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둘러싸고 촉발된 내분으로 한나라당이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행정도시 반대파 의원들은 지도부가 행정도시법 국회 통과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발하는 한편, 김덕룡 원대대표 등 지도부측은 법안통과시 의원직 사퇴를 공언한 반대파 의원들에 대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당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재오, 배일도, 김문수, 박계동 의원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 의원 31명은 3일 오전 국회에서 ‘수도권지키기투쟁위원회’를 구성, 사실상 지도부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이들은 “수도이전반대를 관철시키기 위해 수도지키기투쟁위를 중심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한편 서울시의회, 시민·사회단체 등과도 연계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재오 의원은 이날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양식있는 정치인이라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정면으로 지도부를 겨냥했다. 박계동 의원 역시 “수도권지키기투쟁위가 가동되면 위헌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혀 지도부 압박에 무게를 더했다. 


당내 핵심 브레인인 박세일 정책위의장이 2일 국회의원직 및 의장직 사퇴의사를 밝힌 데 이어 ‘도미노 당직사퇴’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박진 당 국제위원장을 비롯한 박재완, 박찬숙 의원 등 정조위원장단은 3일, 당직사퇴 의사를 분명히 하며 지도부를 압박했다. 박재완 의원 역시 3일 “만일 박세일 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게 되면 여러 명이 뜻을 같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제1야당의 정책기능 등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이같은 반대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지도부는 반대파와 일전을 불사할 태세여서 일각에선 ‘당이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민주정당정치의 기본은 정해진 원칙과 룰을 지키면서 상대방과 신뢰를 지키면서 가는 것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연되지 말아야 한다”고 반대파 의원들을 겨냥해 비판했다.

당 지도부 주변에선 행정도시법 통과시 의원직 사퇴를 공언한 박세일 정책위의장 등에 대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경한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유승민 대표비서실장은 “박 정책위의장은 의사를 표시한 대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 당론에 사실상 찬성해 놓고 당론결정 이후에 당과 대표를 흔드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여옥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반대파 의원들의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사퇴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무성 사무총장, 이규택 최고위원 등 고위당직자들 역시 반대파 의원들의 태도가 “적반하장”이라며 불쾌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한나라당의 ‘자중지란’을 바라보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시선은 의미심장하다. ‘친 박근혜’와 ‘친 이명박’ 계파가 차기 대권을 놓고 노골적인 당내 투쟁에 돌입한 까닭에, 이번 내분이 쉽게 봉합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의원은 3일 “‘친 박근혜’와 ‘반 박근혜’ 간 세 대결이 내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며 “한나라당은 유신의 부채를 가졌기 때문에 단일한 입장을 갖는 게 불가능한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최규성 의원 역시 “이번에 법사위에서 농성한 의원들이 모두 이 시장을 지지하는 쪽 아니냐”고 거들었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실제로 ‘한 지붕 두 가족’을 넘어 아예 ‘분당’으로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병두 의원은 한나라당을 “균열하는 발칸반도”라 빗대며 내분의 확산 가능성을 점쳤고, 우원식 의원은 “소수 반대파가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것을 보며 한나라당이 박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처럼 ‘만신창이’가 돼 가는 한나라당 사태가 열린우리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리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초선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야당 지도부가 힘을 가져야만 대화와 타협, 협상과 합의의 정치가 가능하고 여야 합의에도 무게도 실리는 것이나 이번 행정도시 특별법 처리과정에서처럼 한나라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정책추진이 힘들어지는 등 우리당으로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차기 대권을 향한 여야의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진 가운데 한나라당의 내분 사태가 어디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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