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의정부에 살고 있는 일용노동자 최해용(44)씨는 모아놓은 돈은커녕 하루하루 먹고살기조차 빠듯한 ‘마이너스’ 인생이다.
 
최씨의 한달 수입은 100여만원이 전부. 그나마 기나긴 겨울철은 일감이 없어 ‘반실업’ 상태다. 아내가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받는 65만원 벌이마저 없다면 중학교, 초등학교 다니는 세 자녀는 고스란히 굶어야 할 판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이 있지만 최씨의 형편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서민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임대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새벽길을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최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새벽 찬바람을 뚫고 인력시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공치는 날이 대부분이다. 지금 같은 겨울철에는 한달에 하루 이틀 정도 일하기도 힘든 형편. 최씨는 일이 없는 요즘 부쩍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사출기를 다루는 영세업체에서 7년여 동안 생산직으로 일했던 최씨는 그 후 ‘고물상’을 4년여 운영했으나 경기가 어려워지고, 거래처도 부도가 나면서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던 최씨가 일용노동자로 나서게 된 것은 지난 2003년 말.
 
“막일 보다는 안정적 수입을 얻기 위해 이력서도 넣어 봤지만 고등학교 중퇴에 나이 마흔을 넘긴 놈을 어디서 받아주겠어요.” 사출기 다루는 기술을 다시 써먹어 보려 했지만 사출기 영세업체들은 하나둘 망해나가고 있었고, 이미 ‘40대’인 최씨를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보너스 한번 받아보는 것이 꿈이라는 최씨. “부모 탓도 내 탓도 못하는 상황이죠.”
 
결국 별다른 기술도 밑천도 없는 최씨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막노동’뿐이었다. 그것도 잡부로 일하다 보니 하루 일당 4~5만원에 한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해도 150만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당은 비슷해요. 미장, 철근 등 기공도 8~10만원 정도 받는 걸요.” 비 온다고 쉬고, 눈 온다고 쉬고, 춥다고 쉬고…쉬는 날은 또 어찌나 많은지. 게다가 일을 나가더라도 인력업체에 소개비로 10%를 떼이니 최씨는 한달 100만원 벌기조차 빠듯하다.
 
일감은 갈수록 떨어져 새벽 4시 30분에 인력업체에 도착해도 일감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 일감이 없다보니 ‘1순위’로 나가려고 인력소개소에서 밤을 새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고개를 떨구고 집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최씨는 눈치 보여서 낮에는 집에도 못 들어간다. 결국 이른 아침부터 동료들, 친한 친구들과 선술집에 모여 술 한 잔을 기울인다. 물론 ‘신세한탄’이 기본안주다.
 

 
둘이 뼈 빠지게 벌어도 200만원이 안돼
 
한국노총이 최근 발표한 4인 가구 표준생계비는 395만원. 그런데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5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 총액은 220여만원이었다. 표준생계비와 비교할 때 175만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통계상의 수치가 보여주듯 혼자 힘으로는 가계를 꾸려가기 힘들어, 부부가 맞벌이를 하거나 근무시간외 부업을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씨 부부에게는 이 통계조차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두 사람이 등골 휘어지게 벌어도 200만원이 안되니 말이다. 결혼 전 봉제공장 반장까지 했던 아내 김 아무개(40)씨는 최씨가 사업에 실패하고, 막일을 시작할 무렵부터 인근 4~5명 규모의 영세봉제공장에서 미싱 돌리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에는 100여만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65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최저임금인 64만 8천원(1시간 2840원, 월 226시간 기준)을 간신히 넘긴 금액이다.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가난뱅이’ 노동자 수는 125만명(전체 노동자의 8.8%). 2002년 85만명(6.4%), 2003년 104만명(7.6%)에 이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김씨 사정이 이들 노동자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김씨는 그나마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는 마음이다. 아침 7시 30분 출근해 저녁 8시 경 퇴근. 구정 전에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4주 정도를 야근하고 휴일까지 일을 해 하루도 쉬지 못했다. 하지만 야근수당, 휴일수당은 전혀 없었다. 설날 상여금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퇴직금, 상여금,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는 ‘임시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집안 일 때문에 몇 시간 일찍 (회사에서) 나오면 그건 또 월급에서 확실하게 까요.” 김씨는 그러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에 ‘꾸욱 꾹’ 참을 뿐이었다. 사업주를 고발하려 해도 ‘사업자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아 난감할 따름이다.
 
