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로 예정된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후보들의 공식 출마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당 안팎에서 일고 있는 당 위기론과 관련, 각 후보들이 상이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고 있다. 결과적으로 ‘개혁 대 실용주의’ 노선간 당내 대결 구도가 전대를 맞아 한층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20일 후보들 중 처음으로 출마기자회견을 가진 문희상·신기남 의원을 비롯해 22일 유시민, 23일 염동연·장영달 의원까지, 이날 현재 모두 5명이 출마회견을 마쳤다.  
 
출마사유를 밝히면서 각 후보들은 입을 모아 당이 위기에 처했음을 지적하고 나섰다. 신기남 의원은 “창당시에 세웠던 목표와 신념이 희미해져 가는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민주개혁세력들을 한 데 뭉치게 했던 동지의식이 흩어져가는 분열의 위기”라고 진단했고, 장영달 의원은 “당 지지율은 바닥에 떨어졌고, 당내에는 패배주의와 비관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평가했다.
 
문희상 의원도 “창당 후 평균 100일에 한 번씩 당대표가 바뀔 정도로 우리당은 표류해 왔다”며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주창했고, 염동연 의원 또한 “우리는 국민의 차가운 시선과 당원들의 가혹한 질책을 마주하고 있다”며 “민생과 개혁 모두에서 국민의 기대와 열망에 충실히 부응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 위기상황을 지적하며 한 데 모아졌던 후보들의 목소리는 그러나 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과 처방에 이르러서는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목소리들이 크게는 ‘개혁’과 ‘실용’이란 당 정체성 논쟁으로 재수렴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출마자들 가운데는 ‘개혁-실용’ 논쟁이 불필요하게 확대돼 계파간 분열로 치달을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모습도 눈에 띈다. 유시민 의원은 개혁과 실용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어서 처음부터 잘못된 의제설정”이라며 선을 그었고, 당 통합을 강조하는 염동연 의원은 “개혁과 실용은 결코 두개의 길이 아니”라며, “진보적인 개혁세력과 합리적 보수세력이 연합해 만든 중도적 개혁정당이 바로 우리당의 정체성”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4대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작년부터 당내 의견들이 양분 조짐을 보여 옴에 따라, 전대를 기화로 양쪽간 ‘경계 짓기’가 심화될 경우, 전대 후 바로 맞닥뜨려야 할 재보궐 선거에서 당력을 총결집해 대응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대에 임하고 있는 각 후보 진영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번 전대가 ‘개혁-실용’ 논쟁을 사이에 둔 계파간 한 판 대결의 장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현 시점에서만 보면, 임채정-정세균 체제 이후 열린우리당의 진로는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한 보수화로 방향타를 잡은 게 사실이다. 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등 ‘쟁점 법안’ 처리는 기약이 없고, ‘민생경제 올인’을 부르짖으며 관련법을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출자총액제한제 및 증권집단소송법을 재계의 압력에 밀려 후퇴시켰다.    
 
때문에 전대는 당의 위기를 개혁성 후퇴에서 찾는 후보들이 당 정체성 재정립을 외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개혁논쟁이 오히려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실용주의적 흐름을 강화하려는 후보들이 맞서는 형국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 당의장이자 최근 들어 구당권파로부터 독자행보를 걷고 있는 신기남 의원은 출마회견문에서 “우리당의 존재이유는 개혁에 있다”고 밝히고, “국민이 골고루 더 잘살게 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개혁을 성공시켜내는 것이 첩경이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의원은 이어 “실용의 표방이 시대적 과제인 개혁의 기운을 위축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며 “묵은 찌꺼기를 걷어내는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실용일 수 있다”며 실용주의적 접근에 경계심을 표했다.
 
당내 재야파의 창구인 장영달 의원 또한 열린우리당 위기의 본질을 “개혁 정체성 상실”에서 찾았다. 장 의원은 “원칙 없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세월을 허송하면서 당의 개혁 정체성을 훼손시켰다”며 “혹자들이 이야기하는 실용주의가 통용되기 위해서라도 구시대의 낡은 질서와 관행을 개혁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의원도 “개혁적 정책노선과 참여민주주의 정당운영 원칙을 굳세게 견지하는 당 지도부를 선출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오랜 세월 가슴에 품어온 정당개혁의 꿈을 실현하고 우리당을 백년 가는 정책정당으로 세울 수 있다”며 개혁 성향의 지도부가 탄생해야 함을 역설했다. 
 
반면 문희상, 염동연 의원 등은 개혁과 실용이 별개가 아닐뿐더러 소모적 개혁논쟁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면서도, 실용주의적 처방의 필요성을 명확히 하고 있다. 
 
문희상 의원은 “개혁의 원칙에만 매달려서는 안 되고, 소모적 개혁이 아닌 생산적 개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최우선 과제인 민생을 챙기는 데 혼신의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문 의원 캠프의 전병헌 대변인도 “실용주의가 결여된 개혁은 구두선에 불과하며, 무의미한 교조주의적 관점에 빠질 수 있다”며 개혁파를 겨냥했다. 
 
염동연 의원 역시 “침체되어 있는 국정 지지도의 근본원인이 당의 무기력과 사분오열에 있음을 뼈아프게 반성해 한다”며 개혁논쟁이 당의 분열을 가져 왔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염 의원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당 정체성 논쟁은 개혁의 형식과 내용, 목표와 방법론을 둘러싼 사변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일 뿐”이라 지적하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이며 민생경제 해결을 위한 투자활성화와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며 ‘민생제일주의’를 역설했다. 
 
나아가 염 의원은 “이 절박한 문제들을 앞에 두고 개혁노선이냐 실용노선이냐 편을 가르는 행동은 당을 국민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일 뿐”이라며 민주세력 통합차원에서 민주당과의 합당론을 재차 공론화했다. 
 
한편, 출마 의사를 밝혀 온 한명숙 의원과 송영길 의원은 24일 오전 공식 출마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전대를 앞두고 당 위기 처방을 둘러싼 이견이 각 후보들의 입을 통해 분출되면서, 열린우리당 2기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개혁-실용’ 논쟁은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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