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월간조선 대표가 지난 2일 천성산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보도해 온 언론들을 향해 “기자들 다 죽었다”며 독설을 뿜어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근 발간된 월간조선 3월호는 지율 스님 단식의 ‘비과학성’을 ‘본격 검증’하고 나섰다.  
 
조 대표의 글은 100일 단식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치 않고 이슈화시켜 온 기자들과 이런 ‘함량 미달(?)’ 기사들을 내 보낸 언론사 간부들의 자질에 대한 비난이었다. 때문에 “58일 단식 두 달 만에 또 100일 단식? 이게 인간으로서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란 리드문으로 시작되는 월간조선 기사 <추적, ‘지율 100일 단식說’의 非과학><사진>은 제목만 보면 조 대표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지율 스님 단식의 ‘실체’를 낱낱이 벗긴 글인 듯했다.  
  
하지만 기사를 읽다 보면, 이런 ‘기대’는 곧 어긋나고 만다. ‘본격 검증’ 의지는 제목뿐이었다.
 

 
천성산 터널 공사현장을 방문해 공사 관계자들을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기사는 지율 스님의 4차례 단식을 통해 결국 ‘3개월간 환경영향 공동조사’ 합의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뒤쫓고 있다. 수차례 진행된 환경영향 평가 결과, 터널 공사가 고산 늪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혀졌음에도, 단식을 통한 지율 스님의 ‘막무가내식’ 반대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불러오고 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모두 18페이지 분량의 기사다.
 
지율 스님 단식에 의혹을 제기하고 그 ‘비과학성’을 검증하는 부분은 그러나 2페이지 박스기사가 전부다.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줄기에 비하면 끼어 넣은 잔가지에 불과하다. 지율 스님이 과연 100일 단식을 했는지를 “추적”했다는, 시선을 잡아끄는 제목이 무색할 지경이다.
 
제목을 선정적으로 뽑는 일은 언론사 속성상 드문 일은 아니다. 다만 월간조선의 기사가 내용과 제목이 일치하지 않는, 단순한 ‘제목장사’로만 치부하고 넘어 갈 성질의 것인지, 기사를 좀더 읽어가다 보면 곧 드러난다. 
 
기사를 쓴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또한 <레이버투데이>와 전화통화에서 “기사의 주 내용은 단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이 기자는 “제대로 읽어 보면 기사는 천성산 공사에 관한 것으로, 단식 부분은 박스로 처리돼 있을 뿐”이라며 지율 스님 단식의 신빙성을 검증하는 것이 기사의 목적이 아님을 강조했다. 천성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진행과정을 취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과장된 제목을 뽑은 것은 대표 혹은 편집장의 뜻이었는가를 묻는 질문에, 이 기자는 “기사 내용과 제목의 일치 여부에 대해서는 내가 할 말이 없다”고만 답했다.    
 
이 기자가 강조한 것처럼 월간조선 기사는 천성산 공사의 진행과정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주 내용과 다른 제목이 크게 부각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기사는 전혀 다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천성산 공사 중단의 타당성 여부가 아닌, 지율 스님의 인간성 자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제목장사’로 치부해 버리고 말기엔 석연치 않은 이유다. 
 
제목은 전체의 일부분에 불과한 박스기사를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기사는 기네스북의 최장기 단식(49일), 83년 김영삼 전 대통령 단식(23일), 98년 이기택 당시 한나라당 총재권한 대행 단식(25일) 등을 거론하며, 지율 스님 단식의 ‘비과학성’을 지적한다. 
 
“지율은 3차 58일 단식을 끝낸 지 두달 만에 다시 100일 더 단식했다. 과연 이런 초인적인 단식이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율의 단식은 수행을 오래한 승려의 원력이 작용한 종교적인 현상이다. 과학적인 분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일부 견해가 있지만, 100일 단식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함’을 입증하기 위해 의사들의 말을 빌리기도 했다. 
 
“단식 80일째 진찰한 의사가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는데도, 지율은 물과 소금, 둥글레차, 커피(무설탕) 등으로 20일을 더 단식했다.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100일 단식은 의학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커피나 기타 차 등을 마시면서 100일 단식을 했다는 주장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의 단식 일수가 과학적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수준이란 점에서, 여기까지는 ‘비과학’이란 표현이 이해할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몇몇 취재원들의 말을 통해 기사는 지율 스님이 실제로는 단식의 범주를 넘어서는 ‘그 무언가’를 먹었을 수도 있는, ‘가짜 단식’을 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단식일수 계산도 “본인 주장”으로 치부한다.   
 

 
“지율의 경우 전문 의료진이 직접 진찰을 한 적이 없어, 그녀가 과연 물만 마시며 단식을 했는지, 칼로리를 보충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30년간 스스로 단식을 실천하고, 고객들의 단식을 도와 온 한 단식원장은 ‘58일을 단식한 지율 스님이 두 달 만에 다시 100일 단식을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단식 40일에 이르면 누구나 에티오피아 난민처럼 피골이 상접해진다’고 말했다.”
 
“조계종의 한 간부 승려는 ‘100일 단식이 아니라, 100일 기도로 이해하면 좋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이런 얘기를 했다. ‘스님들이 100일 기도를 할 때 선식을 먹는다. 콩, 잣, 호두, 찹쌀 등을 갈아서 죽으로 만들어서 먹는다. 하루 한 끼 이것만 먹어도 100일 동안 기도하고 참선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기사는 ‘100일 단식 신화’가 탄생한 데는 무책임한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기네스북에 올라가야 할 전대미문의 단식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언론은 아무런 검증 없이 단식기록 경신을 매일 현장 중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갑제 대표의 주장과 일치하는 지점인 동시에, ‘지율 스님 100일 단식의 비과학’을 검증하는 월간조선의 ‘비과학’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취재원들의 말을 인용, 기사가 지율 스님이 어떤 식으로든 칼로리를 섭취했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지만, 실제로 칼로리를 함유한 무엇을 먹었는지에 대한 증거는 어디에서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상흔 기자 자신도 “본인이 제대로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뭘 먹었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월간조선 기사의 이러한 검증 잣대가 비과학적임은 다름 아닌 조갑제 대표의 지난 2일 글이 잘 지적하고 있다. 
 
“기자들이 CCTV로 이 여승의 단식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무슨 근거로 100일 단식이라고 확정 보도했는가.”
 
칼로리 있는 음식을 먹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무슨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월간조선 기사에 부메랑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신에게조차 엄격하지 못한 잣대로 선정적 이슈화를 시도하는 월간조선과 조갑제 대표의 내심이 의뭉스럽기 그지없다.
 
다음은 이상흔 기자와의 전화통화 내용 중 일부다.    
 
- 지율 스님 단식에 의혹이 있다고 보나?
“단식이란 투쟁을 할 때는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율 스님이) 뭐 했는지는 모른다. 본인들이 제대로 발표를 하지 않았으니까, 뭘 드셨는지 안 드셨는지.”

 
- 의사나 단식원장 등의 말을 통해 의혹을 제기했는데, 지율 스님이 단식의 범위를 넘어서는 뭔가를 먹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정황증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단식을 어떻게 했다 안 했다 단정할 순 없다. 공인된 의사들의 진찰도 거부했기 때문이다. 다만 100일 단식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 어쨌든 단식 진행 정황에 대해 포착한 건 없다고 보면 되나?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그걸 확인하지 않고 기사를 썼기 때문에 (조 대표가)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았나. 본인들이 말을 안 해 주니까.”

 
- 조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제대로 된 단식인가 물을 때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단식이 아니라고 문제제기할 때 역시 철저하게 사실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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