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구별이 안된다? 유력 일간지 중앙일보 3월 14일자에 꽤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참여연대, 신중도포럼, 뉴라이트싱크넷을 각기 진보, 중도, 보수라 명명하고 북핵, 행정수도 등 15개 이슈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것이다. 중앙일보는 각 단체의 답변을 비교하고서는 “구체적 대안 놓곤 좌우 구별 안돼”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사진>


중앙일보는 “15개 문항 중 북핵 문제와 호주제 헌법 불일치 판결, 사형제 폐지 법안, 광화문 현판 철거, 새만금 사업 등 6개항에서 세 단체가 대체로 같은 의견을 보였다”고 하면서, “이들 단체의 성향은 보수나 진보로 확연히 나누기 어려울 만큼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은 점이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또 “행정도시법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세 단체 모두가 행정수도를 조성하는 현 방식을 반대해 눈길을 끈다” “환경문제가 걸린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에 대해서는 각 단체의 대답이…대체로 개발 쪽의 손을 들어주며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기사와 함께 올려놓은 세 단체의 각 질문에 대한 답변 비교표를 꼼꼼이 들여다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나올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북핵 문제에 대한 답변을 보자. 참여연대는 다른 두 단체와 함께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명백하게 밝히고는 있지만, “북한의 핵 카드는 미국과 협상을 통해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뉴라이트싱크넷은 “국제공조를 통해 북한책을 폐기해야 한다” “6자회담에 참석을 계속 거부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논의해야 한다”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며 현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네오콘을 연상시킬 정도로 매우 ‘공세적인’ 해결책을 내놓았다. “북한과 미국은 상호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하는 신중도포럼과도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이다. 세 단체는 ‘반핵’이라는 대의에는 모두 뜻을 같이 하고 있지만, 문제의 해결경로와 방안을 둘러싸고서는 ‘실질적인’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행정수도 문제에 대한 각 단체의 답변을 보자. 참여연대는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분산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현재의 이전방안이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뉴라이트싱크넷은 행정수도 이전이 아니라 “교육자치와 지방분권, 재정분권이…더 적절한 조치”이며 “정부여당의 방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의미를 무시하고 무력화하는 탈법행위”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정책에 대한 ‘반대 이유’에서 절대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반대입장은 효과적인 이전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싱크넷은 이전은 탈법이라며 절대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한편 신중도포럼은 “중앙부처는 수도 서울에 남아야 한다. 그러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은 업무성격에 따라 각 지역으로 이전할 필요가 있다”고 함으로써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 역시 다른 두 단체의 입장과 결코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정책에 대한 입장에서는 찬성과 반대 그 자체보다는 찬성과 반대의 ‘이유’, 찬성과 반대의 ‘강도’가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정책구사의 폭과 범위의 ‘정도’가 보다 핵심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 환경문제와 관련된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에 대한 입장을 보자. 참여연대는 정부의 실책을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로 들고 있지만, 뉴라이트싱크넷은 “특정 외골수 이익단체나 원리주의자의 고집에 볼모"가 된 것을 들고 있다. 이만 저만한 차이가 아니다. 그 어디를 보아도 세 단체 모두가 개발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말할 여지를 찾을 수가 없다.

북핵, 행정수도, 고속철도의 천성산 관통 문제 이외에도 세 단체가 대체로 같은 의견을 보였다고 하는 6개 항목 중 호주제와 사형제도 폐지를 빼면 각 단체는 확연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광화문 현판 철거의 경우 참여연대와 신중도포럼은 문화재 복원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하면서 철거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뉴라이트싱크넷은 현존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면서 철거 불가를 표명하고 있고, 현 집권세력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 참여연대는 다른 두 단체와 달리 “발전과 연계시키는 주민들의 정서가 문제”라고까지 지적하고 있지만, 신중도포럼과 뉴라이트싱크넷은 이런 저런 발전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지역의 경제주의적 관점에서의 개발론을 둘러싸고 ‘근본적’으로 입장을 달리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거론한 문제들을 포함, 진보-중도-보수를 구분할 때 꼭 짚어져야 할 문제들, 즉 안보정책, 빈곤정책, 기업정책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보면 세 단체 간의 차이는 더욱더 명확해진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 문제들에 대한 세 단체의 차이에 대해서는 기사 내용에서 아예 빼놓고 있다.

안보정책 분야에서 가장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참여연대는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뉴라이트싱크넷은 “테러반대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신전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해, 북핵문제와 마찬가지로 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안보외교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네오콘류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신중도포럼이 “지속적인 군 현대화를 통해 독자적인 국방능력을 키워야 하며,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안보공동체(다자 안보기구) 결성”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과도 엄청난 간극을 보이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빈곤문제와 관련,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문제에 대해서 신중도포럼과 뉴라이트싱크넷은 아무런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 참여연대만이 이를 제기하고 있을 뿐이다.

