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조선일보 전 주필이 “지리멸렬한” 우파의 각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류 전 주필은 당대의 한국 우파진영이 “국가권력의 핵우산 덕택으로 만년 양지를 프리미엄으로 즐기면서, 온실 속 자만에 빠져 살아 왔던” 까닭에 “우파의 정규군”인 한나라당이 깨져 버린 현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고, 좌파에게 빼앗긴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방법은 “고난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치고 다시 솟아오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좌파식 자기희생’ 뿐임을 강조했다. 

2003년 초 정년으로 조선일보를 퇴사한 후, 작년 9월 21일 ‘이대로 가면 망할 수도 있다’는 칼럼을 들고 다시 지면으로 복귀했던 류씨는 이후 국가보안법과 과거사규명법 등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보수세력을 향한 자기혁신을 거듭 주문해 왔다.    

류씨 복귀 당시 조선일보가 각종 현안에 대해 강경 보수의 목소리를 내 왔던 그를 다시 불러들인 것을 두고, 언론계 안팎에선 국보법 등이 쟁점화돼 있는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보수적 논조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섞인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류씨의 이번 글 또한 현 한국 보수의 위기상황을 지적하며 보수의 거듭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류씨는 조선일보 8일자 <우파, 선택의 기로에 섰다><사진>란 제목의 ‘류근일 칼럼’에서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한나라당의 합의로 국회에서 통과된 현실을 우파 위기의 현주소로 진단했다.   

류씨는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수도분할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을 하면서 ‘이제는 국민저항밖엔 방법이 없다’고 토로한 것은 한국 우파 진영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를 에누리 없이 반영한 비명이었다”며 “이것은 한나라당의 빈사상태를 확인한 절망의 자인(自認)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절망을 딛고 일어서고 싶어 하는 회생의 안간힘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 직면한 이유를 류씨는 우파의 ‘안일’과 ‘자만’에서 찾았다. 그는 “그동안 당대의 한국 우파 진영은 한세상을 너무나 태평스럽고 안일하게 살아왔다”며 “선배 세대가 이룩한 고도성장의 열매를 만끽하면서, 국가권력의 핵우산 덕택으로 만년 양지(陽地)를 프리미엄으로 즐기면서, 오늘의 한국 우파 세대는 ‘설마 우리가 망하랴’ 하는 온실 속 자만에 빠져 살아왔다”고 꼬집었다.

류씨는 이어 “한나라당의 지리멸렬은 그래서 당연히 ‘올 것이 온 것’이고 이것이 사실인 한, 한국 우파는 지금이라도 그 무임승차 버릇을 버리고 ‘고통 없이 소득 없다’는 냉엄한 세상 이치 앞에 겸허하게 고개 숙여야 할 것”이라고 자성을 촉구했다. “비단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각계각층 우파 국민 모두가 자기들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평생 단 한번이라도 내 한 몸 던지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결행한 적이 있는지 진지하게 자문해 봐야 할 때”란 것이다. 

류씨는 나아가 우파 혁신을 위한 ‘반면교사’로 좌파의 자기희생을 들었다. 그는 “한국 좌파 진영은 지난 40년 동안 교도소 감방과 남영동, 서빙고에서 시작해 시청 앞, 광화문으로 진출하기까지 불철주야 온몸을 던져 희생을 각오하며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공든 탑’을 쌓아 올렸고, 그 결과로 마침내 청와대, 여의도, 시민사회를 접수할 수 있었다”며 좌파의 삶의 태도를 이례적으로 상찬했다.

류씨는 반면 “우파 진영이 권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상실한 지 이미 7~8년. 그동안 우파임을 자임하는 정파들과 국민들은 과연 좌파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과 희생의 100분의 1이라도 스스로 지불한 적이 있는가”라 묻고, “그보다는 오히려 LA 현지에 부동산을 구입해 여차하면 뜰 생각이나 했거나, 아니면 평생을 왕보수로 살았으면서도 뒤늦게 딴 시늉을 하며 ‘나도 실은 수구보수가 아니라 중도보수, 개혁보수, 열린 보수, 자유보수’, ‘중도 지향적 개혁 마인드의 구태(舊態) 탈피성 신진적 신장(新粧)보수’ 운운하고 말장난이나 하면서 시류에 아첨했던 것은 아닌가”라며 우파의 ‘보신주의’를 비판했다. 

류씨는 또한 “이제 정체성 혼돈에 빠진 우파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요행이나 변장술, 언어사기, 시류영합, ‘누군가가 앞장서 싸워주고, 나는 뒤로 빠져 엎드려 있고…’ 하는 식의 얌체행각으로는 아무것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좌파 못지않게 무엇을 던질 각오를 하든지, 아니면 현실도피나 위장행각으로 2007년에도 계속 절망의 비명이나 지르고 있든지” 선택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현 상황에서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우파 정당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는 좌파에 빼앗긴 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돌파구를 ‘우파 국민운동’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이라는 일종의 정규군이 깨졌으니 우파로서는 불가불 의병(義兵)이라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지경”이고, 따라서 “우파 야당이 우파 국민을 리드할 능력을 잃은 상황에서, 앞으로 일정 기간은 우파 국민운동이 우파 야당을 압박하면서 좌파진영과의 싸움에서 기선을 잡아나갈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류씨는 그러나 “그 우파 국민운동이라는 것도 지금은 ‘국민운동’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고 엉성하다”며 그 이유로 “도대체 우파가 제대로의 노선, 제대로의 리더십, 제대로의 전투 노하우, 제대로의 대열을 편성하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류 씨는 “추락하는 우파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들이 과연 그들의 상대편처럼 고난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치고 다시 솟아오르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하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라며, ‘좌파식 자기희생’이 우파 혁신의 첩경임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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