먼지 구덩이, 좁은 작업실에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미싱을 돌리는 아내를 생각하면 남편 최씨는 미안하고, 측은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전태일이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얘기라니까요.” 최씨는 아내가 저임금 ‘착취’를 당하는 것이 안타까워 “그만두라”는 말을 수도 없이 툭툭 내뱉는다. 하지만 아내가 그나마라도 벌어오지 않으면 당장 내일 끼니거리를 걱정해야 한다. “봄만 되면…”이라며 아내에게 호기롭게 얘기해보기도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노숙자들을 보면 (당신이) 가정이라도 지켜주고 있어 고마워요.” 그래도 남편 최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은 아내뿐이다. 밀린 공과금 등 빠듯한 생활에 김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눈물을 쏟아내지만 남편에 대한 믿음 만큼은 아직 굳건하다.
 

 
자식 셋 학원 보내려면 한달 번 돈 다 쏟아 부어야
 
최씨에게는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6학년, 2학년인 두 딸이 있다. “아들놈이 공 차러 나갈 때, 잠바도 없이 조끼만 입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미치죠.” “5천원짜리 치킨 한번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어요. 설날에는 세뱃돈도 못주고….”
 
자식들 이야기가 시작되자 최씨의 가슴은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듯 했다. “아들만 학원 하나 간신히 보내요. 두 딸이 기죽을 까봐 걱정이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셋 다 보내려면 한달 번 돈을 고스란히 다 쏟아 부어야 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통 한달 학원 수강료는 20~30여만원. 가스비, 관리비, 의료보험 등 기본적인 공과금이 두 달 째 연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들 학원비는 가계지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러나 ‘가난의 굴레’를 대물림 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4대 독자인 아들에게만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 한다.
 
가난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은 수시로 찾아온다. 한달에 6~7만원 하는 아들 학교 급식비와 세 달에 6~7만원 하는 두 딸의 급식비를 겨우겨우 내고 있는 최씨. “아들이 한번은 공짜 급식 방법을 얘기하는데 참 어이가 없었어요. 엄마 아빠가 젊으면 안 되고, 편모·편부면 된다는 거예요, 글쎄. 휴우~.”
 
한창 크고 자랄 나이인 아이들. 물 말아 김치만 올려 먹어도 밥은 금방 동이 난다. “아침에 8인분 밥솥에 한 가득 밥을 해놓아도,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면 밥이 없어요. 밥이 모자라서 굶은 채로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무너지죠.”
 
최씨의 설날은 어땠을까. 아이들은 “오랜 만에 고기를 먹을 수 있겠다”며 좋아했지만 결국 만두국에 김치만 올려놓은 게 전부였다. “우린 간 데가 없다. 엄마, 아빠 너무했다.” 막내딸의 일기에는, 친구들은 할머니, 친척집에 놀러가고 세뱃돈 자랑하는데 우리는 뭐냐는 ‘투정’이 담겨 있었다.

최씨는 처가인 목포에 못 내려 간 지 어언 9년이 넘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섯 식구가 움직이려면 최소 20~30만원은 드는데, 그 돈이면 쌀 몇 포대를 사둘 수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최근 가사 일도 전담하고 있는 최씨. “우리 집은 엄마, 아빠가 바뀌었다.” 아이들이 농담 삼아 던지는 말이 달갑지는 않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씨는 요즘, 아이들에게 못난 모습 보여주기 싫어 아침만 해놓고서는 부랴부랴 집 밖을 나선다.
 
먹고사는데 지장 없고, 남들 하는 만큼 애들 교육시키고,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꿈의 전부’라는 최씨. “생활고 때문에 이혼하고, 자살하는 사람들…그런 이야기가 제발 제 이야기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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