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현대자동차 경비대가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지만, 뭐니뭐니 해도 ‘폭력 경비대’의 원조는 현대중공업 경비대다. 경비조직을 갖고 있는 대부분의 기업이 용역을 쓰는 것과 달리, 현중은 자체 경비대를 운영하며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매우 조직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한다.

현중이 몇 년째 선박수주 물량 세계 1위를 이어가고 있고, 작년엔 경실련 주최 ‘경제정의기업상’과 일본능률협회의 글로벌 경영자상 최고경영자 대상을 수상하는 현실이지만, 경비대를 통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동자 사찰 및 폭행 의혹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레이버투데이>는 현중 경비대를 심층취재한 기사를 3회(①‘첩보전’ 방불케 하는 노동자 사찰·감시 ②경비대 역사와 ‘폭력적’ 운영방식 ③경비대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 걸쳐 게재한다. 현중 경비대의 베일이 하나둘 벗겨질 때마다, 화려한 외양 속에 가려진 한국 대표 기업의 ‘글로벌 경영’의 실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분신자살한 후 두 달을 채워 가던 2004년 4월, 조광한씨가 하청노조 사무실을 나섰다. 2월 23일 하청노조 조합원임을 공개선언한 후 해고당한 조씨가 노조 가입 권유차 동료 소지공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오토바이 두 대가 따라붙었다. 조씨가 탄 차가 멈추면 오토바이도 멈췄고, 커브를 돌면 오토바이도 따라 돌았다. 조씨는 직감적으로 미행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동행 중이던 방송사 기자가 차를 세우고, 당황하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에게 미행 이유를 물었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던 두 사람은 오토바이를 몰고 황급히 도망쳤다.

며칠 뒤 아침, 조씨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데려다 주러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또 누군가가 뒤따라왔다. 일정 거리를 두고 졸졸 따라오는 그 사람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아빠, 저 아저씨 누구예요?”

고민 끝에 조씨가 대답했다.

“응, 아빠 보디가드야.”
     
박일수씨 사망 직후 현중 하청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 탄압 중단 및 비정규직 차별철폐 요구가 거세게 분출하자, 울산 동구 골목골목엔 오토바이 부대가 깔리기 시작했다. 노동자들과 사측 간의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회사는 경비대들을 풀어 요주의 인물들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모든 동선을 뒤쫓았다. 박일수씨 대책위 관련자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움직임을 하나하나 체크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하청노조 사무실 주위엔 사복을 입은 경비대원들이 상주했다. 노조 관계자는 “작년 2월부터 4월까지 사무실 앞뿐 아니라 인근 골목마다 경비들이 지키고 있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나가면 오토바이를 타고 바로 따라붙었다”고 말했다.

“4월 14일에도 그랬다. 열사 투쟁 끝나고, 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노조 위원장을 면회하러 사무실을 나서자 미행이 붙었다. 한참 가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를 세웠다. 따져 묻는 우리의 추궁에 헬멧을 벗은 경비는 ‘뭐 다 알면서 그러냐’며 겸연쩍어 하더라.”

경비대의 감시는 현중 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박일수씨 대책위와 관련 있다는 의심만 들면 여지없이 감시대상에 올랐다. 이영도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책국장은 자신이 미행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뒤쫓는 경비대를 붙잡아 경찰에 넘기려다 한바탕 몸싸움을 벌여야 했다. 

“오토바이가 붙길래, 차를 경찰서 근처로 몰았다. 일부러 급정거해 차를 세우자, 미처 대응하지 못한 경비를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경비 힘이 워낙 좋아 결국 놓치고 말았다. 완강하게 뿌리치는 완력을 내 힘으론 당할 수 없었다.”  

경비대의 감시와 미행은 올해에도 계속됐다. 박일수씨 1주기를 맞아 ‘분위기’가 다시 고양될 것을 우려한 회사는, 1주기가 되던 2월 14일을 전후해 약 보름 가량 하청노조 사무실 근처에 진을 쳤고, 그 과정에서 노조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첩보전’ 방불케 하는 노동자 사찰

‘수위’ 정도의 역할을 하는 일반 기업 경비들과 현중 경비를 구별짓는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경찰도 못 따르는’ 노동자 사찰 및 감시 능력의 ‘탁월함’이다. 현중을 매개로 노동운동에 깊숙이 관여한 ‘죄’로 감시와 미행의 위협에 시달린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현중 경비대의 조직적 노동자 감시는 비단 박일수씨 사건 전후에만 불거진 게 아니다. 20년 이상 현중에 몸담아 온 한 노동자는 “경비대의 감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며 그 ‘역사성’을 되짚었다. 전직 노조 간부로 “노조의 힘이 특히 강했던 90년대 초엔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고 말하는 그 역시 “움직일 때마다 경비들이 따라 붙는 상시 감시 대상”이었다.       

