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은 자신을 ‘당원파’ ‘민족파’라고 부른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당내 어느 계파에도 줄서지 않고 민의에 의해서만 움직이겠다는 다짐인 동시에, 조직적 지원을 기대할 만한 세를 확보하지 못한 ‘독불장군’이란 뜻이기도 하다.
 
전자는 임 의원을 계파간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가장 직설적인 언어로 자기 소신을 피력하는 여당 의원으로 만들었고, 후자는 ‘행동’을 위한 원군 동원력에 한계를 노출시켰다.    

24일 오전, 임 의원은 4월 2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전대 출마를 놓고 저울질하던 그가 출마발표 하루 전, 불과 몇 시간 사이를 두고 출마와 불출마 사이를 오가며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임 의원은 열린우리당 위기 탈출의 핵심과제로 지도부 ‘물갈이’를 들었다. 임채정-정세균 체제가 들어서면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당을 뒤덮고 있다”는 것이다. 임 의원은 그 원인을 “지도부의 의사와 당원과 국민의 뜻이 괴리돼 있다”는 데서 찾고, “상임중앙위원 5명 중 과반 이상을 개혁세력이 차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타 개혁론자들과의 연대가 아닌 직접 출마를 선택한 데 대해서도, 임 의원은 “그들의 개혁과 나의 개혁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분들이 사안마다 어떤 입장을 취해 왔는가? 분배, 비정규직, 농민 위주의 투표를 했나, 대외 문제에 대해 자주적으로 해 왔는가”라며, 임 의원은 “그동안 개혁을 주장해 온 분들이 미흡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임 의원은 또한 23, 24일 열린우리당의 비정규법안 강행처리 시도와 관련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임 의원은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비율이 너무 높고 차별도 심하다”며 “우리당이 노동계와 시민사회를 대변하지 않고 재계의 이익을 대변해서야 되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의원이 뛰어든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는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당 위기론’에 대한 각 후보들의 상이한 진단과 처방이 분출되는 장으로, 당의 진로를 놓고 후보간, 계파간 치열한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임 의원이 밝힌 전대 출마사유는 전대를 매개로 얽혀 있는 당내 역학구도란 골격과, 이 사이를 잇고 있는 노선논쟁이란 실핏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 
 
<레이버투데이>는 24일 오후 임 의원을 만나 전대를 계기로 한층 심화되는 ‘개혁-실용’간 당내 논쟁, 국가보안법 및 사립학교법 등 쟁점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하면서 비정규법안 처리는 강행하는 당 지도부의 임시국회 전략 등에 관한 입장을 들었다.
 
빡빡한 일정에, 임 의원은 마음이 급했다. 그만큼 인터뷰도 급하게 흘러갔다.   
 
-출마결정이 급하게 이뤄졌다.
“어제 저녁, 몇 사람을 만났다. 초선의원들과 중진의원들 두세 명이 격려해 줬다. 초선 의원 중에도 ‘귀족초선’이 있고, ‘평민초선’이 있다. 난 순수 ‘평민초선’ 의원들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중진의원 중에도 놀랄 만한 인사들이 있다. 그들이 도전해 봐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용기를 줘서 나오게 됐다.”
 
-당선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예선이 어렵다. 조직선거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거의 명분이다. 모여서 하는 정치, 소위 정파·파벌정치는 명분이 될 수 없다. 난 386의원들이 좋은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개혁 추진 과정에서 꼭 잘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선거를 정파별로 모여서 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건 아니다.” 
 
 -전대 출마를 “독배를 마신다”고 표현했다. 독배를 마시면서까지 출마한 이유는 뭔가?
“당선될 확률이 반반이고, 선거 자체가 힘든 일이기에 ‘독배’라고 한 것이다. 개혁세력이 지도부의 과반수, 즉 상임중앙위원 중 세 명은 돼야 하겠기에 출마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다. 개혁세력을 자임하는 분들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을 내가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정치 문제, 개혁입법 문제, 한반도 평화문제, 대미관계 문제 등에서 일관된 개혁을 펼치고 싶었다.”  
 
-당의 실용주의화가 열린우리당 위기의 원인이라 했고, 그 해법을 지도부 교체에서 찾고 있는데. 
“현재 임시지도부는 말도 안 되는 지도부다. 정파 대표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멋대로 뽑은 지도부다. 국민과 당원들 뜻에 부합하지 않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갑자기 우리당의 노선을 실용주의라고 규정한 것을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을 작년 12월 31일까지만 하자는 건가. 이전 지도부 때도 그랬다. 이부영 당의장이나 소위 기획자문위원회 분들이 문제다. 상임중앙위원도 아닌 사람들이 당을 변질시켜 왔다는 말이다. 심지어 내가 작년 12월말에 기획자문위원회에 들어가서 문제제기하려 했다가, 얘기도 못해 보고 추방당한 적도 있다. 지도부가 재편되지 않고는 우리당이 국민과 당원들의 뜻을 절대 따르지 못한다. 작년만 해도 그렇다. 한나라당과 한 번 붙어 볼 기회도 안 줬다. 그래도 천정배 원내대표는 뭔가 해 보려고 열심히 했는데, 상임중앙위원들이나 기획자문위의 중진들이 대체입법을 주장하며 발목을 잡았다. 그러니까 일치단결할 수 없었던 거다. 몸싸움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152석’의 의미가 완전히 사라지는 민주주의의 왜곡을 가져 왔다.”
 
