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가 유난히 무거워보였다. 이해삼 본부장(43)이 지난 2월 19일 열린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장’으로 인준된 지 한달여. 민주노동당 안팎에서야 진작부터 최대의 의제였던 것은 물론, 대통령조차 시정연설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비정규직’ 문제 ‘선봉장’의 어깨가 무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십수년 간 제화노조 등에서 꾸준히 중소영세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지역운동을 벌여왔지만, 진보진영 내에선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까닭에 그에게 쏟아지는 주위의 시선은 ‘기대와 우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잘해봐야 본전”일 게 뻔한, 비정규운동의 난맥상을 풀어가야 할 책임자로서 이해삼 본부장은 세 명의 운동본부 상근자들과 함께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해삼 본부장은 14일 <레이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시종 긴장된 표정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진보진영이 신념의 과잉에 의한 원론적 주장만을 되풀이해선 비정규 운동의 해답이 없다”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활에 천착한 해법을 찾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평균 이상의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노동운동의 위기상황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비적대적 모순’을 풀려면 강력한 어필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지, 자본의 분할지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일은 아니다”라고 완강히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중소영세노동운동에 주력해왔기에 누구보다 더 비정규 노동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다”며 “민주노총의 대기업노조들 역시 이런 진정성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지만 “민주노총이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대목에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 어떻게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가 설치되게 됐나.
“비정규 운동을 강화하는 당원모임 등에서 6백여 명이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꾸준히 비정규관련 상설기구 설치를 요구했고, 지난 2월 중앙위에서 이를 인준했다.”

- 당원들 요구보다 한발 늦은 셈인데.
“그렇다.”

- 본부장직을 맡게 된 건 본인의 희망이었나, 주위의 권유였나.
“권유가 거의 90%였다. 아시다시피 당내 정파에 상관없이 내게 권유를 많이 해왔다. 나는 그동안 중소기업 노동자 문제에 주력해왔다. 아는 만큼 실천한다고 하지 않나. 좀더 다양한 부분의 일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내 능력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하루 이틀 정도 고민하다가 수락하기로 했다.”

- 이제 본부장으로 인준된 지 한달여 정도 됐다. 그동안 지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당 외곽에서 주로 활동해왔는데 중앙당에서 느낀 점은 어떤 것들인가. 
“한달 동안 많은 노조와 당내 관련 단체들을 만났다. 당 내에서 느낀 점은 원내든 원외든 많은 자원들이 있음에도, 전당적 공유가 부족하다는 부분이다. 당의 정책이 당원들의 일상적 정치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유기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10명의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한 내용조차 제대로 가공돼서 지역위원회에 내려오지 않고 있다.”

- 실제로 중앙당에 들어와서 보니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은데.
“(비정규 운동의 토대가)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흩어져 있는 여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아우르지 못했다. 그들의 가족과 생활, 이런 부분들에서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 직접적으로 말씀드리면, 사실 민주노동당의 정체성과 달리 비정규 운동이 지지부진하다는 평가가 많다. 
“내 생각대로 표현하면. 민주노동당의 지지층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가난하고 의식있는 노동자들이다. 이건 사실 민주노총의 한계이고, 민주노동당의 한계이다. 앞으로 당이 집권을 향해 나아갈 때 어디에서 지지율을 높여야 하느냐. 당연히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린 힘이 약하다. 10명의 국회의원으론 상임위에 한 사람 정도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 아닌가. 결국 당의 정책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연결하는 게 비정규운동본부의 중요한 과제다.”

- 당의 비정규 문제 토대가 취약하다고 했는데, 운동본부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어떤 점인가.
“사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말은 강령적 선언에 가깝다. 비정규 노동자들과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함께 가야 하는데, 여전히 ‘신념의 과잉’에 의한 원론적 수준의 주장만 되풀이된다는 점이 있다. 신념은 자기 마음 속에 깊게 자리잡고 있으면 되고, 그 사람들의 삶에 천착하는 게 중요한데 자꾸 ‘여기로 빨리 안 올래’ 하면서 그들을 대상화시키는 건 옳지 않다.”

- 원론적 수준의 주장이란 뭔가?
“비정규직 정규직화란 사실 높은 수준의 슬로건이다. 그런데 이런 높은 수준 말고도 여러 가지 생활상의 요구들도 존재하게 마련인데, 아무래도 중요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사무실에 찾아오는 보험설계사 아주머니들에게 회사로부터 해촉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거나, 여름이 되면 빌딩지하에서 일하는 보일러 기사분들을 만나서 그들의 고충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급식운동을 펼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에게 아이들 급식 이야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직장이나 생계의 이야길 풀어내도록 하는 일도 한 방법이다. 동네마다 있는 이마트도 중요한 비정규 운동의 장소다.”

- 최근에 평균임금 이상 받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고, 인상분이 있다면 이를 비정규직 기금으로 만들자는 주장을 해, 상당한 반발을 샀다. 뭔가 곡해된 점이 있는 건가.
“현재 벌어지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분열양상은 ‘비적대적 모순’이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 사실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에 대해 가진 마음은 불신이라기보다 서운함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동결을 이야기한 건 선언적 표현에 가깝다. (기업의 이윤 중 노동에 배분된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 분배율은 63%에서 59%로 점점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 정규직 역시 장시간 노동으로 고임금을 보상받는 것 아닌가. 더욱이 기아차 채용비리와 민노총 대의원대회 사태로 인해 국민적 신뢰가 추락해 있다. 이런 가운데 4월 투쟁을 앞두고 민노총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고, 투쟁의 진정성을 이해시키려면 임금인상 부분에서 되도록이면 강한 ‘어필’이 있지 않고선 투쟁의 진정성이 살아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이지. 사람들의 반응처럼 자본의 분할지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건 아니다.” 

