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버투데이> 3월 10일자에 실린 노동부 유한봉 비정규대책과 사무관의 기고문 ‘파견법 개정만이 유일한 해결책’에 대해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조 하정기 교육선전팀장이 ‘반론’을 보내왔다.<편집자 주>

노동부 유한봉 사무관이 10일 <레이버투데이>에 기고한 반박문을 보고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오늘(11일)로서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파업 농성 53일차를 맞이했다. 노동부가 판정한 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한 현대차가 우리를 직접고용할 것을 요구하는 파업이었다.
 
그 와중에 89명 집단해고, 116명 고소·고발,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집회금지가처분, 퇴거단행·출입금지가처분, 위원장 납치체포, 경비대 폭력 등 극악한 노조탄압이 이어졌다. 보다 못한 현대차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16일 동안의 단식농성까지 하는 등 사활을 건 저항을 하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노동부가 ‘반론문’을 통해 내놓은 입장을 확인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고용의제를 강제할 수단은 없다. 결국 근로자는 법원이나 노동위원회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을 듣고 있자니, 대체 노동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불법파견 판정도, 사내하도급 점검도 노동부가 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다. 어차피 문제는 노동위원회나 법원에 가야 해결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노동부 공무원들의 말 바꾸기 솜씨가 거의 ‘사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반론을 제기한 유한봉 사무관은 지난해 6월4일 금속연맹 주최 공청회에서 “불법파견 혐의가 인정되면 직접채용으로 시정지시를 할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고 있어, 이후 점검을 확대해 불법파견이 적발되면 반드시 직접고용 하도록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레이버투데이> 2004년 6월 7일자 기사 참조). 그 당사자가 이제 와서 ‘고용의제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부는 어머니 농성자들로부터 좀 배워라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본관 항의집회에서 경비들의 폭력에 아들 뻘인 조합원의 머리가 피로 범벅이 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다. 농성장에 있는 조합원의 부모님이 찾아와 ‘부자간의 연을 끊자’라고 말하는 것을 그냥 지켜만 봐야만 했다. 그리고 이 투쟁을 알리려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조합원도 있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성 농성자들의 단식돌입 성명서 중 일부)
 
불법을 자행한 쪽은 회사인데 불법을 고치라고 투쟁하는 이들이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아야 하는 기막힌 현실, 그럼에도 젊은 조합원들로부터 보호받으며 엄청난 폭력탄압을 지켜만 봐야했던 여성 농성자들은, ‘어머니로서 마지막 선택’이라며 무려 16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그런데 노동부의 태도는 어떠한가.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고용의제 조항을 고용의무 조항으로 바꾸고, 3천만원 과태료를 물리도록 법을 개정하자(반대로 말하면 법 개정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양심이 있다면 이런 말을 ‘버젓이’ 공식입장이라며 내놓을 수 있는 것일까. 노동자가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서둘러 ‘불법파업’이라 규정한 후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을 진두지휘 해온 막강한 노동부가 아닌가. 그런데 유독 현대자동차의 ‘1만명 불법파견’이라는 파렴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대체 누가 이걸 진실이라 믿어줄 수 있겠는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을 통해 자신들이 정규직이 일해야 할 자리에서 얼마나 억울하게, 온갖 차별을 받고 일해 왔는지 알게 됐다. 그래서 현대차의 불법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며 싸웠고 그러다 해고되고, 구속되고, 피터지게 얻어맞고 분신자살까지 감행하고, 단식까지 했다.
 
사측의 불법파견과 엄청난 폭력탄압에 대해 여성 노동자들도 “우리도 무언가 해야 한다”며 단식농성을 결심했다. 이런 처절한 모습을 보고도, 판정을 ‘손수’ 내린 노동부가 법리적 해석만을 핑계 대며 책임을 못 느끼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회피하려 하는 자는 ‘구실’만을 찾는다
 
노동부의 입장에는 온통 “할 수 없다” “어렵다” “못한다”는 구실과 핑계로 가득 차 있다. 하려고만 한다면 왜 고용의제를 강제할 수단이 없는가?
 
노동부는 불법파견과 폭력 혐의로 정몽구 회장, 김동진 부회장, 전천수 사장을 줄줄이 구속수사 하라는 구속 품신을 검찰에 올려 보기라도 한 적 있는가? 그도 아니면 현대차가 비정규직노조를 탄압하고 있다는 노동계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인데, 특별근로감독이라도 실시해서 위법사항을 조사하라고 해본 적이 있는가?
 
하다못해 현대차와 우리 비정규직노조가 만날 수 있는 교섭 자리라도 주선해 보았는가? 그것도 아니면 파업 50일을 넘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봅시다”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 보았는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그래 놓고도 ‘노동부도 답답하다, 해봤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지난 1월18일부터 우리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바로 다음날인 19일 “불법파업이니 당장 업무에 복귀하라”는 공문을 노동부측이 우리 노조에 보내왔다는 사실이다. 회사의 엄청난 규모의 ‘불법’은 6개월 동안이나 방치해놓고, 그 불법을 바로잡으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24시간도 안돼 ‘불법으로 매도’하며 엄벌에 처하겠다고 협박하고.
 
노동부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는 “파견법 개정을 통한 3천만원 과태료 신설”도 또 다른 사기행각이나 다름없다. 한해 1조7천억의 순이익을 남기는 현대자동차(주) 총수가 고작 3천만원, 아니 3억원, 나아가 30억원의 과태료라 한들 무서워 할 리가 없다. 바꿔 생각하면, 3천만원 과태료만 물면 불법파견을 무한정 확대할 수 있도록 ‘불법의 길’을 활짝 열어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현대차의 엄청난 불법에 맞선 정당한 저항권을 행사하며 파업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저임금, 불법파견으로 고용해 착취해 온 현대차의 범죄 행위를 바로잡기 위한 수단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자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이 정당한 투쟁에 전체 노동자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정부는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직무유기와 무책임을 반드시 묻게 될 것이다.
 
“여러분의 이번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몇 사람만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 (중략)  여러분이 이 싸움에서 돈 한 푼 못 받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배신자가 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의만 있다면, 10명을 잡아넣으면 1백 명을 잡아 가라 하고 1백 명을 잡아가면 1천명이 가고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노동자가 모두 달라질 것이다.” (1988년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서 당시 13대 국회의원 노무현 발언)
 
현대차비정규직노조는 노무현 대통령이 초선 국회의원 시절에 얘기했던 가르침(?)대로, “10명을 잡아넣으면 1백 명을 잡아가라고 싸우고, 1백 명을 잡아넣으면 1천명을 잡아가라고 싸울”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받기 위해, 함께 투쟁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은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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