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사회적 대화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가 폭력으로 얼룩지자 이를 비난하는 여론과 함께 사회적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사회적 대화가 '국민의 기대'로 둔갑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가 왜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지, 그리고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정부와 사용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오로지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에 온전히 참여할 것인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과연 노동계가 참여하기만 한다면 만사형통인가? 거꾸로 노동계만 양보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사회적 협약 체제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노동조합의 중앙집중화와 친노동정당의 집권이 거론된다. 물론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부의 의지가 중요하다. 노동조합을 지배나 조정의 대상이 아닌 진정한 사회적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노동조합의 정책결정참가 단위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고작해야 사회적 대화체제가 구축되지 않을 경우 비정규직 입법안은 물론 노사관계 로드맵을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강압적인 자세만 보일 뿐이다. 사용자 역시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경제회생에 관한 여론을 등에 업고 노동조합의 양보만을 얻어내려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구유럽에서 사회협약은 경제위기의 돌파구로 맺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의 경제도 2000년 8월이후 약 4년여간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경기순환에 구조적 모순까지 겹쳐 불황이 심화되고 장기화되고 있다. 정부나 보수언론이 사회적 대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적어도 서구유럽에서 이러한 사회적 협약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노사간의 신뢰와 대등성이 확보된 근대적 노사관계가 구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노사 대등성은 물론 노사간의 신뢰도 거의 미미하다.
 
더욱이 98년 노사정 대타협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됐다는 불신을 안고 있다. 합의사항 중 하나인 실업자의 초기업단위노조 가입은 아직 이행조차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로서가 아니라 참여에 기초한 합리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기반으로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는 노사관계 로드맵과 같이 정부가 기획한 노동정책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처리하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노사정 대타협에 대한 피해의식, 노사정간의 불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당장 1차적 노사관계에 관한 합의는 가능하지 않다. 더욱이 노동조합은 수평적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대표자가 확신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조직을 이끌어갈 수 없는 구조이다.
 
혹자는 사회적 합의에 대한 대중들의 순응문제는 노조 내부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위기 이후 극심해지고 있는 사회양극화의 해소,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의 확대 등과 같이 노동자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제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동원의 정치가 점차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슈를 선점하고도 사실상 얻는 것이 없는 반복되는 싸움에 노동대중은 지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식도 신자유주의 기조하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노동계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직결되는 주택, 사교육, 물가, 조세, 사회보험 등에 대한 요구를 완전하게 관철시킬 지형도 힘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적 교섭을 통한 합의방식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노총은 작년에 비정규직 입법안의 처리를 유보하고, ‘사회적 대화’의 틀속에서 재논의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사회적 대화체제를 구축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오히려 사회적 대화체제의 고착화를 내심 반대하고 있는 일부 경제관료와 한건주의를 근절하는 등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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