-임채정-정세균 체제가 ‘민생올인’을 주창하며 이끈 2월 임시국회는 개혁도 민생도 다 놓치고 있는 듯하다.  
“국가보안법은 어렵더라도, 사립학교법은 처리할 수 있었다. 개혁법안 하나 처리 못하고, 민생법안도 보수층 입맛에 맞는 것만 건드렸다. 그게 경제 살리기인가. 지도부가 하겠다고 한 것 중에 한 게 뭐가 있나.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지도부가 자꾸 ‘상생’을 말하는데, 상생은 한나라당이나 쓰는 말이지, 우리당이 써서는 안 되는 단어다. 한나라당은 대통령을 탄핵해서 죽이려고 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선거에서 진 다음부터는 상생하자고 말하는 거다. 우리당은 다르다. 상생만을 주장해선 안 된다. 좋게좋게 처리하자는 건 좋다. 하지만 쟁점법안이 있고 각 당이 대변하는 세력이 있는데, 서로 간에 합의만 하고 절충만 한다? 토론을 많이 해서 어떤 게 옳은가를 가려야 한다. 그 과정이 결과적으로는 표결이다.”
 
-현재 당내에선 쟁점법안 처리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안 되고 있다.
“그렇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상정되고 논의됐다는 소리도 없지 않은가. 3월 2일까지, 2월 임시국회도 며칠 안 남았다. 이번 임시국회 처리도 물 건너갔다.”
 
-정세균 원내대표는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작년 한나라당과의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거듭 말하고 있는데. 
“지켜야 한다면서 한 게 뭐가 있냐는 거다. 그 말 만큼은 안 할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의례적인 말일 뿐이다. 사실은 ‘다음에 하겠습니다’란 뜻이다.”     
 
-지도부만 물갈이 하면 개혁정당이 되리라 보나? 상대적으로 개혁적이었다는 신기남-천정배 체제에서도 개혁은 지지부진했다.
“일단 전대에서 개혁세력이 주류가 되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다. 지도부 교체가 다는 아니지만, 개혁세력 세 명이 상임중앙위원이 됐을 때와 아닐 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지도부가 바뀌더라도 개혁 발목잡기 논리인 ‘경제위기’ 상황은 여전할 것이고, 때마침 북핵문제까지 불거져 개혁유보 논리가 한층 힘을 받고 있다. 중요한 건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개혁의 ‘내용’을 담보하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참여정부 성공에서 중요한 점은 ‘어떠한 성공’이냐다. 참여정부를 세워 준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당을 열심히 찍은 거다. 그 요구를 실현시켜야만 우리 역사가 성공한다. 우리당이 다수당이 됐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은 것 자체가 변화다. 그 변화에 맞는 정당, 당원이 주인인 정당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난 분배의 정의도 중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한 분배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개혁입법도 처리해야 한다. 또 한반도가 미국과 자주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제만 챙기면 된다는 논리는 분명 잘못이다. 단순히 경제 문제만 생각하면, 이회창씨가 더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는 거다. 기본적으로 분배가 잘 돼야 국민들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건 지도부만이 아니다. 전대 시점과 맞물려 개혁을 부르짖었던 의원들의 목소리도 잦아들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240시간 연속의총’에 참여했던 의원들을 향해 천정배 원내대표를 낙마시키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며 비난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시 난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지금은 의총에 참석했던 의원들 가운데서도 실용주의에 찬성 또는 비슷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옳지 않다. 결국 진정성이 없었다는 뜻 아닌가. 명분 쌓기로 개혁입법을 주장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계속 주장해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데, 때가 아니긴 뭐가 아닌가.”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3, 24일 열린우리당은 비정규직 법안 강행처리를 시도했다. 이를 어떻게 보나?
“옳지 않다. 비정규직을 전부 정규직화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비정규직 비율이 너무 높다. 차별은 또 얼마나 심한가. 이 부분에 대해 우리당이 재계의 이익을 대변해서야 되겠는가.”
 
-비정규법안을 처리하는 열린우리당의 태도는 매우 이중적이다. 국보법 등 쟁점법안 처리는 민생과 관계없다며 미루는 반면, 정작 민생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비정규법안은 강행처리하려 한다. 열린우리당이 노동계와 시민사회쪽보다 재계와 한나라당에 더 가깝기 때문인가.
“정당한 지적이다. 지금 돼 가는 꼴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안 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이해를 대변하는 지점에 열린우리당은 서 있어야 한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층을 잘 보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 폐지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재벌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고 있지 않나. 민주노동당도 자기 지지층을 위한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항상 흔들흔들 한다. 어느 정도까진 인정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당이 되지 못하면 국민들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난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연대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2석,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한 것은 총 162석의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 162석의 힘으로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는 멀리 하면서, 끊임없이 한나라당과 잘 해 보려고 하는 게 문제다.”
 
-이대로 간다면 과반 의석이 붕괴할 거란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그 과반의석,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반 가져서 뭐 하나. 수적 우위를 보여 주는 어떤 표결 절차가 있었나. 지금 상황이라면, 난 우리당 의석이 140석이 돼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노동당 10석은 그대로 있는 거 아닌가. 중요한 건 태도다. 열린우리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 말이다.”
 
사진=박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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