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역사적으로 참으로 각별한 해다.

일제강점의 시발점이 된 을사조약 체결 100년, 그 일제강점으로부터의 해방 60년, 그 일본과 굴욕적 화해를 도모한 한일협정 40년.

얼마나 아픈 역사였던가. 말하지 않아도 명치를 누르고 폐부를 찌르는 그 고통의 역사.

때문에 지금 과거사 청산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정부는 이미 한일협정 문서 ‘몇 페이지’만을 공개한 상태이고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 규명위원회’를 발족했으며, 4대 개혁법안 중 하나인 과거사법 국회처리도 시도하고 있다. 뿐인가. 3.1절을 맞아 좌익계열 독립운동가 일부에게 훈·포장을 주는가 하면 일본군위안부 사이버기념관도 개관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아픔의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규명되고 청산되지 못한 과거, 책임지지 않으려는 가해자 일본 정부와 기업, 수수방관 해 온 한국정부 등으로 인해 그 아픈 역사의 피해자, 그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다.

또한 이는 노동운동의 화두이기도 하다. 일제강점하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은 노동력을 강제동원한 ‘노동착취’의 역사이기도 했다. 양대노총은 이미 강제노동금지규약(제29조) 위반을 이유로 지난 95년 국제노동기구(ILO)에 일본정부를 가해자로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정식안건으로 채택되도록 지난 10년간 힘겨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 ILO 제소 10년을 맞았다.
 

지난하고 힘겨운 ILO 제소의 역사

노동계의 일본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한 ILO 제소의 역사는 참으로 지난한 것이었다.

95년 한국노총이 ILO 전문가위원회에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처우는 강제노동조약에 위반한다”는 요청서를 제출했고, 민주노총도 98년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연대해 ILO 전문가위원회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이 문제는 ILO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양대노총은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연행 문제는 ILO의 가장 핵심적인 조약 중 하나인 강제노동금지조약을 위반한 사례이며 ILO가 이를 정치적 이유로 다루지 않는다면 중대한 임무방기”라며 ILO 안건채택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ILO 전문가위원회는 “일본정부가 시간이 더 늦기 전에 피해자가 원하는 배상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강제연행문제도 강제노동협약 위반임을 규정”했으며 모두 8차례에 걸쳐 보고서에서 이를 다뤘다. 전문가위원회에서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은 이미 법률적 판단은 끝났다는 의미다.

또한 ILO 노동자위원회도 2001~2003년 3차례에 걸쳐 이를 안건으로 채택했다. 당시 노동자위원회는 “ILO의 오랜 숙제인 일본의 강제노동조약 위반문제를 이번엔 다뤄야 한다”며 일본 노동계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요구한 ‘공공부문노동자 단결권 문제’ 대신 이를 선택했다.

그럼에도 ILO 사용자위원회의 반대로 ILO 총회 안건으로 결국 채택되지 못했다. ILO의 안건채택 과정은 노동자위원회에서 먼저 안건을 채택하면 관례상 사용자위원회가 반대하지 않고 곧바로 총회 기준적용위원회 안건으로 채택된다. 그러나 사용자위원회는 ‘유일하게’ 일본군위안부·강제연행 안건 만큼은 안건상정에 반대한 것이다.

이는 일본쪽의 반대가 워낙 적극적이기 때문. 일본노동조합총연합(렌고)를 주축으로 한 일본노동계의 경우 대놓고 반대하진 않지만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사용자위원회에서의 일본사용자의 로비가 워낙 거센 것으로 알려지면서 ILO의 관행을 깨고 노동자위원회의에서 채택된 안건을 거부하기에 이른 것.

양대노총 “결코 멈추지 않겠다”

더구나 갈수록 상황이 좋지는 못하다. ILO 노동자위원회에서 안건이 채택됐음에도 총회 안건상정에 실패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아예 국제자유노련(ICFTU)의 예비의제에서조차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통상 ILO 노동자위원회는 ICFTU의 예비의제에서 몇 가지를 제외하고 최종 안건을 선택하는 데 이것에서조차 빠져버렸고 전문가위원회 보고서에서도 예년과는 달리 조그맣게 다뤄지고 만 것.

