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TV토론 프로그램에 압력을 행사해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들의 출연을 의도적으로 막아 왔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두 당은 토론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이유로 각 방송국에 ‘협조 요청’ 형태로 압력을 행사해 왔으며 각 방송사는 프로그램 진행의 불가피성 등을 이유로 이를 용인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최근 각 방송사의 대표적 토론 프로그램에는 민주노동당 등 소수당 의원들이 거의 나가지 못했던 데 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해 10월 이후에만 17회에 걸쳐 각 당별로 18명씩이나 출연한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노동당은 10월 1일 KBS 심야토론 ‘서민경제 어떻게 살릴것인가’에 심상정 의원이 출연했고, 지난 2월 17일 MBC 100분토론 ‘북한 핵보유 선언 그 진실은’에 권영길 의원이 나간 게 전부다. 민주당은 자민련이 참석한 ‘핵보유’ 토론에도 나가지 못했다. TV토론 참여에서도 소수정당과 거대정당 사이에 양극화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대표적인 TV토론 프로그램인 MBC ‘100분토론’과 KBS ‘심야토론’ 제작진은 3일 민주노동당 등 소수정당 의원들의 출연빈도가 낮다는 지적에 대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소수정당 소속 의원들의 출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풍토가 심해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제작진들은 두 당이 자기 당의 유·불리에 따라 토론자 선정과정에까지 암묵적으로 개입해 왔으며 이는 ‘오래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100분 토론’ 담당 PD는 3일 전화통화에서 “여야 구도가 맞아야 하는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서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방송을 진행하는 처지에서 두 거대여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두 당이 이러한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소수정당의 토론 출연은 그만큼 힘들다”고 말했다. ‘심야토론’ 담당 PD도 “여러 당 의원들을 모두 출연시키는 게 프로그램 진행상 더 재미있는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균형론’을 펴며 소수당 참여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특히 두 방송사 관계자들은 민주노동당의 참여 문제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제동을 많이 거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진보’ 민주노동당과 ‘보수’ 한나라당이 동시에 열린우리당을 공격하면 여당 입장에서 난처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방송사가 당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절대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우리당 미디어팀 관계자는 3일 “방송 토론 형식이 처음부터 그렇게 짜여졌고, 편집권은 전적으로 각 방송사 제작진에게 있다”며 “당이 소수당 배제 기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생뚱맞은 이야기”라고 강하게 항변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번도 방송사 쪽에 토론자 선정 문제와 관련해 출연 거부 의사를 밝힌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토론자 선정이 불공정하다고 판단될 경우 당에서 배려를 요청한 적은 있다”며 “어느 당이나 자기당에게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그런 정도의 의사 표시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해명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TV토론 참여 불공성정과 관련 수차례 각 방송사에 항의해 왔으며, 조만간 두 정당에 대해서도 항의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홍승하 대변인이 3일 밝혔다.
 

언론노조 "방송 상업성과 거대여야 횡포 합작품"
토론프로 맡았던 윤성한 국장 "제작진 고충 이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소수정당의 TV토론 배제에 대해 언론노조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윤성한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거대여야의 소수당 배제 전략과 방송사들의 상업성을 싸잡아 비판했다. 지난 총선 당시 케이블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서 토론 프로그램을 맡았던 윤 국장은 3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시청률을 의식하는 토론 프로그램들이 대립각을 높이는 등 흥미위주로 구성되고 여야간 정쟁거리를 의제로 삼다보니 토론자 선정에서도 거대여야 중심으로 짜는 경향이 있다”며 “언론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보여줘 공론화하고 국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할 기본적 의무가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거대 여야의 소수정당 기피 현상은 널리 알려진 일”이라며 “의회에서 다수정당이라고 해서 이 기득권을 무기로 토론자 선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려는 행위는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다수의 횡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방송을 해야 하는 방송사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거대정당들의 횡포를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불가피성이 있을 것”이라며 “토론 프로그램의 제작 구조를 완전히 뜯어 고치지 않는 한 거대 여야의 요구와 타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제작진의 ‘고충’을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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