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1시경, 봉천동 고개에서 1번 마을버스 타고 벽산아파트에 내리신 30대 중반 여성분, 운전기사님이 지갑을 주워서 버스정류장 옆 ㅇㅇ약국에 맡겨놨답니다. 방송 들으시면 꼭 찾아가세요.”

“자, 알뜰정보 시간입니다. 오늘도 30년 성산동지기, 김ㅇㅇ씨를 전화로 연결합니다. 자, 오늘의 주제는 봄나물이죠?/네, 요즘 봄나물이 좋을 때죠? 일단 망원시장 입구에서 세번째, 양씨 아주머니네 냉이와 두릅이 참 좋고요, 시장 건너편 ㅇㅇ할인점은 값은 싼데 좀 덜 싱싱하네요. 멀리 나가기 어려운 분들은, 성산초등학교 옆 ㅁㅁ마트를 이용하세요. 얼마 전에 1만 원 이상 구매하면 오토바이로 배달을 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했거든요.”

위 이야긴 ‘아직까지는’ 가상이다. 하지만 불과 한두달 안에 ‘현실화될’ 미래다. 집에서 듣는 일반적인 FM라디오만 있으면, 생생한 ‘동네이야기’가 맑고 선명한 FM전파를 타고 방송되게 된다. 새로운 ‘라디오시대’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공동체라디오 시대’가 열린다. ‘공동체라디오’란 1와트 이내의 소출력으로 에프엠 주파수(88~108㎒) 대역에서 제한된 지역에만 송출되는 ‘지상파 방송’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말은 이 방송국의 주체들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방송위원회와 같은 관에서 보기엔 ‘소출력 라디오 사업자’이고, 청취자들 입장에선 ‘우리 동네에서만 흘러나오는 FM 라디오방송’이다. 옛날로 치자면 ‘해적방송’인 셈이다. 영화 ‘볼륨을 높여라’에서 밤마다 학교의 비리를 고발하던 고교생의 1인 방송국이 보다 체계와 규모를 갖췄다고 보면 된다. 

방송법이 개정되면서 지난해 11월 사업자가 선정된 소출력 라디오 사업이 곳곳에서 전파를 쏠 준비에 들어갔다. 관악, 마포, 분당, 나주, 영주 등 수도권과 지방소도시를 중심으로 한 8개 라디오방송국들은 방송위원회 산하 ‘비영리법인’ 형태로 올 4-5월 개국을 목표로 지역마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KBS 런던특파원 출신의 정용석씨가 운영하는 분당방송국처럼 ‘프로페셔널’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시민사회 운동을 했거나 제대로 된 지역방송에 뜻을 뒀던 이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영국, 호주, 일본 등 외국의 경우엔 이미 오래 전부터 중앙중심의 거대방송사에 대항하는 지역방송들이 활발히 운영돼왔다. 일부 상업광고를 싣기도 하지만, 상당부분 주민들의 후원금과 지자체 등의 지원금을 통해 ‘자본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존재 자체가 독립적인 만큼 방송콘텐츠 역시 중앙방송과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동네의 시시콜콜한 대소사에서부터,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자원봉사, 모금활동 등 단순한 ‘방송 이상’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적방송’ 취급을 받아 쇠고랑을 차야했던 소출력 지역방송이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다. 

‘천지인’ 매니저에서 ‘방송국장님’으로

“아니 이 짐을 다 계단으로 옮겨야 하나요?”

3월 17일 오전, 관악구 봉천동 현대시장 앞. 안병천 관악공동체라디오 방송국장(30)이 엘레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 꼭대기까지 짐을 나르고 있다. 트럭 한 대에 가득 실린 의자, 책상 등 사무용 집기들은 모두 민주노동당 관악갑 지구당으로부터 공수된 것들. 전날 밤에 비가 와서 집기 중 상당량을 못 쓰게 된 터라 안 국장의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관악갑 지구당의 손민균 사무국장이 “마침 살짝 고장난 복사기도 있다”고 귀띔하자 금새 화색이 돈다.

관악공동체라디오방송국에 준비된 거라곤 아직 어수선한 30평짜리 사무실과 기본적인 송출장비들뿐. 안병천 국장으로선 주위의 어떤 도움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관악주민연대를 비롯한 지역의 사회·복지단체들이 음으로 양으로 후원하고, 참여할 예정이다. 방송국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스튜디오는 민주노총 새날건설측에서 상당히 저렴하게 만들어줬단다.   

그래서 공동체라디오에게 지역의 여러 단체와 모임은 후원자이자, 청취자이자, 참여주체들이다. 지난 3월 4일 열린 후원의 밤에선 이런 관계자들이 상당수 참여해 지역민들의 기대치를 반영했다. 아직 완전히 확정된 안은 아니지만, 이미 발표된 편성안에는 이런 주민들의 참여가 보장된다.


