는 노동자 농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책임 있게 검증하게 하는 것으로 정부의 일방적 통상정책 독주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체제하 노동자·농민 따로 있을 수 없다

지난해 국제회의에 참가해 미국의 한 농민운동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세계 농민조직인 비아깜페시나(Via Campesina)의 회원이기도 했다. 평균 180ha(우리나라 평균 1.48ha)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는 농민들이 그것도 농산물 수출의 대표국인 미국농민들이 WTO를 반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에 순간 의아했지만 사실 그렇게 의아해 할 이유도 없었다.

1970년대 시작된 수출붐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왔지만, 그 이익이 공평하게 분배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초반이 되자 농장 운영자의 1%(대부분 기업)가 농장 순소득의 60%를 차지했다.

미국 농민들의 상황이 이 정도면 다른 나라들의 농민 수준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자유무역의 최고 수혜자라고 생각하던 미국 농민들이 반WTO 투쟁에 나선 것에 알 수 있듯이 WTO·FTA는 이제 전 세계 농민들의 공공의 적이 분명해졌다.

WTO체제 아래 미국농민 한국농민 따로 있을 수 없고 노동자·농민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머리가 터지면서 우리 농민들이 깨친 절대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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