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에 의해 몽양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 그동안 서훈이 보류돼왔던 일제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54명에 대한 서훈이 이뤄졌다. 정부가 일제하 사회주의운동가에게 독립유공자의 서훈을 부여하는 것은 해방 60년 만의 일로써 그동안 민족주의계열의 독립운동만을 공식 독립운동으로 인정해 왔던 전례로 볼 때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사실 1920년대 이후 일제하 독립운동사 또는 민족해방운동사에서 사회주의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 등 민족말살정책에 포섭돼 많은 조선인 지식인들이 친일과 변절의 길을 거듭했지만 일제하 사회주의자들은 대부분 지조를 지켜나가는 대조적 모습을 보였다.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이 성공하면서 조선을 비롯한 중국, 인도 등 식민지·반식민지 나라에는 사회주의사상이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중국과 일본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러시아에 인접한 우리의 경우도 예외 없이 사회주의사상의 조류가 유입됐다.
 
1922년 초 ‘김윤식 사회장 사건’은 민족주의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첫 번째 대립이었다. 한말의 대제학으로 일제 때 작위를 받았던 김윤식의 사회장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주의세력은 격렬한 반대를 벌이기도 했다.

이름사회주의 분파소속단체
이학수
정운영
김영휘
박병호
장채극
남윤구
한    해
박태선
김병숙
장    준
김경식
조용관
임종환
이병의
김동필
이병관
서울파철원노동회
마산노동회
군산노동연맹회
울사노농동우회
청진노동공제회
청진노동공제회
평양노동연맹회
원산노동청년회
김제노동동맹회
영동노농동맹회
원산노동회
군산노농회
이리자성노동조합
조선노동대회
풍기노동공제회
함흥노농동맹
정운해
김종범
김유창
조동혁
김대봉
최태희
여    해
김부곤
정순종
최중진
북풍파대구인쇄직공조합
부산노동동맹회
조선노동동맹회
하동노농회
구유노동동맹회
부산노동동맹회
마산노농동우회
신태인노동조합
협천노동회
정읍노동공제회
윤덕병
강달영
신동호
최원택
화요파인천노우회
진주노동공제회
노농연맹회
대구노동공제회
참고=전명혁, 『1920년대 국내사회주의운동 연구 - 서울파를 중심으로 - 』,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8)
1921년 서울청년회(서울파), 1922년 무산자동맹회, 1923년 신사상연구회(1924년 화요회로 개칭, 화요파), 1924년 북풍회(북풍파) 등 사회주의 ‘사상단체’가 결성됐고 이들은 조선공산당 결성을 위해 경쟁적으로 노력했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결성과정을 보면 이들 각 사회주의세력들이 노동자, 농민운동에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투쟁과정을 알 수 있다. 화요파는 조선노동연맹회를, 서울파는 조선노농대회준비회를, 북풍파는 남선노동동맹을 결성해 전국적인 노농단체 결성을 위해 노력했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당시 중앙집행위원 50명 가운데 노동운동 중앙위원명단과 사회주의 분파, 소속 단체를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표 참조>

이 시기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대중운동은 사회주의운동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뤄졌다. 예컨대 이번 서훈 대상자 가운데 권오설은 조선노농총동맹 집행위원이면서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2004년 서훈됐던 서울파의 지도자 김사국은 1922년 자유노동조합 대회 조직, 1923년 고려공산동맹 창립, 전조선청년당대회 조직(1923년), 사회주의자동맹 창립(1924.6), 조선사회운동자동맹 상무위원(1925.4), 전조선노농대회 준비위원(1925년) 등 노동운동, 사회주의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사회주의운동, 노동운동은 일제하 민족해방운동, 독립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동안 잊혀져왔고 잊혀지기를 강요당해왔던 사회주의운동,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복권은 우리사회가 그동안 극악한 반공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좀 더 균형 잡힌 사회로 나아가는 과거청산의 의미와 한국근현대 역사 서술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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