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 관계의 새로운 기조와 원칙을 정리하기 위해 17일 오후 열릴 예정인 국가안전보장회의 (NSC) 상임위 전체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독도와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을 다루는 회의인데다 대통령이 NSC 의장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회의를 주재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통일부장관인 정동영 NSC 상임위원장이 주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독도 문제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다만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노 대통령이 일본측의 '망동'에 대해 단단히 화가 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다소 불투명한 메시지 전달 방법이긴 하나 일부 매체를 통해 "노 대통령이 화가 났다"거나 "노 대통령이 일본측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국에 대한 새로운 침략행위라고 언급했다"는 등의 보도가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공식 회의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한 발언이 소개된 적은 없다.
실제 노 대통령을 수시로 접근하는 청와대 핵심관계자들 조차도 "노 대통령이 아주 화가 난 것은 분명한 것 같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의 언급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입을 닫기 일쑤다.
만약 노 대통령이 이토록 화가 난게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의 들끓는 반일 감정과 정서를 감안해 한마디라도 할 법도 한데 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선 참여정부 출범 이후 노 대통령이 취해온 소극적인 대일 접근법에서 찾는 견해가 많다.
사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7월말 제주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당시 양국 과거사 문제와 관련, "제 임기동안에는 한국 정부가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적인 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으려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에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2003년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우리는 언제까지 과거의 족쇄에 잡혀있을 수는 없다"면서 "과거를 직시하고 불행했던 과거를 교훈 삼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12월 일본 이부스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이 자꾸 역사문제를 끄집어 내 일본에 사과를 요구할 때 한일간 우호친선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다소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서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 발전을 희망하는 노 대통령의 '진정성'에도 불구, 노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들이 오히려 일본측의 상황판단을 오판케 함으로써 '독도 망동'을 촉발한 빌미를 제공한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때문에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제와서 다시 방향을 급선회, 일본을 맹공하는 발언들을 쏟아낼 경우 그간 일관되게 취해온 대일 접근법이나 대일 정책의 일관성에 심대한 훼손이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와 맞물려 외교가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직접 전면에 나설 경우 일본과의 극단적인 갈등과 마찰이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먼저 공격에 나설 경우 모양새가 사나울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득'(得)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전략적 고려가 감안된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에선 노 대통령이 향후 일본 정부와의 협의 과정을 염두에 둔 계획된 행동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독도 문제로 인해 파국을 원하는게 아니라면 협의를 할 상황이 올 게 뻔한 상황에서 한국측 지도자가 감정적 발언을 자제하는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는 얘기다.
(서울=연합뉴스) 조복래 기자 cb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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