현중 경비의 노동자 사찰은 그의 말처럼 ‘전통’을 자랑한다. 노조가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며 회사측과 협력관계로 돌아선 95년 이전만 해도, 현중 노조는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 가운데 하나였다. 때문에 노조가 창설된 87년부터 회사는 매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노조 핵심 인물들을 감시해 왔다.

경비대의 활동이 처음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91년 10월이다. 당시 울산지원에서 열린 전 현대그룹노조총연합 간부의 집시법 위반에 대한 3차 공판에 검찰쪽 증인으로 나온 경비대원 3명의 진술을 통해서다. 당시 이들은 “집회 때면 밤 10시라도 시위대 속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얼굴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을 만큼 지근거리에서 감시 대상자의 활동을 면밀하게 파악해 왔다”고 밝혀, 충격을 줬다.


현중 경비대는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 베일에 싸여 있는 게 사실이다. 현재 울산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 현중 경비대의 ‘활약’은 상식으로 통하지만, 문제가 될 때마다 회사는 항상 ‘사고를 친’ 경비와의 관련성을 부인해 왔다. 노동자들 또한 오랫동안 감시당하면서 체득해 온 ‘경험적 지식’ 외에, 경비대의 세세한 활동 시스템에 대해서는 ‘수차례 부대끼며 안면을 튼’ 경비대원들의 입을 통해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버투데이>는 현중 경비대의 노동자 감시·사찰 ‘노하우’를 매우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한때 직접 ‘추적조’로 뛰며 회사가 ‘찍어 준’ 요주의 인물들을 밀착 감시했던 한 퇴직 경비대원을 만난 것이다. 그의 증언은 가히 충격적이었고, 그가 털어 놓은 추적조 운영 시스템은 ‘첩보전’을 방불케 했다. 

“밥을 벌기 위해 약자를 탄압할 수밖에 없다는 데 회의를 느껴” 사표를 썼다는 김주홍씨(가명)는 자신이 경비대 추적조로 활동했다고 밝히고, 스스로 겪었던 경비대의 실체를 낱낱이 공개했다. 김씨의 증언을 통해 <레이버투데이>는 과거 경비대를 둘러싸고 떠돌던 일부 소문들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사에서는 김씨의 증언 중 노동자 감시·사찰과 관련한 부분만 우선적으로 소개한다. 

“경비대에 비하면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추적조 운영과 관련, 김씨는 회사가 ‘불순분자’를 찍어 주면 현중 경비대는 전담 미행을 붙여 24시간 감시체제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추적조는 오토바이를 잘 다루고 똘똘한 사람 위주로 선발했는데, 감시 대상을 ‘밀착 마크’하는 추적조 특성상 조별로 움직이는 추적조 인원은 필요에 따라 늘고 줄었다.

경비대에 대한 대우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김씨가 일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경비대 조원의 월급은 부장 월급을 상회했다. ‘착실한’ 경비일 경우, 몇 년만 고생하면 집 한 채 살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24시간 감시하고 지키느라 노숙도 불사해야 하는 일의 특성을 감안해 오토바이 연료비, 식대 명목으로 추적조에겐 별도의 수당이 지급되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에 비하면 요즘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란 말로 추적조 사찰력이 ‘최고 수준’임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을 포함한 경비대원들을 “길 잘 들인 현중의 개”라고 표현했다. 회사의 명령에 따라 “온갖 더러운 일들”을 해야만 했던 그의 과거에 대한 착잡한 소회였다. 



다음은 김주홍씨와의 인터뷰 중 일부다.