실제 ILO에서는 한 국가(정부)를 상대로 1개의 안건채택만 가능하도록 하는데 일본정부를 상대로 10년간 일본군위안부·강제연행문제만 제기하고 안건채택을 요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 일본 노동계는 2002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공공부문노동자 단결권 문제'를 제기하며 한국쪽의 양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대노총은 안건상정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확인하고 있다. 특히 해방 60년, ILO제소 10년이 되는 올해의 의미는 더욱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은 “노동자위원회 내에서 태국, 노르웨이 등 일부국가는 이 문제로 인해 노동자위원회 내부의 관계를 서먹하게 하는 게 아니냐고 제기하기도 한다”며 “그러나 대다수 국가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제기하는 한편 유일하게 사용자위원회가 노동자위원회 안건을 거부한 사례를 선례로 고착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이 의제는 ‘될 때까지’ 제기할 것”이라며 “아무리 일본쪽이 강력한 로비를 펼치고 방해를 한다고 해도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강금선 간사도 “한국노총이 이 의제를 ILO에 제기한지 10년이 되는 올해는 어느 해 보다도 중요하다”며 “이 제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당위성을 갖고 있고 세계 각국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사죄배상 촉구 100만인 서명운동 불 붙었다

이에 따라 올해 이들의 행보는 더욱 바쁘다. 한국노총, 민주노총, 정대협,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위원회는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배상을 촉구하고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100만인 국제연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은 지난해 6월 ILO 총회에서 일본군위안부·강제연행에 대한 안건채택이 또 좌절되자 ‘ILO 총회 공대위’를 구성하고, 올해 더욱 결속력을 갖고 대응하기로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이 서명운동은 2월말 현재 15만명이 동참하고 있다.

윤미향 정대협 사무총장은 “UN인권위원회, ILO전문가위원회 등 국제기구와 지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은 일본군위안부제도는 인도에 반하는 죄이자 전쟁범죄임을 확인했고, 일본정부에 사죄와 법적배상 등을 권고했다”며 “그러나 일본정부는 국제기구의 요구를 무시하고 (민간기금인) ‘여성을 위한 국민기금’을 앞세워 법적책임을 회피하면서 유엔창설 60주년이 되는 올해 유엔안전보상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한다”면서 사죄배상 없는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진출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양대노총은 올해 약 5만명 정도의 서명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한국노총은 전력, 체신노조 등을 선두로 2월말 현재 2만5천명의 서명을 받았고, 민주노총도 각 산별연맹, 지역본부에 배너달기, 서명운동 등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또 최근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참가단체들이 각국 참가자 1천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기도 했다.

공대위는 2월말 1차 마감을 한 뒤 3월 UN인권고등판무관과 ILO사무총장, 일본정부에게 전달하고, 6월말 2차 마감을 하고 7월 UN사무총장, 8월 일본정부에 각각 서명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또한 적극적인 국제 여론전을 펼칠 예정이다. 3월 ILO 이사회에서 양대노총은 적극적인 국제사회 설득에 나설 예정이며 6월 ILO 총회에 위안부 할머니를 모시고 참석, 국제 인권·여성단체의 힘을 모아 적극적인 안건채택을 촉구할 예정이다.

인권침해와 노동착취, 바로 노동자의 문제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로 등록했던 215명의 할머니 중 2월말 현재 생존자는 절반을 조금 넘는 124명이다. 대다수 70대 후반에서 90대 초반의 할머니들은 연로한 상태다. 또한 징병 및 6개월 이상 징용 피해자로 추정되는 170여만명 가운데 생존자는 4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언제 꺼질지 모를 삶을 살고 있는 이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일제의 일본군위안부와 강제연행은 명백한 ‘인권침해’이자 ‘노동착취’였다. 바로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양대노총의 노력은 ILO 제소 10년을 맞는 올해 더욱 특별해 보인다.

“아직 과제는 많습니다. 솔직히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문제의식이 확산된 것은 아니니까요. 이번 국제연대 서명운동을 조직하면서 조합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가도록 할 겁니다.”(김미정 민주노총 여성국장)

“노동계의 노력 못지 않게 한국 정부와 사용자가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뛰어야 합니다.”(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양대노총의 노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사실 ILO에서 하나의 의제를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제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더욱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합니다.”(윤미향 정대협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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