진보와 중도, 보수를 가늠하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본에 대한 입장 차이와 관련, 출자총액제한 문제에 대한 각 단체의 답변을 보면 도대체 이런 제목의 기사가 어떻게 나왔을까라는 반문을 다시금 하게 된다. 참여연대는 “출자총액제한이 기업투자의 걸림돌이라는 주장은 근거 없다”고 했지만, 뉴라이트싱크넷은 “위헌적일 뿐 아니라 고비용·저효율의 전형적인 규제”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신중도포럼은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해도 글로벌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방만한 기업집단이 생겨나기 어렵다”며 폐지에는 찬성하면서도 “대기업 오너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사립학교법 개정, 친일청산법안, 스크린 쿼터, 3불정책 등에 대해서도 세 단체는 입장을 달리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타의 문제들까지 보지 않더라도 국가의 주요정책 영역인 안보정책과 기업정책, 빈곤정책 등만을 기준으로 해 진보-중도-보수의 입장들을 살펴보았다면-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지만-기사 제목은 “좌우 구별 역시 명확”이라고 뽑혔어야 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보다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입장 차이를 배제하면서까지, 유사한 입장을 보이는 몇 개 항목만을 골라, 아니 그것도 내용적 측면에서 분명하게 차이가 존재함에도 이를 덮어둔 채, 진보-중도-보수 간에 구분이 안간다고 하는 제목의 기사를 썼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사회과학적 무지 혹은 무능 때문이다. 차이를 ‘차이’로 포착해내는 과학적 사고체계와 인식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다른 하나는 차이에 대한 의도적 간과 혹은 배제일 것이다. 높은 수준의 과학적 사고체계와 인식능력까지 기대할 수는 없어도, 유수한 언론매체인 중앙일보가 한글만 알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이점마저 포착하지 못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그렇다. 기사의 제목은 물론, 기사의 내용 구성 역시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일까? 이 역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진보-중도-보수라고 부를 그 무엇은 없다”는 것이다. 진보도 A, 중도도 A, 보수도 A이면 누구는 진보, 누구는 중도, 누구는 보수라고 부를 이유가 없는 법이다. 이는 각각의 존재의미와 정체성의 박탈을 통해 모두가 결국은 똑같다는 ‘공범’ 혹은 ‘동업자’ 의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결국 “우리는 한 배에 타 있다”라는 (신)보수주의적 메시지의 전달로 귀결된다. 배를 타고 어디로 가야 하며, 타고 갈 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누가 선장이고 선원이 되어야 할지 등에 대한 모든 의사를 소멸시켜버리는 지배담론의 전략적 구사이다.

다른 하나는,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기 진보-중도-보수로 나뉘어 존재하고 세력화되어 있는 이유는 오로지 자파의 정치 혹은 사회적 권력 혹은 영향력을 확보하고 증대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진보-중도-보수를 모두 ‘불순한 무엇’으로 보이게끔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세력을 모으고 무엇인가를 주장하고 관철시키고자 노력하는 행위인 정치는 ‘나쁜 무엇’이 된다.

중앙일보가 그간 시민운동의 정치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란을 제기해온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이는 시민사회의 ‘탈정치화’를 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아직까지도 보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정치를 유지시키고 지속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그 어떤 ‘자발성’과 ‘저항성’도 거세시키고 싶은 것이다. 자신들이 중도와 보수라고 명명한 것의 효용성을 부정하면서라도, 전체 사회의 보수성과 기득권 세력 옹호를 위한 ‘총보수’ 세력임을 자임하고 싶은 것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오래된 명언이 있다. 좌우가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모순의 적대적인 해결이 아니라 조화로운 해결을 통해 함께 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얼마전 한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의 지속적 발전 과정에서 좌우 이념 갈등을 포함한 여러 이해갈등의 지속적인 존재와 발생은 불가피하며, 덮어두고 없는 것처럼 취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미 존재하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 간의 소통’을 통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더 좋은 정책을 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가 되새겨야 할 이야기이다.

끝으로 중앙일보에게 질문을 하나 던지고 글을 마치도록 하자. 과연 진보와 중도, 보수가 각기 무엇이라고 생각되기에 참여연대와 신중도포럼, 그리고 뉴라이트싱크넷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는가? 과연 이들이 진보-중도-보수에 부합되는 이념적·조직적 정체성과 정책적 대안을 갖고 있는지 그것부터 심도 있게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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