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판사의 튀는 판결, 혹은 소신 판결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일, 서울 남부지법의 이정렬 판사<사진>가 억대 내기골프 행위(상습도박죄)로 기소된 이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비롯됐다. “도박은 화투나 카드, 카지노처럼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돼야 하나,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운동경기인 내기골프는 도박이 아니다”라는 게 무죄판결의 이유였다.
 
이같은 판결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시끄러워졌다. 각종 인터넷 여론조사 등에선 이번 판결을 부정하는 의견들이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고, 특히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한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 정형근 의원 ‘호텔방 소동’ 때보다 더욱 치열한 반발 ‘댓글’이 각종 게시판에 달리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통념상, 적어도 인터넷에서 이 판사는 ‘유죄’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정렬 판사의 판결을 바라보는, 세간의 분노는 과연 합당한 것일까. 이정렬 판사의 천인공노할(?) 판결엔 어떠한 시사점도 없는 것일까.
 
사람들의 관심은 일단 이 판사가 제기한 ‘우연성’의 타당성 여부에 쏠려 있다. 화투나 포커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우연성보다 ‘실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주장에서부터 골프 역시 그날의 컨디션, 기후 등 우연성에 의해 승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까지, 사람들의 반발은 대부분 이 판사의 무죄판결 근거를 통박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법리적 해석의 타당성 여부나 오락과 도박의 경계에 대한 논쟁은 이번 판결이 던진 쟁점을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판사 자신이 이미 공정하지 못한 ‘오락’의 경우 사기죄를 적용해 처벌하면 된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국민적 비난이 불을 보듯 뻔했던 이번 판결을 통해 이 판사가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22일 중앙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로또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들이 자살하고, 정부가 허가한 카지노에서 가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셀 수도 없는 현실에서 국가가 하는 것은 괜찮고, 개인 간의 행위는 위법이라는 것은 지나치게 이중적 잣대다.”
 
사회, 즉 국가가 이미 개인들에게 사행과 도박을 조장하고, 그 ‘파장’을 방치하는 마당에 개인들간의 행위에 위법성을 묻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이 판사는 같은 날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밝혔다.
 
“(억대 내기 골프가) 국민정서법에 위반된다는 것은 알지만,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다수가 소수에 저지르는 횡포를 막는 장치로써 법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 법치주의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의 주장은 결국 ‘국가의 과도한 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다. 국민정서라는 이름으로 가해질 수 있는 다수의 폭력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국민정서’에 대한 배려는 “귀족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골프를 하면서 다액의 재물을 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이 판사의 판결내용에 이미 포함돼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의 뭇매는 여러 요소가 복합된 것으로 읽힌다. ‘골프’로 상징되는 비도덕적 부유층에 대한 혐오감뿐 아니라, ‘판사님’으로 대변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까지 얽혀 이 판사를 비난하는 행렬을 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번 판결에 대한 일각의 반발이 결국 ‘법의 안정성’이라는 보수적 법체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보수언론들과 이정렬 판사의 ‘선배’ 법조인들은 계속해서 ‘법의 안정성’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기존 판례에 따라, 하급심 판사가 상급심 판결에 반기를 드는 ‘혼란’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기존 판례는 이미 내기골프를 도박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보수적 사법부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법의 안정성’이란 말이 어떻게 현실 법체계에서 작동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다수 서민들의 이해와 요구가 ‘법의 안정성’ 속에서 훼손당해왔기 때문이다. 숱한 법적 송사들이 ‘기존 판례’의 틀에 묶여 제자리걸음만 해왔다. 3권 분립 이래 우리 법조계는 늘 구태의연한 ‘청출어람’만을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판사의 ‘행동’은 전통적 사법체계 질서에 대한 용기 있는 반발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과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거나, 공무원노조의 단체행동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점 때문에 그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일 조선닷컴에 오른 아래과 같은 ‘쌩뚱맞은’ 글-사법개혁 총대 멘 판사-을 보며, 기자는 이정렬 판사와 같은 이들이 계속해서 대한민국적 사법체계에 ‘도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모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 판사가 ‘사법부를 팔기’ 위해 총대를 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위헌심판’과 사법부의 잇단 열린우리당 의원들에 대한 선거법위반 판결 이후, 열린우리당의 개혁파 의원들이 주장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을 정당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사시합격 후 임용된 판사가 법조 경력 이외의 다른 경험이 전혀 없을 경우 개인단독 판사가 되는 일을 막아야 하지 않을가 싶네요. 아울러 판사 임용절차도 완전히 재검토해야할 시점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정렬 판사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기엔, 이 나라 개인들의 사고가 지나치게 국가와 권력에 얽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한동안 그의 진정성은 이렇게 ‘평가절하’될 것으로 보인다. 보수에게든, 진보에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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