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동남아를 덮친 사상 최악의 쓰나미 재앙이 자연재해가 아닌, 가난과 불평등이 빚어낸 ‘구조적 인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이번 사태로 동남아 일부 국가에 비민주적 비상조치들이 발효되는 등 쓰나미 재앙이 ‘독재의 기회’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터져나왔다.

이같은 주장은 쓰나미로 4만여 명이 숨져 인도네시아에 이어 최대피해국이 된 스리랑카의 한 정당 총서기로부터 제기됐다. 트로츠키 계열의 좌파정당인 사회평등당 위제 디아스 총서기는 지난 2월 4일 시드니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이번 쓰나미로 인해 재앙을 당한 대부분은 제대로 된 가옥을 지니지 못했던 빈민들”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쓰나미 재앙 이후 재난구조 시스템 부재 등에 대한 지적은 있어왔지만, 사회구조적 관점에의한 지적은 처음이어서 눈길을 끈다. 디아스 총서기의 이런 주장은 최근 발행된 월간 <말> 3월호에 번역, 소개됐다. 


디아스 총서기는 먼저 “쓰나미는 결코 자연재해가 아니다. 피해의 주범은 이 지역 반(半)식민지 국가들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가난”이라고 지적하면서 “일본에서는 1회의 자연재해로 평균 63명이 죽지만 페루에서는 그보다 46배나 많은 2천9백명이 죽는다. 1985년 허리케인 엘레나가 미국을 덮쳤을 때 단 5명만이 죽었지만, 1991년 사이클론이 방글라데시를 강타했을 땐 무려 50만 명이 죽었다. 한번 지진으로 1만명 이상이 죽는 일은 제3세계에서만 일어난다”며 재앙의 원인이 사회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 가난의 뿌리는 신이나 자연의 영역에 있지 않다. 국민의 대다수를 비참한 가난에 빠져 있게 한 것은 바로 사회구조”라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한다.  

“가옥과 인명 피해를 당한 이들은 주로 바닷가에 살고 있던 빈민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어부이거나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집은 오두막이라고나 할 정도로 허술해서 쓰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아주 작은 규모의 홍수나 태풍에도 견디지 못합니다. 쓰나미가 지나간 뒤 찍은 일부 사진에서 때때로 광활한 판자더미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견고한 집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자본가의 집은 견뎌낼 수 있을 만한 쓰나미였다는 말입니다.

어부들은 작업 때문에 바닷가에서 살지만, 그 밖의 많은 사람들?땅 한 뙈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바닷가에 삽니다. 해안철도는 주변에는 많은 철도용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는 것이지요. 지금은 다 날아가 버렸지만요. 그들에게는 은행 통장도 없고 사회보장 혜택도 없습니다. 집이 없어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불법 점거자’로 취급받아 보상에서도 제외됩니다.”

디아스 총서기는 또 “쓰나미가 스리랑카 동부 해안을 강타한 직후 방송에서 한마디 보도만 했었더라도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해일이 서남 및 남부 해안에 도달하기까지는 30분이 걸렸다. 사람들이 15분 동안만 내륙을 향해 걸을 수 있었다면 모두 살아날 수 있었지만, 아무런 경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측이 이러한 치명적 실수를 정당화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수많은 합리화 논리를 동원하고 있다”며 “그 중에는 12월 26일이 공휴일이라 관공서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다”고 주장했다.
  
디아스 총서기는 “정부가 서민들의 고통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구호활동에서도 드러났다”며 “정부당국과 군은 재앙이 일어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손을 쓰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일어나 피해 주민들을 도운 인접 지역 주민들이 아니었더라면 수천 명이 더 죽었을 것”이라고 고발했다.

스리랑카 정부와 군이 오히려 국민들의 자발적 구호활동을 막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디아스 총서기는 “병원노동자 등 노동대중이 쓰나미 피해자들 구호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자 정부는 신속하게 모든 구호활동을 군의 지휘 아래로 이전시켰다”며 “더욱이 지난 1월 6일,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스리랑카의 총 25개 행정구역 가운데 14개 구역에 적용되는 일련의 가혹한 비상조치법을 공포, 군과 정부의 전횡으로 대중들이 심각한 위험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디아스 총서기는 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위임한 이번 비상조치법 때문에 ‘재난이 독재의 기회로’ 악용될 것도 우려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남부지방 함반토타에서 가진 군중연설에서 선거는 5년 뒤로 연기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민주적 권리에 대한 이러한 공격에 대해 야당들 가운데 좌파든 우파든 어느 곳도, 심지어 노조 지도부도 항의를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항의의 부재는 ‘쓰나미 충격’의 결과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돼 대다수 국민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와 빈민들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해줄 여유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디아스 총서기는 “스리랑카의 지배계급은 이번 쓰나미를 통해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 움직임에 고무돼 있다”고 지적하며 “그러나 언론이 미군을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자들로 홍보했음에도 지난 수십년 동안 제국주의에 억압당하고 착취당해온 이 지역의 노동계급과 빈민들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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