-추적조는 말 그대로 추적만 했나?
“일반적으로 그렇다.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니까, 추적일만 해도 벅찼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추적조가 교체될 때도 있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바뀌고, 놓쳐서는 안 될 사람을 놓치거나 하는 큰 실수를 해도 바뀌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엔 거의 추적일만 계속했다. 뽑을 때도 얼굴 많이 안 팔린 사람들로 뽑았다. 그래야 추적을 해도 잘 모르니까. 나머지 경비들은 각기 자기 일상 업무가 있어서, 평소엔 그 일하다가 일 터지면 동원됐다.”    

-추적조 운영체계는?
“한 조가 된 조원들은 해당 감시 대상에서 한 시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거다. 때로는 대 놓고 감시자 옆에 같이 걸어가기도 했다. 어쩌다 알아보면 능청스럽게 ‘같이 갑시다’ 하기도 하고. 조원들끼리는 임무 교대할 때까지 지금 위치가 어딘지 수시로 연락했다. 임무 교대도 다른 경비들과 달리 회사에서 하는 게 아니라, 추적 중인 현 위치에서 했다. 또 무전기나 전화를 사용해 회사 정문으로 평균 한 시간 단위로 상황을 보고했다. 그게 기본이다. 교대한 후에는 회사로 들어와서 그날 있었던 내용 모두를 서면으로 기록해 제출했다.” 

-각 조가 전담 마크 하는 사람들이 조별로 정해져 있었나?
“그렇다. 내가 일할 당시 감시 대상은 회사에서 정해 줬다. 총무부 윗사람들(현중 경비대는 총무부 소속)이 요주의 인물이라고 찍어 줬다. 그 사람들을 춘하추동 상관없이 1년 365일 풀로 쫓아다녔다. 나 있을 땐 20여명 정도가 추려진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때론 위에서 ‘저 사람 좀 조져라’며 ‘특별주문’ 하기도 했고, 그럼 밖에 나가서 대 놓고 조지는 거다.” 

-365일 밀착 추적은 어떤 시스템으로 이뤄졌나?
“모씨가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 일상생활을 일일이 다 체크하는 거다. 회사 들어갔다 나온 시간 ‘체크’, 현재 울산 어디에 있다 ‘체크’, 건물 안에 들어갈 경우 몇 시에 들어갔다가 몇 시에 나왔고 누굴 만났다 ‘체크’, 선전물 만들러 어떤 인쇄소에 들어갔고 안에서 뭘 하고 있다 ‘체크’….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든 생활을 파악했다고 보면 된다.”

-본인은 누구를 담당했나?
“정○○, 박○○…. 이름들이 특이해서 아직 기억하고 있다.”

-놓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오토바이 타고 추적하다가 오토바이 기름이 떨어지면 오토바이 버리고 택시 타고 가는 거다. 그러다 어쩔 수 없이 놓치면, ‘행불처리’ 하고 보고했다. 하지만 놓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시스템이 있었다. 이를 테면, 감시 대상인 노동자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이 사람이 어느 문으로 나오는지 항상 정문에 보고하게 돼 있었다. 현중이 문이 일곱 갠데, 만약 정문으로 들어갔다가 ‘중전기문’으로 나온다고 하면, 중전기문에서는 이 사람이 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말을 걸면서 잠깐 잡아 놓는다. 담당자가 그쪽으로 따라 붙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는 거다.”

-매우 조직적인 운영이다.
“‘조직적인 정도가 아니다. 거의 첩보전 수준이었다. 첩보영화를 생각하면 된다. 요즘 경찰들이 하는 것보다 더 나았다. 우리가 보기에 요즘 경찰은 경찰도 아니다.”
    

-감시 대상이 집으로 완전히 퇴근하면 어떻게 하나?
“집 앞에 오토바이 세워 놓고 외투 입고 날밤 까는 거다.”
 
현중 “모르는 일이다”

-추적조가 하는 일은 밀착감시 외에 또 뭐가 있었나?
“정보수집도 했다. 어디 모여서 집회를 하면, 근처 건물에 올라가서 숨어서 망원렌즈로 쫙 당겨서 사진을 찍었다. 마이크로 집회를 하니까, 녹음하면서 속기도 했다. 음악을 크게 틀어 놔서 잘 못 알아듣겠다 싶으면, 그 부분엔 무슨 음악이 나왔다는 것까지 다 적었다.”