- 걱정되는 건 그런 진정성이 표출되기 위해선 대기업 노조 등과 꾸준히 만나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건데, 과연 어떤 복안이 있나.
“80년대에 단병호 위원장이 동아건설 창동위원장이던 시절에 거기에 지지·지원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난 서노협 대의원이었다. 그 이후 전노협이나 민주노총 대의원은 한번도 안 해봤다. 그야말로 평조합원으로만 활동했다. 큰 사업장이나, 상급단체에서 일해본 적이 없다는 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서도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이 비정규 운동본부를 이끄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보고 꾸준히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작정이다.”

- 공교롭게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하루 전이다. 사회적 교섭 문제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어려운 부분이다. 개인적 소견은 있는데, 밝히기 힘들다. 중요한 건 대중조직에서 어떤 안건이든 70-80% 정도는 흔쾌히 동의하는 정도가 돼야 사업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시점에선 어려움이 많겠지만, 대의원대회에서 더 충분하게 논의해서 진정한 다수결에 의해서 힘있게 가면 된다고 본다.”

-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교섭 부분에선 어떤 판단을 해야 하지 않겠나. 
“지금 시점에선 말하기 곤란하다. 교섭과 투쟁은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을 교섭만능주의로 판단하는 것도 잘못이고, 교섭 없이 투쟁만 강조하는 것도 공허하다. 치열하게 토론해서 70-80% 이상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게 필요한 것 아닌가.” 


- 그럼 그런 맥락에서 민주노총에 하고 싶은 말은 없는가.
“나는 민노총이 1천 4백만 노동자의 내셔널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과 적용률은 다르다. 조직된 노동자 이외의 노동자들, 3백인 이하 사업장 노동자들에겐 민주노총이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거다. 민주노총이 이들을 위해 정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비정규 사업기금으로 50억 모은다는데, 이 돈이 진작부터 활동해온 비정규운동의 활동가들을 위해 쓰여졌으면 좋겠다.”

- 다시 물어야 할 것 같다. 그런 민주노총, 대기업노조 등과 함께 비정규직 운동을 펼쳐가기 위한 복안이 있어야 할 텐데. 
“(잠시 한숨을 짓다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은 민노총 등 대기업 출신 활동가들은 올바르고 헌신적인 이들이 다수라고 본다. 예전과 달리 비정규직 문제가 최대 화두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민주노총이 비정규 노동자를 품는 조직이 되려면, 사업기금 50억 모으는 것부터 앞장서야 한다.”

- 좀더 자세히 말해달라.
“나는 사실 위기감을 느낀다. 민주노총은 9년, 한국노총은 5년 안에 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이루겠다고 하는데, 인간이 노동자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존심이다. 그 자존심이 상했을 때 자살하는 노동자들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과격한 언사로 주장하기보다 비정규노동자를 존중하는 체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노조 운동도 10년 안에 큰 위기가 올 수 있다. 비정규직 투쟁의 양상을 보라. 원래 노조가 있던 게 아니라 투쟁하다가 노조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얼마나 절박한가. 지지와 연대가 없인 승리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규직 노동조합 역시 앞으로 더 적은 숫자의 조합원들과 활동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노동자가 무장해제되는 상태로 가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이런 점을 4월 입법과정에서 투쟁의 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대기업 노동형제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 향후 운동본부가 펼쳐나갈 사업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
“상시업무의 정규직화, 파견법 철폐, 동일가치노동의 동일임금 지급 등 3대 원칙을 중심으로 각 지역위원회까지 할 수 있는 사업을 구체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에 총주력하겠다. 법 위반 판결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 문제를 쟁점화시켜야 한다. 각 지역위원회들의 동시다발 1인 시위를 통해 강력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또 LG칼텍스 노조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LG칼텍스 불매운동을 전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4월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의 비정규권리법안이 관철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다.”

- 4월의 국회 법안처리 문제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상임위부터 적극적으로 반대해나갈 것이다. 4월 1일 총파업은 통과되든 안되든 뜻을 모아서 준비해나가고, 강행처리시 법안통과 저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나갈 것이다.” 

- 만일 국회에서 강행처리될 경우, 그 이후를 고민해봤나.
“별로 고민해보지 못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꼭 비정규 운동뿐만이 아니고, 전체 노동 · 민중진영의 깊은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힘든 직책을 맡았다. 
“그렇다(웃음).”

- 외람된 말이지만 비정규운동본부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사실 잘해도 욕 먹기 쉬운 직책인데. 
“맞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 어려운 일이니까, 할 만 하지 않겠느냐고. 비정규운동의 경우 주어진 일에 대응해나가는 사업이 아니라 대단히 창의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맨 처음엔 마음고생이 많았다. 답답했다. 하지만 주변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아주 열악한 상태에서도. 1백일, 2백일씩 싸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 민주노동당원이나 노동계에 하고싶은 말이 있다면.
“초기라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관심있게 지켜봐달라.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건 우리 사회에서 운동하는 분들조차 비정규직에 대해 ‘사회적 약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사업장에선 투쟁할 때 사회적 약자일지 몰라도, 비정규직은 한국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적 다수’다. 이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사회적 다수가 힘을 합해 싸워나가면 지금 노동운동의 위기도 극복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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