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부총리가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부총리는 7일 오전 자신을 둘러싼 부동산 투기의혹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청와대에 전달한 뒤, 재정경제부 공보관을 통해 사퇴 성명을 공식 발표했다.

이 부총리는 성명서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란과 의혹이 이어지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고 이제 막 살아나려는 국민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사퇴를 결심했다”며 사퇴 사유를 밝혔다.

이 부총리는 자신의 부동산 투기 논란에 대해 “이제 직을 떠나는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와 처는 투기를 위한 부동산 거래를 하지 않았다”고 거듭 해명하고, “다만 20년 전 부동산 등기 과정에서 일부 부동산에 대해 편법의혹이 일어난 것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이어 “처 소유의 부동산을 매각하는 데 있어서 불법이나 이면거래가 없었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재차 강조하고, “경제수장으로 많은 걸 남겨놓고 떠나는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성명서를 마무리했다. 

공식사퇴 발표에 앞서, 재경부 김경호 공보관이 이날 오전 “이 부총리가 오전에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최근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고 전해, 이 부총리가 결단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기도 했다.

이 부총리의 이날 사퇴는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한 새로운 의혹이 속속 불거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른 이 부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압박이 날이 갈수록 수위를 더해가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추락할 대로 추락한 경제팀 수장으로서의 통솔력 문제와 정부여당에 가중되는 부담감 등이 ‘결단’을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노무현 대통령이 이 부총리 재신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 부총리 자신이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하는 등 진화에 나서기도 했지만, 최근 상황은 이 부총리가 사퇴할 수밖에 없는 쪽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해온 게 사실이다. 

7일 현재 이 부총리의 투기 의혹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이, 오히려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면서 더욱 논란이 증폭, 이 부총리 사퇴라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 부총리 부인 진 아무개씨 명의의 경기도 광주시 땅 매매계약을 체결한 사람 중 한 명인 유 아무개씨가 부동산 중개업자로 새롭게 밝혀져 논란에 더욱 불을 질렀다. 이로써 이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는 또 다른 매입자 트럭운전사 차 아무개씨와 함께, 유씨와 차씨 두 사람이 진씨로부터 땅을 실제 사들인 사람이 아니고, 숨어 있는 실제 땅 소유자가 따로 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유씨는 “최종 잔금이 치러질 때까지 몇 달 동안 진씨를 단 한 번 만났고, 진씨가 이 부총리 부인인지도 몰랐다고” 주장하며, 의혹 해소를 위해 이날 중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매매계약 자체를 둘러싼 의혹도 불거졌다. 2003년 10월 30일자로 체결된 이 부총리 부인 진모씨의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중개인 김모씨가 공인중개인 자격이 없는 단순 땅 관리인으로 드러났고, 김씨 본인은 땅 계약 중계사실까지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10일 이 부총리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재산등록 증빙자료로 제출했던 이 매매계약서는 이 부총리가 투기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근거로 제시해 온 것인 만큼, 계약서 체결을 둘러싼 추가 허위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 부총리에게 치명타가 될 것으로 점쳐졌다.       

이 부총리 사퇴에는 여권 전당대회 출마후보들의 거센 비판과 아울러 이 부총리를 변호해 왔던 지도부의 미묘한 입장 변화 또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를 옹호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이미 넘어선 것 아니냐는 판단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상황이 너무 나간 것 같다는 인식이 당내에서 많아지고 있다”며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이 부동산정책을 총괄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와 너무 동떨어진 것”이라고 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 부총리 사퇴 요구엔 일부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선두에 섰다. 지난 4일 청주지역 기자간담회에서 “이 부총리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염동연 의원은 7일 “국회의원을 포함한 당원들을 상대로 이 부총리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혀, 공세를 더욱 강화했다. 염 의원은 “경제팀장을 바꾸면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 있으나 국가는 한 개인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라며 “당은 제  목소리를 내야 하고 또 청와대는 잘못을 시인해야지 은폐하고 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영달 의원도 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참여정부의 생명은 공직자의 도덕성에서 출발하는데, (이 부총리 의혹은) 그 정도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정부와 대통령, 국민에 더 이상 부담을 전가할 수 없는 정도까지 왔다”며 “국민과 본인을 위해서 결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임을 인식해 스스로 결단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의원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당 지도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당황해 하는 표정이 훨씬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 지도부의 입장은 노 대통령이 재신임을 한 마당에 이 부총리의 거취를 문제 삼지 않는 게 좋다는 쪽이었다. 지난 4일 원혜영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이 이미 신임을 확인한데다 경기회복 분위기를 살려나가려면 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고 이 부총리의 총괄조정 능력도 있어야 한다”며 “이 부총리의 사과로 정리된 것으로 봐 달라”는 견해를 밝혔고, 임종석 대변인 또한 “올해 경제가 나아지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야당도 대승적 차원에서 이 부총리의 사과와 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7일 오전에 열린 집행위원회에서 당 지도부들은 여전히 “좀더 두고 보자”는 ‘신중론’을 되풀이하면서도 “하루 정도 더 보고 입장을 정하자”고 말했다. 임채정 의장은 “오늘 매수자 쪽도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밝히고 이 부총리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려는 것 같으니 오늘 오전이나 하루 정도 더 보고 우리의 입장을 정하는 게 옳을 것 같다”고 말해, 상황에 따라 태도 변화를 보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

청와대 관계자 또한 “기존 입장에서 변화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도, “이 부총리의 땅투기 의혹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해 청와대 입장이 선회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지난달 24일 2005년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 공개를 기화로 불거진 이 부총리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논란 12일 만에 이 부총리가 전격사퇴함으로써 반환점을 돌아섰다. 하지만 이 부총리의 사퇴와는 무관하게 투기의혹에 대한 진위여부와 정부 인사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부총리가 사퇴했지만, 자신의 투기 의혹 논란을 종결하고 노 대통령 국정운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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