                     
굳이 추적조가 아니더라도 경비들은 현중을 상대로 한 모든 집회현장을 촬영하고, 집회 도구들을 빼앗기도 한다. 회사 안이나 인근에서 작은 선전전이나 피켓시위를 하려고 하면, 경비대원들은 승합차를 타고 다니며 기동력 있게 기물탈취와 사진촬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광한씨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이를 두고 회사가 징계나 처벌을 위한 증거자료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즘도 아침마다 선전지 돌리면 그걸 사진으로 찍어서 일일 보고를 한다. 최근 정규직 노동자 중에 회사가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유 중에 하나로 ‘하청노조 홍보물 배포 몇 회’ 이런 게 적혀 있었다. 경비들 사진촬영의 위력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추적이나 정보수집이나 모두 불법 아닌가.
“우리가 하는 일 중 불법 아닌 일 없었다. 그래도 이런 일로 처벌받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다. 회사는 자기가 추적조 가동을 지시했으면서, 문제가 생기면 나 몰라라 하며 상관없는 일이라고 발뺌했다.”

-사내 노동자 감시는 어떻게 이뤄졌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보직 변경된 경비들을 이용되기도 했다. 경비 중에서 괜찮은 사람이다 싶으면 회사에서 다른 부서로 뽑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뽑아간 경비들을 회사는 각 포인트 마다 심어 놓고, 동료 노동자 동향을 파악해 보고토록 했다. 외형상 더 이상 경비가 아니라 옮겨간 부서 인원이었지만, ‘회오리바람’이 한 차례 돌 분위기다 싶으면 전화로 관련 정보를 위쪽에 수시 보고하도록 했다.” 

-보직 변경한 마당에 그런 요구까지 따라야 하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만큼 개가 돼 줬으면 됐지’ 하며 보직변경 후엔 완강하게 선을 긋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 문제의식 없는 사람들은 평생 윗사람들에게 딸랑거리며 사는 거다.”

-왜 그만 뒀나?
“약자한테 미안했다. 위에서 지시받고 어쩔 수 없이 하긴 했지만, 가슴 아팠다. 후회도 많이 된다. 나를 비롯한 경비대들은 회사의 온갖 더러운 일 처리하는 ‘오물처리반’이자, 잘 훈련된 ‘개’였다.”

최근 현중의 추적조 가동은 예전만큼 활발하지는 않다. 직영노조 성격상 노조가 회사와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청노조가 사측과 강하게 대립하는 요즘엔, 경비대의 사찰과 감시도 하청노조에 집중되고 있다.      

김씨는 박일수씨 분신사건과 관련해 하청노조와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경비대 미행이 집중적으로 붙었던 것처럼, “큰 건만 생기면 언제라도 추적조가 가동된다고 보면 된다”고 되풀이해 강조했다. 

현중측은 그러나 이러한 증언들과 관련 “금시초문”이라며 추적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경비대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에 대한 해명을 듣고자 총무부 산업보안팀 소속의 최 아무개 경비대장(직급 : 차장)과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인터뷰 자체를 매우 불편해 하던 최 차장은 “전화로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란 말만 되풀이 하다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내하청노조를 포함해 박일수씨 대책위 관계자들을 경비대가 감시·미행했다는 증언들이 많이 들린다.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렇지 않다.”

-그런 일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럼 미행 관련 증언들은 사실이 아닌가?
“아니…, 그건 전화로 말할 사안이 아니다.”
 
-답변 부탁한다.
“시간도 오래 지나고 해서….”

-올초 박일수씨 1주기 때도 그런 일 있었지 않나. 사진 증거가 다 있다.
“무슨 올초 말인가. 금시초문이다.”

-어땠든 경비대와는 무관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다.”
 
-한 가지 더 묻겠다….
“미안하다. 더 이상 말 못 하겠다.” (전화 끊음)

최 차장의 부인과 달리, 과거 추적조 운영에서 최근 박일수씨 대책위 관련자 미행까지 경비대의 노동자 사찰과 감시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현중 사측의 지시에 따라 저질러졌음이 증명되고 있다. 이는 울산 지역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전혀 새로울 것도, 더 이상 충격적일 것도 없는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그 상식’을 유독 당사자인 현중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세계적 기업이라는 ‘양지’ 이면에 폭력적 노무관리란 ‘음지’를 감춘 현중의 ‘글로벌적 위상’이 앞으로 얼마나 튼실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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