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면서도, 노동자 정당을 표방한 진보정당이 10만 당원도 확보 못한 채 ‘소수정당’으로 남아 있는 나라. 노조 조직률이 10%대에 머무는 나라. 노조 만들면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라.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사회 붕괴를 막기 위한 안전판으로서 실업과 복지정책이나, 노동 통제와 관리 개념은 넘쳐나지만, 노동자의 삶의 질 개선과 권리보장 측면에서의 ‘노동권’은 교과서에도 안 나오는 나라. 우리 사회에서 노동권 확대는 여전히 ‘찬밥’이다.
한나라 "노동선진화" 착수 예정
그렇다면 ‘유리지갑’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1년에 80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아쓰는 연구소들은 ‘노동자’와 노동권 확보를 위해 연구 좀 하고 있을까.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수정당 정책연구소들이 ‘노동’문제를 얼마나 다루는지 알아보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넌센스’였다.
먼저 찾아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지난 10년 동안 한나라당 정책의 이론적 뒷받침을 해 온 대표적인 정당 연구소로 꼽힌다. 하지만 그 곳에서 ‘노동영역’은 여전히 경제정책의 부속물 취급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올해 25개 과제를 선정하고 그 가운데 ‘노동 선진화 방안’을 한 가지 과제로 포함시켰다. 경제 분야에서 맡는다. 하지만 아직 연구에 착수하지 않아 구체적 내용을 살펴볼 수 없다. 다만 정진섭 본부장은 “노동분야는 연구분야에서 경제산업적 측면과 사회복지적 측면이 혼재돼 있어 넓게 접근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며 “노사평화와 협력 등 노동선진화 방안에 대한 다양한 사례 조사 등을 통해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부터 끈끈히 내려온 성장과 개발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기업과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자와 노동을 관리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생산력 향상을 위해 노동력을 어떻게 공급하고 관리해야 하는지,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인력이 불만세력으로 커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복지정책을 펴야 하는지 같은 것이다.
열린우리당 "노사상생" 강조
열린우리당 ‘열린정책연구원’은 여의도연구소에 비해 노동 관련 과제가 구체적이었지만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연구원은 현재 중장기 기본과제로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방안 연구’를 진행 중이며 단기과제로 ‘여성 고용촉진과 일자리 창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노사간 윈-윈 협약을 위한 방안’과 ‘노동인구 생산성 향상 위한 정보화 인적자원 구축방안’, ‘중소기업과 청년실업 해소 연계 방안 연구’ 등의 계획 과제들이다. 역시 노동자의 삶 향상과 노동권 보장 확대 방안 등은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노동자는 ‘인간’이라기 보다는 산업을 유지하는 ‘인적자원’이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노사가 ‘상생’하며 ‘윈윈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정도의 수준이다.
교육사회복지분야를 총괄하는 박병영 수석연구원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노동문제를 경제문제의 하부시스템으로 인식하지 않는 점이 한나라당과 다르다”며 “참여정부의 등장 이후 노사가 대응한 위치에 이르는 등 제자리를 찾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도, 진보정당은 다르다
이에 비해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는 노동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였다.
연구소는 현재 노동관련 2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하나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함께 추진하는 ‘비정규직 형성경로와 원인’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실업자 및 불안정 고용층의 복지대책’이다. 또 연구소 안에 ‘노동연구회’를 구성해 꾸준히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올해 임단협 시기에 맞춰 ‘한국사회 교섭구조 연구’ 등을 내놓을 계획이다.
진보정치연구소는 다른 연구소들과 달리 산업을 위한 ‘관리 측면’에서의 노동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시각에서 고용과 빈곤, 양극화의 문제와 대안을 찾는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장석준 연구위원은 “뿌리가 노동에서부터 출발한 만큼 노동의 시각에서 경제, 정치, 대외관계 등으로 외연을 넓혀나가는 것이 과제”라며 “어떻게 하면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고 신장시킬 것인가가 주 관심사”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낸 세금으로 1년에 30억원씩 받아가는 보수정당 연구소들이 관심도 두지 않는 일을, 6억원의 예산만으로 진보정치연구소가 모두 감당하기에는 한 없이 벅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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