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에 걸친 폭력사태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마침내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 교섭의 장에 복귀하기로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조직 내부적으로 엄청난 상처를 남기면서 이뤄진 민주노총 지도부의 판단이 최선의 결정은 아니었지만, 사회적 교섭과 대화의 장에 복귀하기로 한 결정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조직노동운동이 처한 고민과 위기 속에서 이뤄진 고심 끝의 결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대화 복귀 과정에 대한 치열한 논란 과정에서 우리는 사회적 대화에 대해 강력한 의구심과 저항감이 노동운동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감에도 노동운동 진영이 사회적 대화의 장에 참여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이제는 보다 명확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정치 상황에서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가 요구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노동 현안들이 이제는 더 이상 몇몇 사업장 단위에서만 다뤄질 수 없을 정도로 그 사회적 파장과 영향이 큰 데서 찾아야 한다. 자본의 세계화로 인해 확산되는 새로운 고용 관행들, 외국인노동자 문제, 복수노조 문제 등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노동 현안의 대부분은 사회적, 정치적 교섭의 장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며, 노사관계 제도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교섭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의 단체교섭이나 파업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주요 노동 현안들은 노동자들이 잘 조직화된 생산과 작업의 현장에서 사회적 이슈로 전개됐다. 현장의 문제들을 첨예한 노동정치의 장으로 끌어 올린 것은 작업장의 노조들이었고, 그들의 잘 조직화된 집합적 행동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조직 노동자들보다 다 많은 다수의 노동자들이 직면하는 노동 현실을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할 주체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 노동시장 차별, 노동자 복지, 고용 창출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다룰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 진영은 이러한 문제를 다뤄야 할 틀 자체를 부정해 왔던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수많은 노동 현안들이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현실에서 노동 진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민주노총이 그 동안 사회적 대화의 장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은 상당한 부분 그들의 책임을 스스로 방기한 것에 다름 아니었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포함한 사회적 대화의 장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노동 현안을 책임 있게 다루기도 어려웠다. 그러한 가운데 노동계가 제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표류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사회의 정치적 현실에서 노동이라는 이슈는 계속해서 주변화 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민주노총이 사회적 교섭의 장에 복귀하기로 한 결정은 민주노총으로서는 대단히 힘들었던 하나의 결단으로 그 의미를 노사정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의 노사정 대화 복귀는 정부, 사용자, 그리고 한국노총을 포함한 기존의 대화 파트너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자세와 결의를 요구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사회 세력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진지한 교섭과 타협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보다 진전된 사회적 협력의 장을 만들어 감으로써 서로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타협의 기본 토대가 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입장에서도 어렵게 열어가는 새로운 참여의 장이 한국사회에서 그 동안 소외됐던 노동대중의 이익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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