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족은 과연 무엇인가?
 
친정엄마에게 안부전화를 했는데 “여보세요”라며 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신다. 내가 가끔 엄마를 위해 하는 마지막 기도가 있다면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엄마가 남은 여생동안 단 몇 년이라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휴식의 삶을 보장받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솔직히 고백하면, 모순되게도 학창시절 내내 '우리 집의 유일한 생계부양자인 아버지가 혹 안 계신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아버지는 내게 꼭 필요했다. 왜냐하면 우리 집의 유일한 ‘돈줄’이었으니까.

가족은 애정공동체이고 삭막한 세상의 피난처라는 이상화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가족을 구성하는 내용은 그 놈의 돈이다. 민법 제4편 ‘친족’과 제5편 ‘상속’으로 구성된 한국사회의 가족법이 상징하는 것처럼 한국사회의 가족을 규정하는 내용의 절반은 상속을 둘러싼 돈 문제인 것이다.

올 3월2일 여성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호주제가, 호주제폐지민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폐지됐다. 마침 여성부는 여성가족부로 개편돼 양성평등한 가족정책을 펼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개념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정의했다. 즉, 가족의 개념을 ‘양성평등하게’(?) 양계로 확장하고 끈적끈적한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는 가족이 될 수 없음을 공고히 선언했다. 더군다나 자녀의 성(?)과 관련해서도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호주제 폐지는 여전히 가족의 권위는 여전히 남성을 통해 나온다고 확인시키고 있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문제가 된 저출산과 높은 이혼율은 가족내 남성위주의 권위체계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일단 1.17명이라는 합계출산율은 임신이 가능한 여성(15세~49세) 1인당 출생아 수를 말한다. 저출산은 비혼여성들의 급증에서 기인하고, 비혼여성 급증과 높은 이혼율은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한다.

2002년 현재 기혼여성들의 공식적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49.4%이다.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의 기혼여성은 남성보다 1년이면 한 달 이상, 12년이면 1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남성노동자에게는 가족이 휴식처일 수 있지만 여성노동자에게는 또 다른 노동의 공간이다. 가족의 바깥나들이가 여성에게는 야외노동, 남편의 성욕해소를 위한 섹스요구는 기혼여성노동자에게 또 하나의 심야노동으로 의미된다.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노동시장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가족 내 여성에게 전가되고 있는 돌봄노동, 일터에서 돌아와 손에 물 안 묻히는 남성들을 보면서 여성들은 끊임없이 갈등하고 번뇌하고 있다. 일상에서 여성들에게 불공정한 결혼생활을 수시로 목격하는 미혼 여성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비혼을 선언하고, 당사자인 기혼여성들은 결혼생활을 끝내는 결정을 감행한다.

이처럼 저출산과 높은 이혼율의 배후에는 요리하고 걸레 들기를 꺼리는 개별 남성노동자들과 그러한 가사노동으로부터 면제된 노동자만을 편애하는 자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말로는 “노동해방”을 외치지만 집에 와서는 손 하나 까딱 안하는 남성이 변하지 않는 한, 돌봄노동의 사회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직장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담론은 여성들에게만 이중노동의 멍에를 계속 짊어지게 하는 성차별적 성격을 띠게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성원만 가족으로 인정되고 그 가족에게 상속, 다양한 복지가 주어지는 폐쇄적인 가족의 틀을 해체시키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가족을 (재)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혈연의 틀을 깬 다양한 가족의 구성원들이 상호간 상속이 가능하고 다양한 복지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가족 안에서 여성들이 담당했던 보살핌 노동을 여성에게서 떼어내어 사회, 국가와 남성들이 공유하도록 하지 않는 한, 앞으로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은 가족이라고 하면 몸서리가 쳐지고 징글징글한 여성들에게 억압적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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