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경제부총리의 부인, 진진숙씨의 땅투기 의혹이 점입가경의 ‘미스테리’로 치닫고 있다.

이헌재 부총리는 3일 부인의 땅투기 의혹에 대해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는 뜻을 밝혔지만 관련된 여러 의혹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정연설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강조한 직후 불거진 사안임에도 이 총리가 이같은 태도를 보이자 국민적 ‘분노’는 눈덩이처럼 번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기초생활자 등 저소득 신용불량자에 대한 채무조정을 도덕적 해이라며 일축한 반면, 수십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자신의 의혹에 대해 관대하고 모호한 태도인 이 부총리가 도덕적 해이를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노동당은 또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부총리의 재산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조사하고 책임을 묻기는커녕, 최종적인 면죄부를 내림으로써 사실상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포기했다”며 이 부총리의 해임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3일 논평을 통해 “이 부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부동산 파문’으로 상처받은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스스로 사퇴하는 길 뿐”이라며 이 총리의 용퇴를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일대 진씨의 땅을 16억 원에 사들인 인물이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는 덤프트럭 운전사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4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부총리 부인 진씨로부터 초월면 일대 땅 5천8백평을 사들인 덤프트럭 운전사 차모씨(38)는 전세아파트 외에 일체의 보유부동산이 없었음에도 매입한 땅을 담보로 15억 원을 농협에서 대출받아 진씨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차씨의 경우 이자만 연 1억에 달하는 거액의 대출을 신청하거나 상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지만, 차씨에게 돈을 빌려준 농협 본점은 지점에서 올라온 대출신청 서류를 하루 만에 승인했다. 통상 3억 원이 넘는 대출은 본점의 대출심사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 

더욱이 당시 지점에서 본점으로 올라온 대출서류에는 소득증명원, 세금납부서류 등 차씨의 대출금 상환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전무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측은 이에 대해 “해당 전답의 감정가가 26억원으로 담보 가치가 충분했기 때문에 차주의 상환 능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금융계에선 “16억원에 산 땅의 담보가치가 26억원으로 평가된 점, 대출승인이 하루 만에 떨어진 것도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차씨는 명의만 빌려줬을 뿐, 땅을 매입한 실 소유주는 따로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땅을 매입하며 남의 이름을 빌릴 때, 명의이전과 동시에 소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대출을 받는 수법을 사용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당시 농협에서 차씨의 대출심사에 관여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대출신청이 들어온 땅의 전 소유자가 부총리 부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 부총리 부인의 땅투기 의혹이 점점 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민주노동당 이선근 경제민주화본부장은 4일 “차씨의 재산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실제 소유주는 진씨일 가능성이 있어 부동산 실명제를 위반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며 진씨의 ‘치고빠지기식’ 투기의혹을 제기했다. 이 본부장은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부총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기는커녕, 임대주택 활성화 대책 등으로 실적이 좋다는 등 칭찬 일색으로 일관해 국민의 분노를 사고 있다”며 사태의 철저한 규명을 요구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이헌재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예비후보인 염동연 의원은 4일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이헌재 부총리는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며 여당 내에서 처음으로 이헌재 부총리의 사퇴를 촉구해 파문이 예상된다.
 
염 의원은 “대통령과 당에 부담되는 각료는 대통령이 버리지 않겠지 하는 비겁한 생각을 하지 말고 스스로 용단을 내리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토지매입자가 트럭운전사로 밝혀져 파문이 예상됨에도 청와대측의 태도는 초지일관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4일 오전 “위장 전입에 의한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이 부총리 부인 소유의 경기도 광주시 소재 전답은 지난 79년에 구입한 것으로 투기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완기 인사수석이나, 문재인 민정수석 등 청와대 수석들 역시 “더 이상 거론하거나 조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시장경제 원칙’을 강조하던 경제부총리 일가의 땅투기 의혹이 일개 트럭운전사에까지 관련됨에 따라 파장이 커지는 가운데,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국민적 분노를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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