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2일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1주년이 되는 날이다. 뒤이은 총선과 맞물려 한국 정치지형을 뒤흔들었던 일대 ‘대사건’이 이틀 뒤면 1년을 온전히 채우게 됨에 따라, 정치권에서도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나름의 평가를 내놓고 있다.

탄핵 그 자체에 대해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불행했던 일”라 소회하며 “국민의 뜻을 최우선으로 따르는 정치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면서도, 입장에 따라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탄핵의 최대 수혜자였던 열린우리당은 “성공적 개혁을 통해 국민 선택에 보답하겠다”며 과반의석을 만들어 준 국민들에게 몸을 낮췄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탄핵 정당론’을 피력했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정부여당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고, 상생정치의 약속을 뒤집음으로써 개혁을 실종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시각은 대통령 탄핵 사태가 불러 온 정치적 지각변동과 무관치 않다. 탄핵을 기점으로 휘몰아친 ‘태풍’은 당시 제3당에 불과했던 열린우리당을 일약 원내 제1당으로 탈바꿈시켰고, 폭발한 정치개혁의 국민적 열망은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을 국회 의사당으로 보냈다.  

반면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은 부침을 거듭한 끝에 1당 자리를 내 줬고, 민주당은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꼬마정당으로 몰락했으며, 박관용 전 국회의장,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와 홍사덕 전 원내총무,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 및 유용태 전 원내대표 등 탄핵주역들은 정치권 밖으로 내몰렸다. 



이렇게 뒤바뀐 정치구도 하에서 새로이 개원한 17대 국회는 열린우리당이 주도한 ‘4대 입법’을 두고 극심한 진통을 겪었으나, 탄핵 1년을 맞는 지금 개혁은 지지부진한 반면 ‘경제 살리기’를 화두로 ‘타협’과 ‘실용’이란 전략 기조가 정국을 뒤덮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개혁실종’이란 비판에 직면해 있는 여당과 뚜렷한 대안 없이 강경 대여투쟁에만 전력하다 행정도시특별법 국회 통과를 빌미로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 등, 지난 1년 동안 거대 양당이 작성해 온 ‘대차대조표’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아 보인다. 
     
탄핵 1주년을 맞는 청와대 측은 현재 말을 아끼고 있다. 노 대통령 본인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아,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정치권의 ‘상처’임에 분명한 ‘기념일’을 가급적 조용하게 지나가려는 모습이다. 

청와대와 달리 열린우리당은 훨씬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임종석 대변인은 10일 “다시 돌아봐도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의회쿠데타였다”는 말로 작년 3월을 회고하고, “깨끗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은 노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을 때 이를 막아줬던 것은 국민이었다”며 국민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임 대변인은 또한 “이제 여당은 개혁을 해나가되 국민을 안심시키는 성공적인 개혁을 일궈내야 한다”며 “안정된 집권당의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의 선택에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또한 기본적으로는 탄핵이란 아픈 기억을 통해 많이 배웠다는 입장이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라면서 “불행했던 일임에는 틀림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희태 국회부의장은 “당시 국민 다수가 노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보면서도 탄핵에는 반대했지만 당이 이 같은 국민의 뜻을 따르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후회스럽다”고 밝혔고, 탄핵에 반대했던 원희룡 의원도 “국민 대다수의 정서를 파악하지 못해 역풍을 맞았다”며 “정치권은 민심이라는 큰 바다에서 떠다니는 일엽편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당으로서도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 중 일부는 여전히 탄핵이 옳았다고 주장해 대조를 이뤘다. 전여옥 대변인은 “법을 위반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국민들이 호응하지 않은 이유는 탄핵주도 세력을 국민들이 불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탄핵이 정당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규택 의원 또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국가적 측면에서는 아픈 기억이지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민주주의가 최고조에 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탄핵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강조했다.

이와 달리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정부여당이 국민들의 개혁열망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천영세 의원은 “쓰러진 정권을 국민이 일으켰음을 대통령과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고, 권영길 의원은 “탄핵을 넘어 새출발한 17대 국회와 노 대통령은 지난 1년간 개혁과 상생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심상정 의원 또한 “탄핵 이후 참여정부의 개혁 실종을 보며 정치권이 국민요구에 얼마나 부응했는지 의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병호 의원은 “구태 국회의 전형”이란 말로 탄핵사태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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