하루 두 번 방송되는 종합뉴스 시간엔, 지역주민들을 직접 리포터와 아나운서로 참여시켜 생생한 지역소식을 전달한다. 시민들이 직접 방송을 제작하는 ‘퍼블릭액세스’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다양한 시민들의 제작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신나는 문화학교’와 같은 지역의 문화교육 단체와 접촉하는 것은 물론, 아예 방송국 내에 교육공간을 만들어 방송제작의 학습장으로도 개방할 예정이다. 매주 일요일엔 아예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도 DJ’ 시간도 마련돼 있다.

관악공동체라디오의 경우 특히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있다. 거대방송사들이 외면하는 인디밴드, 민중가수들을 직접 스튜디오에 초대하거나 ‘공개방송’을 통해 무대에 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관악라디오가 이런 꿈을 꾸는 데는 안병천 방송국장(30)의 ‘전력’과 무관치 않다. 그는 원래 민중가수 록밴드 ‘천지인’의 매니저였다. 대학시절 음악방송의 PD를 꿈꾸다가 록밴드의 매니저로 잠시 우회하더니, 이제 아예 ‘방송국장님’이 되신 것이다. 출세라면 꽤나 벼락출세라 할 만 하다.

함께 일하는 김정인(25)씨는 올해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초년생이다. 대학교 노래패 출신의  그는, “일반회사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느니, 하고싶은 일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게 낫겠다” 싶어 과감히 공동체라디오에 뛰어들었단다. 상계동에서 봉천동까지 꽤 먼 출퇴근길도 마다않을 만큼 대단한 의욕이다.

관악라디오는 아직 상근자 두 명에 불과한 ‘초미니 방송국’이지만, 조만간 홍보, 영업 등을 담당할 상근자를 한명 더 공채할 예정이다. 물론 그 대상은 지역민들이다.

자원봉사자들의 관심도 예상외로 뜨겁다. 피디, 진행자, 기자, 작가는 물론 심지어 행정사무까지 방송국 전반의 일을 이들 자원봉사자들에게 맡겨야 하는 실정임에도, 방송국의 인터넷 카페(www.radiogfm.net)에만 최근 며칠 사이에 1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입소문만’ 듣고 신청을 해왔다. 전화상 문의도 꾸준하다. 안병천 국장은 “공동체라디오가 방송 일을 꿈 꾸는 이들에게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이들에게 공동체라디오는 낯선 모험이다. 우리 사회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어쩌면 ‘청춘’을 걸고 뛰어들어도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게다가 ‘비영리’ 아닌가.

“고베 대지진 때 일본의 공동체라디오들이 하나의 전형을 보여줬어요. 당시 중앙방송들은 사망자수, 부상자수를 집계하고 발표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공동체라디오들은 어디에 가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고, 어디 가면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 하는 생생한 정보들을 전달해줬어요. 또 당시에 외국에서 일하러온 이주노동자들 역시 아주 많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됐는데 이 상황을 이주노동자 국가들의 언어로 계속 생방송을 한 거예요. 그런 건 결코 기성방송국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이죠. 정말 해볼만 한 일 아닌가요?”

가장 낮은 놀이공간이자, 가장 치열한 생활정치 공간

하지만 공동체라디오가 첫 전파를 타기까지 앞으로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우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 간의 협력부족으로 인한 혼선 문제가 있다. 방송위가 방송심의기준의 적용을 받는 ‘지상파방송사업자’로의 허가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전파의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정통부는 전파혼선 등 기술적 문제를 고려해 ‘실용화시험국’으로 가야 한다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방송국의 개국일정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공동체라디오방송국측은 “공동체 방송에 일반적인 방송심의 규정을 적용하는 방송사업자나 전파의 기술적 문제에 대한 실험대상인 실용화시험국 모두 맞지 않다”며 “허가는 방송사업자로 내주되 지상파방송보다는 완화된 형태의 규제를 받는 사업자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돈 문제’ 역시 걸린다. 관악공동체라디오의 경우 현재까지 방송위원회 지원금과 후원금 등 총 7천5백만 원이 들어갔다. 지역방송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송위원회측에서 제법 ‘본때나는’ 고가의 설비 장착을 요구한 것이다. 저예산과 최소화가 ‘생명’인 공동체라디오측에선 “방송위가 기성방송국의 수준을 자꾸 요구하다 보면, 나머지 돈을 메꾸기 위해 상업적으로 흐르거나 과도한 자금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후원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방송국 후원인들을 조직할 것인가도 꾸준한 방송송출을 위해 풀어가야 할 숙제다.   

공동체라디오는 1940년대 남미 볼리비아 광산 지역에서 처음 등장하면서 대안미디어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지역의 필요에 의해, 지역민들의 참여로 이뤄진 ‘변방의 공동체’였던 셈이다. 거대방송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지상파의 현실 속에 이같은 공동체라디오의 실험이 의미있는 신호음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의 생각은 소박하고, 또 야무졌다.

“공동체라디오가 지역에서 가장 낮은 놀이공간이자, 가장 치열한 생활정치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민과 주민간, 지역과 중앙간에 소통하고 교류하고, 그리고 갈등까지 해결 할 수 있는 전파가 조만간 당신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옵니다. 볼륨을 높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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